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무에서 탈출 … 휴식이라고 생각
차라리 엄격한 기준 갖춰 양성화를

잊혀질 만하면 가끔씩 불거진다. 사건의 모양은 비슷하다. 사람만 달라질 뿐이다. 공직자의 해외출장 스캔들이다. 공직자가 공무로 해외출장 가는 게 왜 문제가 되나. 그건 출장에 소요되는 예산이 크기 때문이다. 업무추진비와 해외출장비 모두 돈이 관련되지만, 단위가 다르다. 해외출장은 적어도 몇백만원에서 크게는 몇억원에 이른다.
국회사무처 자료에 따르면 역대 국회의장 6명이 총 80차례 해외출장을 다녀왔고 출장비로 306억1519만원을 지출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회의장 임기 2년 동안 두 달에 한 번꼴로 해외출장을 갔으며 1회 출장비가 3억8000만원이나 된다. 국회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국회의장이 뻔질나게 해외출장을 다니는 게 무슨 소용인지 의문이 든다.
공직자의 해외출장이 논란거리가 되는 이유는 예산을 들인 만큼 성과가 없기 때문이다. 민간기업은 출장갈 이유가 명확하다. 출장 가서 거래처를 만나 사업을 논의하거나 해결할 일이 있다. 하지만 정부 예산에 의존하는 공공기관은 해외출장 사유가 모호하고 성과가 불분명하다.
공직자가 해외출장을 가며 내세우는 명분은 주로 현지 시찰이나 기관 방문이다. 뜨거운 관심을 모으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IT·가전 전시회 CES나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는 해외출장을 위한 좋은 기회다. 유명 국제전시회는 정부 부처, 지자체, 공공기관 출장자들로 메워진다. 그냥 구경만 가는 것으로 부족하면 외국 기관과의 협약서 체결을 구색으로 끼워 넣는다. 해외 순방과 연계된 국제 협약이 거창하게 홍보되지만, 그 뒤에 협력사업으로 연결된 사례는 드물다.
솔직히 대부분의 해외출장은 가도 그만 안 가도 그만이다. 꼭 필요하지 않은 공직자의 해외출장에 혈세인 예산이 지출되는 것을 국민들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본다. 그러다 외유성 출장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비난이 쏟아진다. 6·3 지방선거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사퇴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재임 중에 3차례 해외출장을 모두 ‘부부 동반’으로 다녀온 사실이 밝혀졌다. 출장을 빙자한 해외여행에 정부 예산을 들여 부인까지 대동한 것은 전례가 없다. 누구의 감시도 받지 않는 선관위의 방만한 운영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노골적으로 출장의 포장을 씌워 해외여행을 가는 간 큰 공직자는 드물다. 출장 동선이 일일이 보고되고 비용 지출이 기록으로 남아 공무 중에 관광하기 쉽지 않다. 대부분의 성실한 공직자는 해외출장 일정을 빡빡하게 짜며 가급적 관광을 억제한다. 업무 사이에 살짝 근처 명소를 들를 뿐이지 하루라도 통째로 관광에 할애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광을 주목적으로 출장에 나서는 담대한 공직자들이 나타나 물의를 일으킨다. 이전에 공공기관의 감사들이 단체로 남미에 외유성 출장을 다녀와 말썽이 나기도 했다.
이처럼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직자 해외출장에 대해 감사와 감시가 강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불요불급한 해외출장이 성행한다. 대다수 공직자는 기회가 되면 해외출장을 가고 싶어 한다. 외국에 가서 구경하는 것보다 업무에서 해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직자가 되면 장기 휴가를 내기 어렵다. 수시로 결제와 보고가 올라오고 국회와 부처에서 찾으니 오랜 시간 자리를 비울 수 없다. 장기 휴가를 내고 외국에 여행 간다는 것은 공직자로서 복무의식이 부족한 것으로 치부된다. 개인 휴가로 부재 중에 소속 기관에 사고라도 터지면 감당을 못한다.
그러니 해외출장이 일종의 휴가이며 휴식인 셈이다. 매일같이 몰아치는 격무에서 자유로워지는 탈출구이다. 공직자들은 해외출장을 봉사에 대한 부가 혜택(fringe benefit)으로 간주한다. 해외출장보다 더 큰 혜택이 해외연수와 해외근무이다. 성과가 우수한 공무원에게 포상 차원에서 실시되는 해외연수와 해외근무는 가장 큰 유인책이다. 쉴 틈을 주지 않는 강도 높은 업무 압박에서 풀려나 휴식을 취하며 재충전할 수 있다. 공직자 세계에서 해외출장도 그런 맥락으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공직자도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반드시 해외출장을 나쁘게 볼 필요는 없다. 민간기업은 임무만 달성하면 출장 중에 관광하거나 가족 동반하는 것을 금하지 않는다. 자기 비용으로 충당하기만 하면 된다. 앞으로 공직자의 해외출장에 관광이나 가족동반을 금지할 것이 아니라 기준과 규정을 명확히 구분해 허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즉, 공무와 분리되는 관광과 가족동반은 자기 시간과 본인 비용으로 충당하게 하는 것이다.
어차피 막아야 소용도 없는데 이를 양성화해서 공무원도 일·휴식·가정을 양립하는 근무 여건을 조성하도록 하자. 그래야 유능한 인재들이 공직에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가정과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일에만 매달리다 해외출장에서 한숨 돌리는 공직자상은 구시대 유물로 남겨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