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엇보다 기초단체장과 교육감은 ‘깜깜이 선거’의 늪에 빠져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가 맞붙은 서울시장은 알아도 우리 동네 구청장, 구의원이 될 사람이 누구인지, 교육감 후보는 몇 명인지, 이들이 지역에서 펼칠 행정과 교육 철학을 제대로 알고 있을 유권자가 과연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공약을 살피는 것은 언감생심(焉敢生心), 후보 이름조차 낯선 채로 기표소에 들어설 것이 훤하다.
수조원 규모의 교육 예산과 지역 교육정책을 좌우하는 막강한 자리인 교육감 선거는 제도적 모순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정치적 중립성을 이유로 정당 표기를 못 하게 한 탓에 유권자는 후보의 성향이나 정책 방향을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정책 경쟁보다 ‘누가 더 유명한가’가 당락에 영향을 미치는 기형적 구조가 반복된다.
금배지 14개가 달린 재‧보궐선거도 마찬가지다. 미니 총선급으로 치러지지만 하정우 민주당 후보, 박민식 국민의힘 후보, 한동훈 무소속 후보의 ‘3파전’ 구도인 부산 북갑 외에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가 출마한 평택을 정도가 전국적 관심을 받을 뿐이다. 나머지 지역은 후보 검증이나 정책 경쟁보다 정당 간판과 조직력에 기대는 지선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날까. 가장 큰 원인은 지방자치가 확대됐지만 선거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선거를 한날한시에 몰아넣었다. 유권자의 정보 접근성도 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총선거에 비해 현저하게 떨어진다. 방송 토론은 형식적이거나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고 지역 공약을 검증할 수 있는 채널도 부족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하고 있지만 활용도는 극히 낮을 수밖에 없다.
선거를 분산할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광역·기초단체장, 교육감 선거를 한꺼번에 치르면 유권자들은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없다. 교육감 선거만이라도 분리하거나 최소한 투표일을 달리해야 한다. 선거비용이 급증하고, 지방자치와 교육자치 연계가 약화할 수 있지만 성숙한 민주주의를 위해 고통이 따르더라도 옳게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법 개정 사항인 만큼 정치권이 공론화를 서두를 필요가 있다.
유권자들의 알권리도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 공약을 주제‧쟁점별로 비교할 수 있는 플랫폼이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미 검증된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하면 어려운 일도 아니다. 후보들의 방송 토론 의무화도 확대해야 한다.
특히 선거 제도의 문제를 인식하는 것과 참여하는 것은 다른 얘기다. 제도가 나쁘다는 이유로 기권하면 결과는 더 나빠진다. 투표하지 않는 것은 결과에 항의할 자격이 없다는 말과 같다. 무관심은 정치 혐오를 줄이지 못한다. 오히려 더 나쁜 정치를 고착화시킨다.
지방선거는 대통령 선거보다 덜 화려할지 몰라도 우리 삶에 훨씬 가까이 닿아 있다. 집 앞 도로, 학교, 복지, 재개발, 지역 예산 결정권자를 선택하는 일이다.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소수가 침묵하는 다수의 삶을 결정하는 것이 투표다.
미국의 정치학자 로버트 달은 민주주의의 가장 큰 위험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이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를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는 시민이 지도자를 상당한 수준으로 통제하는 과정”이라고도 했다. 빼거나 보탤 말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