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력·용수 장담하지만 만만치 않아
정부역할 ‘기업투자 조성’에 그쳐야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청와대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도약 3대 메가프로젝트 국민보고회’를 주재하고 반도체와 AI 데이터센터, 피지컬 AI를 묶은 3대 메가프로젝트를 직접 챙기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용인, 평택을 중심으로 한 사이트는 한계에 다다르고 있다”며 “용수도 풍부하고, 특히 신재생 에너지가 풍부한 곳이 서남해안 일대”라고 말했다.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은 “호남권을 제2의 반도체 생산기지로 조성하고, 총 800조원 규모의 기업 투자를 통해 메모리 팹 4기를 구축하겠다”고 말했다. “충청권은 반도체 생산 능력 확대에 따라 늘어날 패키징 수요에 대응할 수 있도록 첨단 패키징 기술을 육성하겠다”고 했다. 충남 아산을 후공정 팹으로 낙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규모가 압도적이다. 호남권에만 투입되는 돈이 1000조원 수준으로 점쳐지고 있다. 삼성·SK가 약 900조원을 쏟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를 웃도는 규모다. 삼성과 SK의 전체 지방 투자를 합치면 향후 10년간 2000조원에 이를 것이란 관측까지 나온다.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3분의 2에 달하는 사상 초유의 매머드급 투자다.
울진 한울원전과 경주 월성원전 등 국내 가동 원전 26기 중 12기가 몰려 있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한 AI 데이터센터·첨단 반도체 공장에 최적의 입지로 꼽히는 대구 경북지역은 소외되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최근 “생존을 위해 발로 뛰는 기업이 경제 논리에 따라 가장 적합한 투자처를 찾고, 정부와 지자체는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자유시장경제의 기본”이라며 “기업은 정치가 아니라 시장을 보고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용인 클러스터 생태계가 자리 잡기도 전인데 호남에 또 다른 클러스터를 급하게 추진하다 보면 결국 양쪽이 모두 실패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반도체 호황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는데 (호남권 반도체가) 진짜로 도움이 되는 것인지도 깊은 숙고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또 다른 전문가는 “용인은 이미 공장 건설과 장비 반입 등이 진행돼 1~2년 내 가동 가능성이 있지만, 호남은 부지 조성부터 해야 하기 때문에 빨라도 5년 정도 걸릴 것”이라며 “중요한 것은 지역 간 투자 경쟁이 아니라 인공지능 반도체 수요 확대에 맞춰 필요한 생산능력을 제때 확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 수급 문제도 선결과제로 꼽힌다. 전남지역에는 태양광 해상풍력 등이 있으나 간헐성이 높아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요하지만 아직 실용화되지 않고 있고 생산단가도 원전의 3~4배는 된다. 영광에 한빛원전이 있지만 이미 기존의 호남권 전력 수요를 충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인력도 큰 문제다. 올해처럼 많은 상여금을 계속 준다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고, 주택·자녀교육 등 정주 여건이 두 번째 조건이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문제는 더 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가물관리위원회에 따르면 영산강 유역은 이미 생활·공업용수가 부족해 물 수요의 73%를 섬진강 유역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때는 금강 영산강 보 해체도 논의된 적이 있다. 반도체 클러스터와 함께 늘어날 정주 인구를 감당할 신도시도 10년 안에 만들어야 한다. 반도체는 주로 항공기를 활용해 수출하는데 인근에서 가장 큰 무안국제공항 인프라가 변변치 않다는 점도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반도체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인프라도 전국에서 호남 지역이 가장 취약하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협력 생태계가 조성된 지역에 투자가 이뤄져야 비로소 시너지 효과도 생긴다”며 정부 주도의 호남 반도체 투자를 우려했다.
이재명 대통령은 민간기업에 지방 투자를 압박했다는 야권 주장에는 “직권남용이 아닌 행정지도”라며 맞받아쳤다. 정점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에 대해 “공장의 입지가 정부의 간섭과 개입으로 결정된 것임을 자인한 관치 개입 자백 발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 경제는 인공지능 혁명시대를 맞아 인공지능 칩에 필요한 반도체를 공급하면서 금년에 수출 1조달러를 내다보는 선진국 도약의 천재일우 기회를 맞고 있다. 대만은 물론 일본 미국에 이어 저가를 무기로 한 중국도 분발하고 있다.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 ‘행정지도’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이 승부수를 던지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고성장하던 중국 경제가 지금 휘청거리고 있는 배경에는 정부 주도라는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다. 정부는 투자환경을 조성해 주는 데 진력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