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규 매수 문의·매물 회수·호가 상승 등 즉각 반응 없어
청주도 외지 수요보다 SK하이닉스 종사자가 견인
전문가 “실수요 중심 시장…호재 집값 반영까지 시간 걸려”

14일 충남 천안시 삼성전자 천안사업장 인근 중개업소에서 만난 한 공인중개사는 정부와 기업이 내놓은 충청권 첨단산업 투자계획을 두고 이같이 답했다. 삼성의 대규모 투자가 지역 경제에 장기적인 호재가 될 수 있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발표 직후 주택시장에서 체감할 만한 변화는 없다는 것이다.
그는 “투자가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시장 상황에 따라 사업 속도가 달라질 수 있다”며 “이번 발표만으로 지역 경기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낄 정도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천안에서 아산 배방읍과 탕정역 일대로 발길을 옮겨도 돌아온 답은 비슷했다. 배방읍에는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이, 탕정 일대에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사업장이 자리하고 있어 삼성 계열사 종사자를 중심으로 주택 수요가 형성돼 있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투자계획 발표를 이유로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높이는 사례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고 전했다. 배방읍의 한 공인중개사는 “투자 규모가 워낙 커 장기적으로는 긍정적이겠지만 발표가 나왔다고 매도자들이 가격을 다시 부르거나 매수자가 몰리는 상황은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삼성은 이달 2일 충남 아산에서 열린 충청권 첨단산업 발전비전 국민보고회에서 충청권에 약 140조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삼성전자는 천안·온양에 56조원을 투입해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시설을 확충할 계획이다.
천안의 HBM 관련 투자가 이번에 처음 공개된 것은 아니다. 충남도와 천안시, 삼성전자는 2024년 11월 천안 제3일반산업단지 내 삼성디스플레이 부지의 기존 건물을 활용해 2027년 말까지 반도체 패키징 설비를 설치하는 내용의 투자양해각서를 체결했다. 결국 이미 투자 방향이 공개돼 있었던 만큼, 이번 발표를 당장 주택 수요를 끌어올릴 새로운 재료로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배방읍의 또 다른 공인중개사는 투자 호재보다 금융·세제 여건이 매수 결정에 더 큰 영향을 주고 있다고 봤다. 그는 “수도권에 집 한 채를 가진 사람이 기존 주택을 정리하고 천안·아산으로 내려와 집을 사기는 쉽지 않다”며 “지금은 투자계획보다 대출과 세금 부담을 먼저 따지는 시장”이라고 전했다.
청주에서도 투자계획 발표 직후 주택시장에 뚜렷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다. SK하이닉스 청주사업장이 있는 흥덕구 가경동과 SK하이닉스 생산시설과 공동주택이 함께 조성된 청주테크노폴리스 일대 중개업소들은 신규 매수 문의가 발표 전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경동의 한 공인중개사는 “하이닉스 투자 때문에 집을 알아보겠다는 문의가 새로 몰리진 않고 있다”며 “기존 고객들이 매수 시기를 묻는 정도로 외지 수요가 들어오는 분위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청주테크노폴리스 인근의 한 공인중개사 역시 “투자 규모만 보고 집주인들이 매물을 거둬들이거나 호가를 높이는 사례는 아직 눈에 띄지 않는다”며 “기존에 나온 매물을 중심으로 거래가 이어지는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청주에 낸드플래시 생산시설 M17과 첨단 패키징 시설 P&T7 등을 구축하는 데 약 100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기존 청주사업장을 중심으로 생산시설을 확대하는 내용으로 충청권에 발표된 개별 기업 투자계획 가운데서도 규모가 크다.
투자 발표에 따른 신규 수요는 뚜렷하지 않았지만 흥덕구의 주택 거래는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현지 중개업소들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경동과 청주테크노폴리스 일대의 신축·준신축 아파트를 찾는 실수요자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신규 아파트 분양가격이 오르면서 기존 신축 단지를 매입하려는 수요가 움직였다는 것이다.
매수자는 청주에서 이미 근무하거나 거주하던 실수요자가 중심이었다. 중개업소에 따르면 최근 중개한 매수자 10명 가운데 8~9명이 SK하이닉스 종사자였다.
이곳 공인중개사는 “젊은 직원뿐 아니라 청주에서 오랫동안 전세로 살던 직원들도 새 아파트로 옮기고 있다”며 “현재 거래는 투자 발표가 아닌, 기존 하이닉스 종사자의 주택 수요가 받치고 있다”고 했다.

대규모 기업 투자가 천안·아산과 청주 집값을 단기간에 끌어올리기는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두 지역 모두 외지 투자자보다 현지 거주자의 실수요 비중이 높아 투자 효과가 가격에 반영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분석이다.
KB부동산 월간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를 보면 올해 1월 지수를 100으로 환산했을 때 6월 천안시는 99.2, 아산시는 98.7을 기록했다. 5개월 동안 천안은 0.71%, 아산은 1.23% 하락했다. 천안 동남구는 같은 기간 0.91%, 삼성전자 천안사업장이 있는 서북구는 0.58% 각각 내렸다.
투자 발표 이후 아산에서 체결된 거래도 기존 가격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탕정면 매곡리 한들물빛도시예미지 전용 102.46㎡는 이달 4일 7억1500만원에 손바뀜했다. 같은 면적의 직전 거래인 지난달 30일 7억3200만원보다 1700만원, 약 2.3% 낮은 가격이다.
청주는 SK하이닉스 사업장이 있는 흥덕구를 중심으로 상승했지만 나머지 지역의 움직임은 제한적이었다. 청주시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올해 1월 100에서 6월 101로 1.09% 올랐다. 흥덕구는 같은 기간 102.8으로 2.83% 상승했다.
반면 상당구와 청원구는 각각 0.56%, 0.63% 오르는 데 그쳤고 서원구는 0.52% 하락했다. 청주 전역이 함께 오르기보다 흥덕구 일부 생활권에 상승세가 집중된 것이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천안이나 청주는 외지인이 일부러 내려가 투자하는 시장이라기보다 현지 실수요가 중심인 곳”이라며 “실수요 시장은 움직임이 느리기 때문에 대형 호재가 발표됐다고 주식처럼 가격이 곧바로 오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