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은 최근 미국에서 순자산이 100만달러(16억원)를 넘어도 부유함을 체감하지 못하는 ‘이름뿐인 백만장자‘가 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닛케이는 비용 부담 때문에 레스토랑에 가는 대신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바비큐를 하고 가족 여행도 비행기 대신 장시간 자가용 운전을 택하는 여러 백만장자 사례를 소개해 주목을 받았다.
몇 년간 이어진 인플레이션이 돈의 가치를 빠르게 갉아먹은 영향이다. 또 미국 금융회사 노스웨스턴 뮤추얼이 지난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투자 가능한 자산이 100만달러 이상인 사람 중 ‘나는 부유하다고 느낀다’고 답한 비율은 세 명 중 한 명에 불과했다.
UBS 웰스매니지먼트가 지난해 발표한 ‘부유층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의 순자산 100만달러이상의 백만장자 인구는 약 2400만 명으로 추정됐다. 이는 미국 성인 인구의 10% 수준으로 백만장자가 더 이상 극소수가 아니게 됐다. 이제 ‘백만장자=여유로운 삶’이라는 공식은 옛말이 된 것이다.
미국의 많은 백만장자가 여유를 느끼기 힘든 이유는 자산은 늘었지만 당장 쓸 수 있는 돈이 많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상당수 자산은 주택과 은퇴계좌에 묶여 있고, 생활비·보험료·교육비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이는 한국에서도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서울의 수십억원대 아파트에 살면서도 ‘생활이 빠듯하다’고 말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집값 상승으로 장부상 자산은 불어났지만, 대출이자·교육비·노후 대비 부담 속에서 정작 체감하는 여유는 크지 않다고 토로한다.
물론 고물가 시대에 절약은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특이한 것은 중산층·고소득층, 심지어 백만장자까지 ‘언제든 추락할 수 있다’는 불안 속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 점이다. ‘불안의 민주화’가 이뤄진 세상에서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돈보다 ‘내일은 오늘보다 나을 것’이라는 낙관의 힘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