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P ‘ONE’터치]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영감’과 ‘표절’의 차이

입력 2026-07-2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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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참슬 ‘법무법인(유한) 원’ 미디어 & 엔터테인먼트팀 변호사
▲생성형 AI에게 창의적 표현과 빌린 아이디어를 숨기는 행위 사이의 대조를 표현해달라고 했다. (플럭스)
▲생성형 AI에게 창의적 표현과 빌린 아이디어를 숨기는 행위 사이의 대조를 표현해달라고 했다. (플럭스)

19세기 미국 문학의 거장 마크 트웨인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새로운 아이디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수많은 오래된 아이디어들을 가져다 일종의 정신적 만화경 속에 넣고 돌려 새롭고 흥미로운 조합을 만들어낼 뿐이다.”

20세기 영시의 거장 T.S. 엘리엇은 더욱 직설적이었다.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저작권에 대한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지금, 이러한 말들은 표절 시비나 저작권 침해 소송에서 당사자들이 인용할 만한 문구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도 있듯이, 무(無)에서 유(有)가 탄생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영감’과 ‘표절’은 구분될 수 있을까? 저작권 침해를 다투다 보면 그 경계가 모호해, 때로는 창작자들조차 이를 구분하지 못한다.

‘아이디어’를 훔친다?

흔히들 ‘아이디어를 훔쳤다’고 표현하곤 한다. 그러나 저작권의 보호 대상은 학문과 예술에 관하여 사람의 정신적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사상 또는 감정을 말, 문자, 음, 색 등에 의하여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한 ‘창작적인 표현형식’이고, 거기에 표현되어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원칙적으로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 저작권의 침해 여부를 가리기 위해 두 저작물 사이의 실질적인 유사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창작적인 표현형식에 해당하는 것만을 가지고 대비하여야 한다(대법원 2000. 10. 24. 선고 99다10813 판결, 대법원 2014. 6. 12. 선고 2014다14375 판결 등 참조).

이를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idea-expression dichotomy)'이라 부른다. 아이디어는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공동의 재료로 남겨두고, 창작자의 정신적 노력으로 만들어진 구체적 표현만을 보호한다는 원칙이다. 널리 사용되는 표준적인 표현이나, 특정 주제를 다루는 데 있어 전형적으로 수반되는 사건이나 배경,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방식이 한정되어 있어 사실상 아이디어와 표현이 하나로 붙어있는 경우 역시 보호받지 못한다.

만약 아이디어가 보호된다면 모든 후행 작품은 표절이 되고, 창작의 세계는 더욱 좁아질 것이다. 반대로 구체적인 문장, 특정한 선율과 가사, 개별적인 조형은 개인의 감정과 사상, 노력이 들어간 결과물에 해당하므로 보호되어야 한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이분법은 공동의 재료와, 이를 사용한 노력의 결과물을 구분하고자 한다.

다만 "아이디어만 빌리면 표절이 아니다"라고 간단하게 말할 수는 없다. 아이디어와 표현의 경계에는 넓은 회색지대가 있다. 소설의 큰 주제는 아이디어지만 특정 장면의 구체적 묘사는 표현이며, 그 사이 어딘가에 놓인 요소들은 개별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 문학뿐 아니라 사진이나 조형에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시각 예술에서는 ‘전체적인 인상’까지 판단의 기준이 된다. 대법원은 “저작물에 표현된 역동적이고 생동감 있는 응원의 느낌이 이 사건 사진들 속에서도 그대로 재현되어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사진의 개성과 창조성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고 하며 창작적인 표현형식이 그대로 '느껴진다'고 판단한 바 있다(대법원 2014. 8. 26. 선고 2012도10734 판결 참조).

같은 재료(아이디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반드시 같은 결과물(창작적 표현)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 필연성이 없기에 개별 저작물이 보호되는 것이며, 침해 판단 또한 이 전제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보고 베낀 것’과 ‘우연히 같은 것’의 판단

한편 표현형식이 같거나 유사하다고 해서 무조건 저작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다. 그 작품을 '보고 베낀 것'이어야 한다. 법원은 이를 '의거관계'라고 부른다. 그런데 당사자의 입장에서, 상대방이 ‘보고 베꼈는지’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 그저 ‘우연히’ 같은 것일 뿐, 보지 않았다고 항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원은 ‘의거관계는 기존의 저작물에 대한 접근가능성, 대상 저작물과 기존의 저작물 사이의 유사성이 인정되면 추정할 수 있고, 특히 대상 저작물과 기존의 저작물이 독립적으로 작성되어 같은 결과에 이르렀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있을 정도의 현저한 유사성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러한 사정만으로도 의거관계를 추정할 수 있다’고 말한다(대법원 2007. 3. 29. 선고 2005다44138 판결, 대법원 2014. 5. 16. 선고 2012다55068 판결 등 참조).

쉽게 말해 직접적인 증거가 없더라도 침해자가 기존 저작물을 알 수 있었고, 결과물이 기존 저작물과 유사하며, 우연히 같은 결과에 이를 가능성이 없다고 볼 정도로 같으면 ‘보고 베낀 것’이라고 판단될 수 있다.

또한 의거관계에 있어서는 저작권법에 의하여 보호받지 못하는 표현 등이 유사한지 여부도 함께 참작될 수 있으므로, 일부 창작적 표현의 유사성과 별개로 아이디어 역시 유사하다면 의거관계는 더욱 인정될 것이다.

정말 우연히 같은 작품이 나올 수는 있다. 그러나 그러한 '우연'은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창작자로서 충분히 기존 저작물을 알 수 있었고, 아무리 봐도 두 창작물이 비슷하다면, 법원은 '우연'이라는 항변을 쉽게 받아주지 않는다. '의거관계’가 추정되는 근거도 이 지점이다.

성숙한 시인의 훔치기

창작의 세계에서 ‘영감’은 이미 오래전부터 패러디, 오마주, 인용이라는 정당한 ‘가져오기’의 방식으로 표현되어 왔다. 이들의 공통점은 가져온 흔적을 숨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면 ‘표절’은 가져왔다는 사실 자체를 감추려 한다. 가져온 것을 제외하면 작품 속에 창작자 자신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영감’과 ‘표절’을 가르는 것은 결국 창작자 본인의 생각과 감정이 존재하는지 여부다.

앞서 나온 T. S. 엘리엇의 말은 17세기 극작가 필립 매신저가 셰익스피어를 얼마나 미숙하게 차용하였는지를 논한 평론('Philip Massinger', Times Literary Supplement, 27 May 1919)에서 나온 말로, 그 맥락 전체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시인을 시험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 중 하나는 그가 어떻게 빌려오는지를 보는 것이다.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나쁜 시인은 자신이 가져온 것을 망가뜨리지만, 좋은 시인은 그것을 더 나은 것으로, 적어도 다른 무엇으로 빚어낸다. 좋은 시인은 훔쳐온 것을 하나의 고유한 감정의 결정체로 벼려내어, 그것이 뜯겨 나온 본래의 것과는 전혀 다른 무엇이 되게 한다. 반면 나쁜 시인은 그것을 아무런 짜임새 없는 무언가 속으로 내던져 버릴 뿐이다. 좋은 시인은 대개 시대가 아득히 멀거나, 낯선 언어나, 관심이 다른 작가에게서 빌려온다."

엘리엇이 말한 "훔친다"는 것은 ‘표절’이 아니다. 원본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꾸고, 모방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소화해내는 것을 뜻한다. 저작권 침해를 다투는 일은 시인의 솜씨를 가늠하는 일과 같다. 미숙하고 나쁜 시인의 ‘표절’은 분명 드러날 것이다.

[도움]

‘법무법인(유한) 원’ 미디어·엔터테인먼트팀은 영화, 방송, 공연, 매니지먼트, 웹툰, 출판, 캐릭터 등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걸쳐 자문과 소송을 수행해 왔다. 콘텐츠 산업에서 요구되는 전문성과 풍부한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고객의 입장에서 최적의 법률 솔루션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2023년, 2024년, 2025년 ABLJ(Asia Business Law Journal)이 선정한 ‘한국 최고 로펌’에 3년 연속 이름을 올리며 엔터테인먼트 분야 전문성을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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