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 AI 반도체를 중심으로 지난달 수출이 전년 대비 53.2% 급증한 877억5000만달러(약 133조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대만도 1분기 수출이 51.1% 늘었고 중국 역시 5월 수출이 19.4% 증가하는 등 AI와 첨단 제조업 수요에 힘입어 호황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거리의 분위기는 다르다. 한국에서는 자영업자 폐업이 늘고 소비심리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다. 중국은 청년실업과 부동산 침체가 장기화하고 있다. 대만 역시 수출기업과 내수 업종 간 온도 차가 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첫 번째 이유는 AI 산업의 성장 방식 자체에 있다. 과거 제조업 호황은 자동차, 가전, 조선 등 광범위한 산업에서 일자리를 창출했다. 그러나 AI 붐의 중심인 반도체 산업은 막대한 설비투자가 필요하지만 고용 유발 효과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다.
두 번째는 자산시장 양극화다. AI 열풍은 주가를 끌어올리지만 주식을 보유한 계층과 그렇지 않은 계층의 격차도 확대한다. 한국과 대만에서는 반도체 관련 종목이 증시 상승을 주도하고 있지만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여전히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 역시 첨단 제조업은 성장하고 있지만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가계자산은 위축되고 있다.
세 번째는 인구구조 변화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공통으로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이 커질수록 가계는 소비보다 저축을 선택한다. 수출이 늘어도 소비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다. 특히 중국은 부동산시장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가계가 지갑을 닫고 있고 한국 역시 노후와 의료비 부담 때문에 소비 성향이 낮아지고 있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우선 AI 산업의 성과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첨단 제조업에만 집중된 투자를 서비스업 생산성 향상 등으로 연결하는 정책이 필요하다. 의료, 교육, 물류, 금융 등 전통 산업에 AI를 접목해 새로운 일자리와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필립 레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AI 생산성 증대 효과를 극대화하려면 중소기업의 AI 도입을 지원하고 인력 재교육과 무형자산 투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가계의 소비 여력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임금 상승이 생산성 향상과 연결될 수 있도록 노동시장 개혁과 세제 개선이 필요하다. 고령화 시대에 맞는 연금과 의료 체계를 구축해 미래 불안을 줄이는 노력도 병행해야 한다. 크리슈나 스리니바산 국제통화기금(IMF) 아시아태평양 국장은 사회안전망 확대를 통한 내수 증대 등 ‘경제 리밸런싱’을 해법으로 제시했다.
AI는 분명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그러나 수출 통계와 주가지수만으로 경제의 건강함을 판단할 수는 없다. 경제가 진정으로 성장했다는 것은 기업 실적뿐 아니라 가계의 삶도 함께 나아졌을 때 가능한 일이다. 지금 동아시아가 마주한 과제는 AI가 만들어낸 수출 호황을 국민이 체감하는 번영으로 바꾸는 것이다. 수출과 내수의 간극을 좁히지 못한다면 화려한 성장률 뒤에 숨은 ‘착시 경제’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