
다만, 문제는 우리나라 은행엔 순수 고정금리 상품 등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국내 은행이 순수 장기고정금리 상품을 못 내는 이유로 미국과 달리 장기고정금리 대출 시 금리 변동 위험과 자금조달 부담을 민간 은행이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미국이 30년 고정 주담대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건,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유동화 전문기관이 대출 매입 후 주택저당증권(MBS)으로 유동화하면서 금리 변동 위험을 채권시장으로 분산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반면, 국내는 이런 유동화 및 장기채권 조달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란 얘기다.
다만, 여기엔 심각한 오해가 있다. 통상적 인식과 달리 미국 30년 고정 주담대의 실질적인 조달 재원은 은행 예금이다. 미국 통계를 보면, 미국 채권시장에서 MBS에 가장 많이 투자하는 경제주체가 바로 예금을 조달 재원으로 하는 상업은행이기 때문이다. 반면 장기 투자기관인 보험사나 연기금 투자 비중은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은행은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취급 후 유동화해 금리변동 위험을 시장으로 넘긴다. 동시에 장기고정금리 대출을 기초로 한 장기고정금리 채권인 MBS를 제일 많이 인수하면서 금리변동 위험을 떠안는다. 유동화 기관에 넘길 수 없어서 MBS 발행을 못하는 30년 고정 주담대인 점보론의 경우, 은행은 대출을 만기까지 자체 보유한다.
미국 MBS의 90% 수준을 차지하는 패니메이와 프레디맥 등 기관(Agency) 보증 패스스루(Pass-through) MBS는 표면상 유가증권이지만, 경제적 실질은 신용위험을 제거한 장기고정금리 주담대다. 미국 은행이 금리변동 위험을 떠안으면서 단기 조달인 고객 예금으로 장기고정금리 자산인 MBS에 대규모로 투자하는 것은 예금 금리위험을 장기고정금리 자산으로 헤지하기 위해서다. 이 금리위험은 향후 시장금리가 크게 하락할 때 은행이 부담하는 리스크다.
이타마르 드렉슬러(Itamar Drechsler) 미국 펜실베니아대 와튼스쿨 교수가 쓴 다수의 논문에 따르면, 미 상업은행은 장기고정대출을 기초로 발행하는 MBS의 가장 큰 투자자다. 미 상업은행이 대출의 신용위험을 제외한 금리변동 위험과 자금조달 부담을 떠안고 있다는 점에서 사실상 30년 고정 주담대를 공급하는 실질적 주체라고 봐도 무방하다.
투자 잔액 기준으로도 미 상업은행의 MBS 투자 비중은 MBS를 대규모로 매입하는 양적완화를 했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보다 높다.
미 상업은행은 단기조달인 고객 예금으로 금리변동 위험을 떠안으면서도 장기고정금리 자산인 MBS에 대규모로 투자할 수 있었을까. 우선, 예금은 기존 상식과 달리 단기성 조달자금이 아니다. 저원가성 핵심 요구불 예금은 협의통화(M1)에 포함되는 유동성이 가장 높은 지불결제 수단 중 하나다. 국민이 일상 경제 활동 영위를 위해 쓰는 결제수단인 이 예금은 수시입출금이지만 총액 규모로 보면 은행에 일정 규모로 만기 없이 오랜 기간 예치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비만기성예금이라고도 불린다. 바젤위원회도 최장 만기 5년의 끈적끈적한(Sticky) 예금, 즉 안정적 조달재원으로 평가한다.
다만, 은행 부채인 예금도 시장금리 변동위험에 노출되는데, 미 상업은행은 이 리스크를 장기고정금리 자산으로 헤지한다. 시장금리와 은행 예금금리 차이를 예금 스프레드라고 한다. 이는 은행이 시장금리 대비 얼마나 저금리로 자금(예금)을 유치할 수 있는가를 나타내는 척도다. 특히 0.1% 수준의 고정금리인 저원가성 핵심 요구불 예금금리와의 예금 스프레드는 격차가 크다.
시장금리가 매일 등락하면서 예금 스프레드도 등락하는데, 시장금리가 상승해 예금 스프레드가 벌어지면 은행에 경제적 이익을 준다. 예를 들어, 시장금리 상승시 보유 중인 장기고정금리 자산인 장기고정금리 대출, MBS, 국채에서 미실현손실이 발생하지만, 예금 스프레드가 벌어지면서 경제적 이익이 늘게 돼 미실현손실을 상쇄한다. 반면, 시장금리 하락시 예금 스프레드가 축소되면서 경제적 이익이 감소하지만, 장기고정금리 자산의 미실현이익이 늘면서 이를 상쇄한다.
이런식으로 장기고정금리 자산과 예금은 시장금리 변동에 따른 금리 위험을 서로 헤지 해 준다. 따라서, 상업은행 입장서 장기고정금리대출 등 장기고정금리 자산 보유는 예금 금리위험 관리를 위해 필수적이다.
다만, 이런 사업 모델은 고객 예금이 항상 일정규모로 은행에 머물 때 정상 작동한다, 문제는 예금이 이탈하는 경우다. 즉 유동성 위기시엔 이 모델이 역기능을 초래할 수 있다.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은행은 예금·은행채 등 전통적 조달수단 외에 대체 조달수단을 필히 갖고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