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선비들의 여름날 일기

입력 2026-07-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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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이어지는 폭염과 가마솥더위 속에서 현대인들은 에어컨 바람과 찬 음료를 찾아 빌딩 숲을 헤맨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실내 온도가 순식간에 떨어지는 기술의 풍요 속에 살고 있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지치고 힘겹다. 문득 전기나 냉방 장치가 없던 시절, 조선의 선비들은 그 강렬한 태양 아래서 어떻게 한여름을 건넜을지 궁금해진다. 그들의 피서는 단순히 체온을 낮추는 방법이 아니었다. 마음의 요동을 가라앉히고 자연의 순리에 몸을 맡기는, 이른바 ‘정신의 피서’였다.

선비들의 피서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단연 ‘탁족(濯足)’이다. 몸 전체를 물에 훌훌 던져 넣는 것을 무례이자 격조 없는 행동으로 여겼던 선비들은, 도포 자락을 살짝 걷어 올리고 맑은 계곡물에 가만히 발을 담갔다. 발바닥의 혈자리를 통해 차오르는 서늘한 기운으로 온몸의 화기를 다스리던 그들의 모습에는 절제된 기품이 묻어났다. 여기에 뜨거운 삼계탕이나 육개장을 먹으며 땀을 흘리는 이열치열을 더해, 몸 안팎의 기운을 조화롭게 맞추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유배지의 고단함과 여름의 무더위 속에서도 운치를 즐길 줄 아는 멋쟁이였다. 그가 남긴 ‘소서팔사(消暑八事)’는 한여름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즐거움을 노래한다. 소나무 숲에서 활을 쏘고, 대자리 위에서 바둑을 두며, 동쪽 숲에서 매미 소리를 듣고, 연못의 연꽃을 감상하며, 비 오는 날 시를 짓는 일 등이다. 그들에게 여름은 피해야 할 시련이 아니라, 계절이 선물하는 고유의 정취를 온몸으로 감각하고 즐기는 기회였다.

그러나 피서의 진짜 고수들은 물리적인 시원함조차 저너머로 흘려보냈다. 성호 이익 선생은 ‘성호사설’에서 여름철 최고의 피서법으로 다름 아닌 ‘독서’를 꼽았다. 날이 고달프게 더울 때 책을 펴 들고 글귀의 깊은 뜻에 몰입하면, 어느새 마음이 고요해지고 몸에 서늘한 기운이 돌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심대체반(心大體盤·사진)’, 즉 마음이 넉넉하고 넓어지면 몸도 편안해진다는 지혜처럼, 마음이 밖으로 헤매지 않으면 더위 역시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다. 선비들에게 여름은 무기력하게 지쳐 누워있는 정체의 시간이 아니라, 뜨거운 열기를 등불 삼아 내면을 다지고 학문의 깊이를 더하는 성찰의 계절이었다.

올여름에는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좋아하는 책 한 권을 들고 근처 나무 그늘을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듯 마음에 조용한 쉼표 하나를 찍고, 선비들처럼 마음속에 서늘한 바람 한 줄기를 스스로 일으켜 세워보자. 무성한 댓잎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를 들으며 누워 잠시 푸르른 하늘을 눈에 담을 수 있는 여유를 꿈꾸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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