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생산시설 확충과 글로벌 생산거점 확보를 목표로 대규모 투자에 나섰다. 차세대 바이오의약품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되면서 생산능력 자체가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로 떠오르고 있어서다.
22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GC녹십자, 비티젠 등은 글로벌 시장 공략 기반 마련에 속도를 내기 위해 2조원대 인수합병(M&A)은 물론 생산설비 확충에 수천억원을 투입하는 등 투자를 확대 중이다.
바이오의약품 생산시설은 공장 건설부터 설비 검증, 우수의약품제조및품질관리기준(GMP) 인증까지 통상 수년이 걸려 수요가 발생한 이후 투자에 나서면 시장 선점 기회를 놓칠 수 있다. 여기에 비만치료제를 비롯한 펩타이드 의약품, 항체약물접합체(ADC), 메신저리보핵산(mRNA) 등 차세대 모달리티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생산능력과 글로벌 거점, 규제 대응 경험이 신규 수주를 결정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는 곳은 삼성바이오로직스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20일 글로벌 펩타이드 위탁개발생산(CDMO) 기업인 폴리펩타이드 그룹을 14억6000만 스위스프랑(약 2조7000억원)에 인수한다고 밝혔다. 국내 제약·바이오업계 사상 최대 규모의 M&A로, 대주주 지분 인수와 공개매수를 거쳐 연말까지 지분 100%를 확보할 계획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이번 인수로 스웨덴과 벨기에, 프랑스, 미국, 인도 등 5개국 6개 생산·연구개발 거점과 약 1500명의 전문인력, 기존 고객사를 한꺼번에 확보하게 된다. 신규 공장을 건설하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셈이다.
무엇보다 항체 중심이던 CDMO 사업 포트폴리오를 펩타이드까지 확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최근 글로벌 비만치료제 시장을 주도하는 글루카곤유사펩타이드-1(GLP-1) 계열 의약품이 대표적인 펩타이드 의약품인 만큼 급성장이 예상되는 비만·당뇨 치료제 공급망에도 본격 진입하게 된다.
GC녹십자도 자체 개발 파이프라인의 상업화를 겨냥해 대규모 생산시설 투자에 나섰다. GC녹십자는 최근 충청북도·청주시와 투자협약을 체결하고 오창공장에 2026년부터 2033년까지 총 5300억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 가운데 1400억 원은미국 시장 진출을 목표로 개발 중인 20% 피하주사형 면역글로불린(SCIG) 생산설비 구축에 투입된다.
20% SCIG는 GC녹십자가 최근 발표한 ‘더 팹 파이브(THE FAB FIVE)’ 전략에서 전사적 역량을 집중할 핵심 파이프라인으로 선정한 품목이다. 회사는 내년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 3상 시험계획을 신청하고 상용화 이후 미국 면역글로불린 시장에서 두 자릿수 점유율을 확보한다는 목표다.
동아쏘시오그룹의 CDMO 계열사 비티젠도 생산능력 확대를 통해 글로벌 고객 확보에 나서고 있다. 비티젠은 올해 약 1100억원을 투자해 인천 송도 제1공장 생산설비를 증설한다. 증설이 완료되면 원료의약품(DS) 생산능력은 44%, 완제의약품(DP) 생산능력은 170% 증가한다.
업계에서는 최근 국내 바이오기업들의 투자가 단순한 생산시설 확대를 넘어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전략적 투자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 바이오업계 관계자는 “바이오의약품은 생산시설 구축과 GMP 인증에만 수년이 걸리기 때문에 시장이 열린 뒤 투자해서는 이미 늦다”며 “생산능력과 글로벌 생산거점이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핵심 경쟁력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