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기사의 업무 수행 기준을 현행 의사의 ‘지도’에서 ‘처방·의뢰’로 변경하는 내용의 ‘의료기사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의료기사법 개정안)’ 심의가 본격화하면서, 보건의료계에 직역 갈등 우려가 커졌다. 의사와 치과의사 등 단체들은 의료기사 단독 활동이 환자 안전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면서 반발하고 있다.
19일 의료계에 따르면 최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에서는 의료기사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날 오후 2시 제1차 법안심사제1소위원회를 열고 의료기사법 개정안을 단건 상정해 심사했다. 이날 복지위는 법안을 처리하지는 못했지만, 공청회와 전문가 의견 수렴 등 숙의 과정을 거쳐 향후 법안을 다시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법률 개정안 논란의 중심에 있는 의료기사는 임상병리사, 방사선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과기공사, 치과위생사 등 6개 직종이다. 이들은 국가 시험을 치르고 보건복지부 장관 명의의 면허를 취득해 의학적 검사나 치료를 수행한다. 병·의원에 고용돼 의사의 지시에 따라 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기존 의료기사법은 의료기사의 정의를 ‘의사 또는 치과의사의 지도 아래 진료나 의화학적 검사에 종사하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있다. 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국민의힘 최보윤 의원 등이 발의한 개정안은 의료기사가 의사의 ‘지도’뿐 아니라 ‘처방·의뢰’에 따라서도 업무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한다. 초고령 사회에 진입하면서 재택 돌봄 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의료기사가 의료기관 외 가정이나 사회복지시설을 방문해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허용한다는 취지다.
의사 단체들은 의료사고 발생 위험이 있다며 법안을 즉각 철회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사의 지도와 감독이 없는 상태로 의료기사가 수행하는 의료행위는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 의사들의 주장이다. 의사 단체들은 의료계 주장이 반영된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날 대한의사협회와 대한치과의사협회는 결의문을 통해 “현행 의사 및 치과의사의 지도를 처방·의뢰로 바꾸는 것은 면허체계의 원칙을 망각한 위험한 시도”라며 “의사와 치과의사의 직접적인 지도⋅감독이 배제되면 의료기사의 임의적 업무 수행으로 인해 진료 중 환자 상태 변화에 따른 적절한 대처 및 의료행위가 불가능해진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의사와 치과의사들의 관여가 불가능한 원외에서 의료기사가 단독으로 업무를 수행하다 사고가 나면 그 사고에 대한 책임소재가 불분명해져 큰 혼란이 야기된다”라며 “ 책임 구조를 해체하는 개정안은 결국 행정적 부담, 법적 분쟁의 남발, 비용적 낭비로 이어져 국가 보건의료체계의 붕괴를 불러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부의 법안 개정이 졸속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이들 단체는 “정부 로드맵 상 방문 재활 도입은 2028~2029년으로 당장 법 개정을 서두를 이유가 전혀 없음에도 국회는 의료기사 단체의 압박에 밀려 당초 예정에 없던 법안심사 소위원회를 기습적으로 개최하며 졸속 심사를 강행하고 있다”라며 “이미 의료계는 ‘지도’의 공간적 범위를 넓히는 정보통신기술 기반의 합리적 대안을 제시했다”라고 강조했다.
의료기사의 ‘단독 개원’에 대한 우려도 크다. 현행 의료법상 단독으로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있는 주체는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등이다. 의협과 치의협은 이번 개정안에 대해 “추후 의료기사가 의료행위를 독자적으로 수행하고, 나아가 독자적 개원이 가능하도록 업무 범위를 확장하려는 근거를 마련하는 꼼수”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다만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개정안은 의료기사 단독 개원을 허용하지 않으며, 의료기관에 소속된 의료기사만 방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도록 명확히 제한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통합돌봄 체계 구축은 이재명 정부가 주요 목표로 추진 중인 정책 과제다. 이 때문에 통합돌봄 서비스의 일환으로 방문 재활을 도입하기 위한 제도 정비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의사 단체들이 이번 의료기사법 개정안에 대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엄정 대응’을 예고한 만큼, 당분간 의료계 긴장감이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