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왜 못하나”…반도체 핵심부품 국산화 이끈 엠케이피 [기술 속국 탈출기⑫]

입력 2026-07-29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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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유일 반도체 가스제어 부품 기업
일본·미국 독주하던 반도체 핵심부품 시장 도전
삼성 개발 제안으로 MFC 국산화 성공
“기술이 곧 국력, 후방산업 경쟁력 키워야”
“국산 기술로 공급망 경쟁력 높일 것”

AI을 비롯한 첨단 산업이 빠르게 확장되며 반도체를 포함한 다양한 제조업 분야에서 새로운 성장 국면이 펼쳐지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완제품 기업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그 기반에는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의 기술력이 자리하고 있다. 반도체는 물론 로봇, 디스플레이 등 산업 전반에서 소부장은 기술 한계를 돌파하는 출발점이자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본지는 다양한 산업의 소부장 기업 대표들을 릴레이로 만나 기술 변화의 흐름과 시장에 대한 진단을 들어본다. 현장에서 바라본 기회와 위기, 그리고 산업 생태계가 나아갈 방향을 함께 짚어본다.

AI 반도체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주목받는 것은 최첨단 메모리나 반도체 칩만이 아니다. 반도체를 실제로 생산하는 장비와 그 안에 들어가는 핵심 부품의 중요성도 함께 커지고 있다. 그중 하나가 반도체 공정에 필요한 가스를 분자 단위까지 정밀하게 제어하는 질량유량제어기(MFC, Mass Flow Controller)다. 반도체 증착과 식각 공정의 정밀도를 좌우하는 핵심 부품이지만 오랫동안 일본과 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 왔다.

국내에서 반도체용 MFC를 자체 개발해 양산하는 기업은 현재 MKP가 유일하다. 전석환 엠케이피 대표는 23일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통해 “한국이 왜 이걸 못 만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며 “자동차와 휴대폰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드는 나라가 정작 핵심 부품 하나를 전량 수입하는 현실을 바꿔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 대표는 원래 의료기기 분야 연구원이었다. 대학원에서는 환자 모니터링 시스템을 전공했고, 이후 일진그룹에서 초음파 진단기 개발에 참여했다. 반도체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그는 “혈압이나 혈류를 측정하는 것도 결국 유체를 정밀하게 제어하는 기술”이라며 “반도체용 질량유량제어기 역시 대상만 화학가스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같다고 판단했다”고 회상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계기는 2013년이었다. 30대 중반의 나이에 연구소장으로 합류했고 이후 반도체 사업부를 신설해 초대 사업부장을 맡았다. 2016년에는 반도체용 MFC 전문기업 엠케이피를 설립하며 초대 대표를 맡게 됐다.

전량 수입하던 MFC 국산화에 뛰어들다

그가 선택한 분야는 당시 국내에서는 아무도 만들지 못했던 반도체용 MFC였다. MFC는 반도체 제조 과정에서 화학가스를 일정한 질량으로 정밀하게 공급하는 장치다. 일반적인 유량계가 부피를 기준으로 유량을 측정하는 것과 달리 온도와 압력이 변해도 동일한 질량의 가스를 공급해야 하기 때문에 훨씬 높은 수준의 정밀도가 요구된다. 반도체 회로가 수나노미터 수준까지 미세화될수록 공정 오차를 최소화해야 하는 만큼 MFC의 중요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국산화의 출발점은 삼성전자의 개발 요청이었다. 당시 국내 반도체 업계는 MFC를 전량 해외에서 수입했지만 공급망을 해외 업체에 의존하다 보니 가격 협상력은 물론 공급 안정성에서도 한계를 겪고 있었다. 해외 업체들이 고객 요구를 신속하게 반영하지 않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전 대표는 “삼성전자가 전략적으로 국내 기업을 육성할 필요성을 느끼고 개발을 제안한 것으로 안다”며 “제품을 처음 봤을 때 '이 정도 기술이라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개발은 쉽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지원을 받아 약 3년간 연구개발을 이어간 끝에 국산화에 성공했다. 이후 엠케이피는 국내에서 유일하게 반도체용 MFC를 양산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는 “처음에는 MFC 하나를 국산화하는 것이 목표였지만 개발을 하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며 “질량유량 기술과 관련된 부품 상당수가 여전히 해외 의존이라는 점을 확인했고, '매스플로 토털 솔루션'을 구축해 국내 장비사와 반도체 기업이 필요한 제품이라면 모두 개발하는 회사가 되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설명했다.

▲전석환 엠케이피 대표가 23일 경기 화성시 엠케이피 사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 (이투데이DB)
▲전석환 엠케이피 대표가 23일 경기 화성시 엠케이피 사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 (이투데이DB)

반도체 핵심부품, 전량 수입에서 국산화까지

이 과정에서 일본의 수출규제와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그의 생각을 더욱 굳히는 계기가 됐다. 그는 “과거에는 군사력이 국력이었다면 지금은 기술이 곧 국력”이라며 “핵심 기술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국 다른 나라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공급망 위기를 통해 다시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국산화에 성공했다고 해서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현재 반도체용 MFC 시장은 일본 호리바스텍(Horiba STEC)을 비롯해 미국 MKS인스트루먼트(MKS Instruments), 브룩스인스트루먼트(Brooks Instrument) 등이 주도하고 있다. 이들 기업이 세계 시장 대부분을 점유하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MKP가 유일하게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전 대표는 기술력 자체보다 고객 대응 속도와 공급 안정성이 후발주자인 엠케이피의 경쟁력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아직은 글로벌 선도 기업을 추격하는 패스트 팔로워에 가깝다”면서도 “반도체 장비사와 칩 제조사가 원하는 사양을 가장 빠르게 반영하고, 국내에서 직접 생산하기 때문에 납기와 서비스, 가격 경쟁력에서는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엠케이피 매출의 약 90%는 국내 반도체 장비사를 통해 발생한다. 주성엔지니어링과 원익IPS, 세메스, PSK 등 주요 장비업체에 MFC를 공급하면 해당 장비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생산라인에 설치되는 구조다.

기화기까지…‘매스플로 토털 솔루션’ 도전

엠케이피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MFC를 넘어 '매스플로 토털 솔루션' 기업으로 사업 영역을 넓히고 있다. 반도체 공정에는 MFC 외에도 기화기(Vaporizer), 액체 질량유량제어기(LMFC), 압력제어기(EPC) 등 다양한 유량 제어 부품이 함께 사용된다. 대부분 해외 기업들이 공급하는 분야다.

전 대표는 차세대 핵심 과제로는 '기화기'를 꼽았다. 최근 반도체 미세공정에서는 기존 기체 소재뿐 아니라 상온에서는 액체나 고체인 신규 소재 사용이 빠르게 늘고 있다. 이런 물질을 공정에 투입하려면 먼저 기체 상태로 바꾸는 과정이 필요한데, 그 역할을 하는 장치가 기화기다.

현재 엠케이피는 액체 소재용 기술은 확보했지만, 고체 소재를 초고온에서 기화한 뒤 정밀 제어하는 기술은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보고 있다. 800도 이상의 고온에서도 부식 없이 안정적으로 동작하는 소재와 부품 기술 확보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기술 경쟁과 함께 해외 시장 공략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재 엠케이피는 중국 상하이에 판매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삼성전자 시안 공장과 SK하이닉스 우시 공장 인근에는 서비스 거점을 구축했다. 중국 메모리 업체인 YMTC와 CXMT를 비롯해 BOE, 비전옥스 등 디스플레이 기업에도 제품을 공급하고 있다.

다만 중국 시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 기업에는 새로운 기회가 열렸지만, 동시에 중국 정부의 자국산 우선 정책이라는 또 다른 장벽도 생겼기 때문이다.

▲전석환 엠케이피 대표가 23일 경기 화성시 엠케이피 사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 (이투데이DB)
▲전석환 엠케이피 대표가 23일 경기 화성시 엠케이피 사옥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성준 기자 joonko1@ (이투데이DB)

이에 따라 엠케이피는 단순 판매법인을 넘어 현지 제조 기반 구축도 검토하고 있다. 중국 정부가 요구하는 현지화 전략에 대응하는 동시에 시장 점유율을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다.

전 대표는 “중국은 결국 세계 최대 반도체 시장 중 하나가 될 것”이라며 “장기적으로는 현지 생산도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다만 핵심 연구개발과 최고 수준의 기술은 계속 한국에서 가져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중국 넘어 글로벌 시장으로

중국뿐 아니라 일본과 미국, 유럽 시장 공략도 병행하고 있다. 일본과 유럽에서는 현지 에이전트를 통해 고객사를 확대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을 비롯해 TSMC와 인텔 신규 공장을 겨냥한 영업을 강화하고 있다.

전 대표가 인터뷰 내내 가장 강조한 것은 특정 제품이나 실적이 아니었다. 그가 여러 차례 되풀이한 화두는 '후방산업'이었다. 반도체를 만드는 칩 기업보다 그 칩을 가능하게 하는 소재·부품·장비 기업들이 더 많은 관심과 평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많은 사람들이 반도체나 자동차, 스마트폰 같은 완제품에는 관심이 많지만, 정작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장비와 부품에는 관심이 적다”며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이를 만드는 장비와 핵심 부품은 아직도 상당 부분 해외에 의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술이 곧 국력”…후방산업이 경쟁력이다

실제로 MFC 역시 오랫동안 일본과 미국 기업들이 시장을 주도해왔다. 국내 반도체 산업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했음에도 핵심 부품 하나는 해외 기업에 의존했던 셈이다. 그는 이러한 구조를 단순한 산업 문제가 아니라 국가 경쟁력의 문제로 바라봤다.

전 대표는 “공급망 위기나 일본 수출규제 같은 일이 생길 때마다 소부장의 중요성이 부각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시 관심이 사라진다”며 “후방산업은 단기간에 성과를 낼 수 있는 분야가 아니라 오랜 시간 기술을 축적해야 하는 산업인 만큼 꾸준한 투자와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의식이 자신의 진로를 결정한 이유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당시 대기업을 떠나 직원 수 40여 명, 매출 70억원 규모의 중소기업으로 옮긴다는 결정을 두고 주변에서는 만류가 적지 않았다.

전 대표는 “누군가는 아무도 하지 않는 기술에 도전해야 산업도 성장하고 국가 경쟁력도 생긴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연구소장으로 합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반도체 사업부를 이끌었고, 이후 엠케이피 대표를 맡아 회사를 키웠다. 직원 수는 초기 40명 수준에서 현재 120명 안팎으로 늘었고, 국내 유일의 반도체용 MFC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전 대표는 이제 정부 지원보다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독일이나 일본에는 규모는 작지만 세계 최고 기술을 가진 강소기업들이 많고, 우수한 인재들도 그런 회사에 자부심을 갖고 들어간다”며 “우리나라도 대기업만 성공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원천기술을 가진 중소기업에 뛰어드는 문화가 자리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우리가 만드는 MFC 하나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아니다”라며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은 눈에 보이는 완제품뿐 아니라 그 뒤에서 기술을 쌓아온 수많은 소부장 기업들이 함께 만들어낸 결과라는 점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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