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다시 없을 땅…이지스가 '녹지' 곁으로 가는 이유

입력 2026-07-22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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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스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

이지스자산운용이 서울에서 선택한 대형 자산과 개발 사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남산과 서리풀공원, 우면산, 경복궁·열린송현 녹지광장처럼 대규모 개발로 대체하기 어려운 녹지와 역사문화 경관, 오픈스페이스를 곁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건물의 층고와 설비는 자본을 투입해 개선할 수 있지만, 이런 도시 환경에 접한 입지는 새로 만들기 어렵다. 건물 자체의 완성도를 넘어 어떤 환경과 연결돼 있는지가 프라임 오피스의 경쟁력을 가르는 새로운 기준으로 떠오르는 모습이다.

22일 상업용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는 최근 국내 주요 운용사 5곳이 맞붙은 광화문 케이트윈타워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 안정적인 임차 구조와 광화문 핵심 입지에 더해 경복궁과 열린송현 녹지광장을 향한 조망이 자산의 차별화 요소로 꼽힌다. 궁궐과 녹지광장이 건물 전면에 자리해 맞은편 대규모 개발로 조망이 가려질 가능성이 낮다는 점도 광화문 권역에서 흔치 않은 조건이다.

남산·서리풀·우면산…반복되는 입지 기준

이지스가 참여하는 서울의 대형 복합개발 사업을 나란히 놓고 보면 입지 기준은 더욱 뚜렷해진다.

서울역 일대 ‘이오타 서울’은 옛 밀레니엄 힐튼호텔 부지와 메트로타워·서울로타워 부지 등을 통합 개발하는 연면적 약 46만㎡ 규모 사업이다. 부지는 남산 자락과 맞닿아 있다. 서울역 앞 도심에서 조금만 들어서면 곧바로 산이 시작되는 지형이다.

이 사업은 서울시의 ‘녹지생태도심 재창조 전략’과 연계해 서울역·퇴계로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보행축의 관문 역할을 하도록 조성될 예정이다.

서초구 옛 국군정보사령부 부지의 ‘서리풀 복합개발’은 연면적 약 60만㎡ 규모다. 지난해 국내 부동산 개발사업 사상 최대 규모인 5조3500억원의 본프로젝트파이낸싱(PF)을 조달했다.

이 부지는 2013년 공매에 나온 뒤 여러 차례 유찰되는 등 오랜 기간 매각과 개발이 지연됐다. 현재 개발계획은 서리풀공원과의 접점을 사업의 차별화 요소로 전환한 것이 특징이다. 초고층 마천루 대신 녹지 속에 건물을 낮고 넓게 배치하는 ‘랜드 스크래퍼’ 개념을 적용했다.

양재동 The-K호텔서울 부지도 비슷하다.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이지스를 위탁운용사로 선정해 추진 중인 사업으로, 우면산 자락과 양재시민의숲에 인접한 약 9만9000㎡ 부지를 연구개발(R&D)·오피스·호텔·마이스(MICE) 기능을 갖춘 복합단지로 개발하는 프로젝트다. 총사업비는 최대 8조원으로 거론된다.

서울시는 사전협상 대상지 선정 당시 이곳을 R&D 혁신공간과 산업 인프라, 도심 녹지 네트워크를 결합할 전략적 거점으로 제시했다.

케이트윈타워와 이오타 서울, 서리풀 복합개발, The-K호텔서울 부지의 공통점은 단순히 녹지가 가깝다는 데 있지 않다. 산림과 도시공원, 역사문화 경관처럼 대규모 개발로 대체하기 어렵고 주변 환경의 급격한 변화 가능성도 낮은 공간을 곁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조망을 넘어 녹지·보행축까지 잇는다

이지스가 참여하는 개발사업은 공원과 산의 조망을 자산 프리미엄으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개발 부지 안에 개방형 녹지를 만들고 끊어진 보행축을 연결해 외부 녹지의 가치를 자산과 도시 양쪽으로 확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오타 서울은 전체 대지의 약 40%를 시민에게 개방되는 녹지로 조성하고 서울역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보행환경을 개선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서리풀 복합개발 역시 서초대로사거리와 서리풀공원을 잇는 녹지공원과 보행데크를 건축계획에 반영했다. 양재 사업은 부지 내 오픈스페이스를 양재천·양재시민의숲과 연계해 도심 녹지 네트워크를 조성하는 구상을 담았다.

녹지의 조망가치를 빌려 쓰는 데 머무르지 않고 녹지의 연결성을 높이는 개발인 셈이다.

스펙은 기본기…도시환경이 새 경쟁축

이 같은 입지 기준의 배경에는 서울 프라임 오피스 시장의 경쟁 구도 변화가 있다. 최근 시장에서는 준공 10년 안팎의 자산들까지 잇달아 대수선에 나서고 있다.

층고와 설비, 어메니티 같은 건물 스펙은 자본을 투입하면 후발주자도 따라잡을 수 있는 프라임 오피스의 ‘기본기’가 됐다는 의미다.

잘 짓는 것만으로 차별화하기 어려워진 시장에서 대규모 개발로 대체하기 힘든 녹지와 역사 경관에 접한 대형 부지는 서울 도심에서 사실상 소진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직장 주변 녹지에 대한 수요는 글로벌 부동산 업계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JLL이 19개 시장 64개 도시의 소비자 1만2000명을 조사한 ‘2025년 글로벌 소비자 경험 조사’에서 정규직 근로자의 77%는 직장 인근 녹지가 웰빙을 높인다고 답했다.

직장 주변의 웰빙·녹지 환경은 응답자의 73%가 중요하다고 평가해 조사 대상 지속가능성 요소 가운데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녹지 선호가 실제 오피스 가격에도 반영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MIT 연구진이 2021년 국제학술지에 발표한 뉴욕 오피스 분석에 따르면 건물 주변 가로에서 보이는 녹지 비율이 높은 자산은 녹지가 거의 없는 자산보다 거래가격이 8.9~10.5%, 실효 임대료는 5.6~7.8% 높게 나타났다.

연구진은 공원과의 거리, 지하철 접근성, 보도 폭, 지역 소득 수준, 건물 특성 등을 통제한 뒤에도 녹지에 따른 가격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했다고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공원과 우량 오피스가 결합해 프리미엄 업무 권역을 형성한 사례도 있다. 뉴욕 브라이언트파크 일대는 1990년대 공원 재생과 주변 오피스의 신축·리노베이션이 맞물리며 미드타운의 주요 오피스 권역으로 자리 잡았다.

2012년 뉴욕타임스가 보도한 JLL의 공원 인접 13개 빌딩 조사에서 평균 임대료는 미드타운 평균보다 20% 이상 높았고, 공실률은 권역 평균의 약 3분의 1 수준이었다. 2023년에도 브라이언트파크 권역은 JLL이 구분한 미드타운 세부 권역 가운데 가장 낮은 공실률을 기록했다.

임차 수요도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기업들의 사무실 복귀 기조 속에서 임차 기업들은 단순한 좌석 공급보다 직원 경험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업무 환경을 찾고 있다.

CBRE의 ‘2025년 아시아태평양 오피스 임차인 조사’에서도 응답 기업의 58%가 직원 경험 향상을 업무공간의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이지스자산운용 관계자는 “사업을 검토할 때 건물 안의 스펙뿐 아니라 장기간 유지될 주변 환경, 공개공지와 보행축의 연결성, 이용자가 체감할 공간 경험을 함께 평가한다”며 “녹지는 개발 밀도를 포기하는 요소가 아니라 자산의 장기 경쟁력을 만드는 기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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