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부품기업 A사는 연매출이 4000억원을 넘고 영업이익도 200억원 이상이지만 시가총액은 500억원 초반대에 불과하다. 연매출 1000억원 이상인 비료기업 B사는 매년 매출과 이익 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생활용품 기업 C사도 연매출 800억원과 40억원대 이익을 내고 있다. 그런데 이들 기업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3~0.4배 수준에 머물고 있다. B사와 C사의 시가총액은 각각 300억원대와 200억원대로 시총 상장 기준 강화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PBR은 주가를 주당 순자산으로 나눈 지표다. PBR이 1배보다 낮다는 것은 시장에서 평가받는 기업가치가 장부상 순자산보다 작다는 의미다. 물론 PBR이 낮다고 반드시 저평가된 우량기업인 것은 아니다. 성장성이 떨어지거나 자산의 수익성이 낮고, 주주환원이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는 기업도 있다. 그러나 꾸준히 매출과 이익을 내면서도 단지 인기 산업에 속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낮은 평가를 받는 기업도 분명히 존재한다.
이런 기업을 시장이 매긴 가격만으로 부실기업이라고 판단할 수 있을까. 장기간 적자를 내고 자본을 잠식하면서 상장 지위를 자금 조달에만 이용하는 기업이라면 퇴출이 불가피하다. 다만 시가총액을 기업의 생존 자격과 연결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금융당국은 코스닥 상장사의 시가총액 상장폐지 기준을 올해 1월 40억원에서 150억원으로 상향했다. 내년 1월에는 200억원으로 다시 높인다. 부실기업을 정리해 코스닥의 신뢰를 높이고 우량한 혁신기업으로 자금이 흐르게 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가총액은 기업의 재무제표에 기록된 숫자가 아니라 시장 참여자들이 특정 시점에 해당 기업에 매긴 가격이다. 실적과 자산, 성장 가능성이 반영되지만 투자 유행과 업종 선호도, 거래량과 수급에도 크게 흔들린다. 인공지능(AI), 로봇, 바이오 등 일부 인기 업종에 자금이 몰릴 때 전통 제조업이나 생활밀착형 산업은 실적과 무관하게 시장의 관심에서 멀어지기도 한다.
기업가치는 늘 합리적으로 평가되지 않는다. 삼성전자는 1년 전만 해도 ‘5만전자’와 ‘6만전자’를 오갔고, 당시 ‘10만전자’는 꿈의 주가처럼 여겨졌다. 현재 삼성전자 주가는 25만원 안팎으로 당시 목표치의 두 배를 훌쩍 넘어섰다. 세계 최대 기업 반열에 오른 엔비디아도 처음에는 PC 게임용 그래픽 부품 기업에 가까웠다. 그래픽처리장치(GPU)가 가상자산 채굴에 사용되면서 예상 밖의 성장 기회를 얻었고, 다시 AI 연산의 핵심 부품으로 자리 잡으며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애플 역시 존립 위기까지 겪었지만 스티브 잡스의 귀환과 아이팟·아이폰의 성공을 거쳐 세계 최대 기업 자리를 다투는 회사가 됐다.
오늘의 저평가 기업이 모두 삼성전자나 엔비디아, 애플이 된다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어느 기업이 언제 어떤 기술과 시장을 만나 성장할지 미리 단정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시장은 기업의 가능성을 제대로 평가할 때도 있지만 말도 안 될 정도로 낮게 평가하기도 한다. 시장의 판단이 틀릴 수 있는데 시가총액을 상장폐지의 핵심 잣대로 사용하면 아직 가능성을 발견하지 못한 기업까지 증시에서 사라질 수 있다.
코스닥은 완성된 대기업만 거래하는 시장이 아니다. 위험을 감수한 자금이 작은 기업의 가능성에 투자하고, 기업은 그 자금으로 새로운 기술과 시장을 개척하는 모험자본 시장이다. 단순히 코스닥 지수를 끌어올리기 위해 시가총액이 작은 기업부터 퇴출한다면 시장의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겉모습만 단정하게 만드는 데 그칠 수 있다. 부실기업은 엄정하게 퇴출하되 매출과 이익, 현금흐름, 자본잠식, 감사의견과 계속기업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 시가총액은 기업의 생존을 결정하는 절대 기준이 아니라 여러 판단 지표 가운데 하나여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