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창] ‘시인학교’ 교장 선생님

입력 2026-06-1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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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한 시인의 부음을 들었다. 이름은 정동용. 많은 문인들이 그를 ‘시인학교 교장’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본인은 시만 쓰고 시집 한 권 펴내지 않았다. 그는 젊은 시절 서울 인사동에 ‘시인학교’라는 카페를 차렸다. 많은 문인들이 그 카페를 즐거이 찾았다. 막걸리도 팔고 맥주도 팔았지만, 외상도 잘 주었다. 누가 맥주를 달라고 하면 “오늘은 그냥 막걸리를 마셔요.” 하고 메뉴를 자신이 정할 때가 많았다. 그러면 또 다들 웃었다.

그러다 서울 인사동의 ‘시인학교’를 접고 일산 신도시로 왔다. 그 무렵 나도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일산으로 들어왔다. 일산 신도시가 처음 생겼을 때였다. 그때 일산에 두 개의 카페촌이 있었다. 시내의 카페촌은 밤이면 불빛 요란한 술집들이 모여 있고, 경의선 철길 넘어 시 외곽지역의 카페들은 홀 중앙에 커다란 무쇠 난로거나 페치카를 설치해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냈다. 이 카페들은 신도시가 생기기 전부터 이미 드문드문 있었다. 신도시가 생기자 다시 나무나 연탄을 때서 난방을 하는 옛날 방식의 카페들이 더 많이 생겨났던 것이다.

그 무렵 내가 자주 다니던 ‘시인학교’도 그런 무쇠난로 카페 중의 하나였다. 페치카를 때는 카페도 있었다. 일산에 와서도 정동용 시인은 ‘시인학교 교장’ 하고 명함까지 박아 카페를 운영했다. 여전히 외상손님이 많았고, 외상 재촉도 그다지 않는 듯했다. 일산으로 막 이주해 그 카페에 자주 놀러갔다. 그 집의 장작 난로가 좋아서였다. 그 카페 덕에 대관령을 떠나 도시 한 귀퉁이에 와 살면서도 겨울마다 장작을 패보는 즐거움을 누렸던 것이다.

무쇠 난로나 페치카는 웬만한 굵기의 통나무는 그냥 잘라서 때지만 너무 굵은 것은 두 쪽이나 네 쪽으로 쪼개야 한다. 그 일을 몇 해 겨울 내가 자원하여 대신 해주었다. 전부 다 해준 것은 아니지만, 아주 많은 분량의 장작을 자원봉사로 패주었다. 취미생활을 하듯 며칠에 한 번씩 ‘시인학교’로 장작을 패러 갈 때마다 자동차 뒷자리에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를 태우고 다녔다. 아빠가 장작을 얼마나 잘 패는지를 누구에게든 증명해 줄 아이들이었다.

그 시절 내게는 정말 장작패기만 한 겨울 스포츠가 없고, 또 그만 한 취미생활이 없었다. 그런데 그 시인이 운영하던 ‘시인학교’가 몇 년 후 그만 문을 닫고 말았다. 더 색다른 카페들이 많이 생겨난 때문이기도 하고, 경영을 너무 느슨하게 해서이기도 했다. 시인 입으로 외상값만 다 받아내면 서울에 집 두 채를 산다고 말했을 정도였다.

외상값 말고도 카페가 그 시대 유행하던 새로운 수요를 충족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카페촌에 새로 생긴 신흥 카페들과의 경쟁에서 지고 만 것이다. 페치카나 무쇠난로가 새로운 난방기구에 진 것이 아니라 그 카페 운영 방식에서 진 것이다. 지금도 그곳엔 여전히 페치카에 나무를 때는 전통카페들이 있다.

‘시인학교’가 문을 닫고 난 다음 나는 철길 넘어 시 외곽의 카페촌에 갈 때마다 나를 새로 그 집의 ‘장작을 패는 나무꾼’으로 받아줄 카페가 없나 두리번거리곤 했다. 그러는 동안 ‘시인학교 교장’ 선생과도 오래도록 소식을 주고 받지 못했다. 이따금 근황만 듣는 가운데 30년이라는 세월이 지나가고 어느 날 그의 부음을 들은 것이다. 그때 강원도 먼 곳에 가 있어서 빈소에도 가보지 못했다.

안타까움으로 그 시절을 추억하며 정동용 시인학교 교장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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