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등 규제에서 육성으로 방향전환
저성장 EU, 투자여력 마련이 관건

마이크로소프트의 워드와 파워포인트(PPT), 아마존의 클라우드 서비스가 갑자기 중단된다면 어떻게 될까? 뜬금없이 무슨 소리냐고 묻겠지만 유럽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기술 독립’을 추진 중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집권 1년 반이 지나면서 최악 상황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이다. 기술 독립은 부분적으로 보호무역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에 우리도 대응이 필요하다.
유럽은 위에서 언급한 비상상황, 킬 스위치(kill switch)를 영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이라 여겼다. 그러나 트럼프 집권 2기가 진행되면서 트럼프가 가능한 모든 약점을 협상 무기로 사용해온 것을 본 유럽연합(EU) 27개국은 미국 빅테크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여 나가기로 결정했다.
행정부 역할을 하는 EU집행위원회는 이달 초 유럽의 기술 주권 강화책을 발표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 클라우딩 컴퓨터와 오픈소스 4개 분야에서 기술 독립을 강화하려는 여러 정책을 담았다. EU는 이제까지의 규제 일변도를 벗어나 유럽 내 이 분야의 1등 기업(유럽 챔피언) 육성·지원으로 크게 방향을 바꿨다. 저성장을 탈피하기 위한 경쟁력 강화 및 경제안보 전략의 하나다.
또 2028년 11월 초 미 대선에서 민주당 대통령이 당선된다 하더라도 미국이 트럼프 이전으로 복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제가 유럽에서 기술 의존도 줄이기 정책을 적극 추진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구체적 방법을 보면 27개 회원국들이 기술 의존도 평가를 시행하여 집행위에 보고하게 된다. 반도체 칩과 같은 민감한 분야의 기술을 제공하는 국가의 신뢰도를 집중평가한다. 이런 평가를 기준으로 회원국들이 의존도 축소 정책을 자체적으로 실행한다. 집행위가 회원국들에 의존도 줄이는 정책을 강제할 수는 없지만 회원국들이 제출한 평가가 서로 공유된다. 회원국들은 다른 국가의 정책을 비교 검토하면서 벤치마킹할 수 있고 유사한 정책을 실천할 수 있다.
회원국마다 상이한 데이터센터 설립 규정을 단순화하고 큰 틀에서 상충되지 않게 만들어 센터 설립을 촉진하고자 한다. 앞으로 5~7년간 EU 27개 회원국 내 데이터센터 역량을 3배 제고하는 게 목표다. 지난달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2031년까지 프랑스 북부 지방에 2기가와트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이 공사에는 450억 유로, 약 77조원이 투자된다. 다른 회원국들도 이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클라우드 서비스의 의존도는 너무 높다. 현재 EU 클라우딩 시장의 70% 이상이 미국의 주요 3개 기업, 아마존과 MS, 구글이 장악 중이다. 하지만 유럽에도 대안이 있다. 독일의 SAP, 프랑스의 미스트랄(Mistral)과 같은 클라우드 서비스 기업이 여러 규정 때문에 발전에 이점을 지니게 됐다. EU의 개인정보 보호규정에 따르면 유럽 안에서 획득한 정보를 유럽의 서버에 저장하고 관리해야 한다. 그래야 유럽 내 인공지능 모델 개발에 도움이 된다. 미국의 빅테크는 이런 정보 보호 규정이 너무 까다롭다며 자국 내로의 정보 이관 허용을 요청해 왔다. 정보를 한 곳에 다뤄야 처리 비용도 덜 들고 데이터를 활용해 AI 훈련에 유용하기 때문이다.
회원국마다 상이한 데이터센터 설립 규정을 단순화하고 큰 틀에서 상충되지 않게 만들어 센터 설립을 촉진하고자 한다. 앞으로 5~7년간 EU 27개 회원국 내 데이터센터 역량을 3배 제고하는 게 목표다. 지난달 일본의 소프트뱅크는 2031년까지 프랑스 북부 지방에 2기가와트의 데이터센터를 건설하기로 합의했다. 이 공사에는 450억 유로, 약 77조원이 투자된다. 다른 회원국들도 이런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고자 한다.
유럽의 기술 주권 강화 전략에 따르면, 클라우드 서비스의 독립성을 보기 위해 서비스 통제권과 공급망, AI모델의 데이터 처리권, 그리고 인프라의 위치와 사이버 안보 등을 기준 삼는다. 이런 규정은 유럽 기업의 육성에 유리하다.
EU 회원국들은 기술 독립의 필요성과 전략은 공감하지만 돈이 부족하다. 2036년까지 데이터센터를 확충하는 데 2000억 유로, 약 340조원이 필요하다. 올해 EU는 평균 1% 내외의 저성장이 예상된다. 저성장에 시달리는 EU 회원국들이 추가로 투자할 여력이 아직은 미미하다. 그렇기에 소프트뱅크와 같은 민간자본의 투자 유치가 더 필요하다.
기술 독립과 추진되는 정책은 간접적인 보호무역의 성격을 지닌다. 지난달 공개된 EU의 산업가속화법에 따르면 유럽의 제조업 부흥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 공공조달에서 친환경의 유럽산을 우선 구매한다. 직접적으로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지는 않지만 유럽에서 생산된 친환경 제품이 우선 구매되기에 이 시장에 참여하려면 국내 기업이 유럽에 투자해 물건을 만들 수밖에 없다.
‘하룻밤에 읽는 독일사’ 저자
팟캐스트 ‘안쌤의 유로톡’ 제작·진행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