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마이마이] 10대 소녀들이 뽑은 한로로

입력 2026-05-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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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다녀왔다. 오랫동안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대중문화와 관련된 강연을 해왔지만, 가장 긴장되는 강연이었다. 무려 여중 1학년들이 대상이었기 때문이다. 2013년생이다. 내 나이 마흔에 태어난 친구들이다. 나는 아이가 없다. 하나밖에 없는 조카도 그들보다 나이가 많다. 무슨 이야길 해야 하나. 대중강연의 달인인 후배에게 상담했다. 그는 말했다. “형님, 사전에 설문조사를 해보세요. 학생들이 어떤 가수를 좋아하는지만 알아도 도움이 될 겁니다.”

담당 교사에게 부탁해 설문지를 돌렸다. 90명을 대상으로 한 스몰 데이터지만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절대적 인기를 누리는 팀은 없었다. BTS나 블랙핑크를 꼽은 친구들은 의외로 소수였다. 이런 팀들은 그들에겐 데뷔한 지 오래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트 투 하트 같은 신생 팀들 역시 소수였다. 절대 강자가 없는 현재의 K팝 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선호하는 K팝 그룹은 쪼개져있는 반면, 의외의 음악인이 선호도 최상단에 있었다. 한로로였다. 최근 ‘유퀴즈’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등 인디신의 대세로 떠오른 한로로다. 하지만 설문조사를 할 때만 해도 아직 매스미디어에 등장하진 않을 때였다. 그러니 놀랄 수밖에. 자연스레 나의 중1 때를 떠올려봤다. 내가 능동적으로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한 게 딱 중1 때였으니까.

청소시간이 되면 교실 스피커에선 음악이 흘렀다. 보통은 유행하는 가요나 팝송을 틀어줬다. 여느 때처럼 빗자루와 대걸레를 들고 바닥 청소를 하던 날, 처음 듣는 음악이 나왔다. 음악보단 소음 같았다. ‘크게 라디오를 켜고 다같이 노래해요’라는 가사가 귀에 들어왔다. 그렇다. 그해 발매된 시나위의 데뷔 앨범 타이틀 곡 ‘크게 라디오를 켜고’였다. 매력적인 소음이었다. 록과 헤비메탈의 세계에 그 순간 입문하게 됐다. 그때 학생들에게 헤비메탈은 지금의 인디와 같은 위치였다. 소수의 아이들이 좋아하지만, 내가 소수라는 사실로 약간의 우월감을 안게 되는 그런 음악이었다.

본격적인 강연을 시작하기 전, 한로로를 꼽은 아이들에게 물었다. 왜 한로로를 선택했냐고. 음악을 좋아할 때 이유를 설명하는 건 사랑과 비슷하다. 어떤 이유를 대도 부족함을 느낀다. 아직 언어감각이 서툰 중1이라면 더욱 그렇다. 내가 헤비 메탈에 빠져든 이유를 그때의 나 역시 설명하지 못했다. 한로로를 꼽은 아이들 역시 ‘그냥 좋아서’가 대부분이었다. 그중 한 친구가 망설이다 말했다. “아이돌은 남 얘기 같은데 한로로는 내 얘기 같아요.”

어느 시대나 음악 시장의 주요 소비자는 10대나 20대다. 그러나 그 음악 모두에 ‘청년 문화’라는 말이 붙지는 않는다. 새로운 젊은 세대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음악만이 그럴 자격을 얻는다. 70년대 포크, 80년대 록, 90년대 서태지와 아이들부터 인디까지 그랬다.

50대 초입이 된 나는 한로로가 14세 소녀들의 어떤 마음을 대변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크라잉 넛과 델리 스파이스와 동시대에 청년기를 보냈고, 장기하와 검정치마와 함께 청년기를 벗어났다. 그들 대부분을, 당시의 기성 세대는 이해하지 못했다. 이 또한 청년문화의 숙명이기도 하다. 디지털 네이티브를 넘어, 인공지능(AI)과 함께 10대를 보낼 세대에게 한로로는 어떤 문화로 기억될까. 좋은 모델이 되어주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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