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잘 못지내셨으면 좋겠어요"...체벌이 남긴 상흔과 교권의 붕괴

입력 2026-05-14 07:00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영화 '스승의 은혜' 리뷰 영상. (출처=홍쓰무비 유튜브 캡처)
▲영화 '스승의 은혜' 리뷰 영상. (출처=홍쓰무비 유튜브 캡처)

▲'스승의 은혜' 리뷰 영상에 달린 댓글들. (출처=홍쓰무비 '스승의 은혜' 리뷰 영상 댓글 화면 캡처)
▲'스승의 은혜' 리뷰 영상에 달린 댓글들. (출처=홍쓰무비 '스승의 은혜' 리뷰 영상 댓글 화면 캡처)

5월 15일 스승의 날을 앞두고, 2006년에 개봉한 공포영화 '스승의 은혜'의 유튜브 리뷰 영상이 다시 한번 화제가 되고 있다. 조회수 251만 회를 넘긴 이 영상의 댓글 창에는 4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는데, 학창 시절 교사에게 당한 폭력과 모욕을 고백하는 글들이 줄을 이었다.

엉덩이를 심하게 맞아 평생 꼬리뼈 통증을 안고 살게 되었다는 사연, 장애인 급우가 교사에게 성추행을 당했다는 사연, 촌지를 가져오지 못했다는 이유로 맨손으로 밥을 먹게 했다는 사연 등이 수천 개의 공감을 받았다. 심지어는 ‘가난한 형편에 정성껏 캐온 배추를 교사가 아이들 앞에서 반으로 쪼갠 뒤 음식물 쓰레기통에 직접 버리게 했다’는 증언도 있었다.

체벌이 '교육'이던 시대

▲영화 '친구' 스틸컷. (네이버 영화)
▲영화 '친구' 스틸컷. (네이버 영화)

한국에서 교사의 학생 체벌은 오랜 기간 법적으로 허용되었을 뿐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1998년 이전 구 교육법 체제하에서는 체벌에 관한 구체적인 규제 조항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1998년 교육법이 폐지되고 새로 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7항도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학생에게 신체적 고통을 가하지 않는 훈육, 훈계 등의 방법으로 지도해야 한다"고만 명시하여, 역설적으로 "교육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체벌이 가능하다는 해석의 여지를 남겼다.

대법원 역시 교사의 체벌이 "학생의 행동을 교정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서 적절하게 사용된 경우 정당화될 수 있다"는 법리를 유지해왔다.

사회적 분위기도 체벌을 옹호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한 교실에 60명이 넘는 학생이 앉아 있는 경우가 많았고, 교실이 부족해 초등학교에서 2부제 수업을 하는 학교도 드물지 않았다. 그만큼 수많은 학생을 통제해야 하는 교사에게 체벌은 가장 손쉬운 수단이었다. 교사와 학부모 모두 "매를 맞아야 정신을 차린다"는 인식을 공유했고, 학생들조차 이런 분위기에 물들어 체벌을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 시기 체벌의 수단은 회초리에 그치지 않았다. 골프채, 슬리퍼, 장구채, 야구 방망이, 심지어 의자 다리까지 동원되었다. 체벌의 부위도 손바닥이나 종아리에 한정되지 않았다. 수많은 증언이 머리, 등, 엉덩이에 대한 무차별적 가격을 전하고 있으며, 일부 교사는 학생의 머리를 교실 벽에 부딪치게 하거나 귀를 잡아 들어올리는 등 폭행에 가까운 행위를 일삼았다.

체벌은 학습 지도의 영역을 넘어 촌지의 액수, 가정의 경제적 형편, 학생의 외모나 장애 여부에 따라 차등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했다. 가난한 학생에게 공개적인 모욕을 주거나, 장애가 있는 학생을 더 가혹하게 대하는 사례는 영화 '스승의 은혜'의 극중 묘사와 비슷하다.

체벌은 교사의 ‘권리’?

▲1990년 10월 31일 조선일보 19면. 학생 체벌로 선생이 유죄를 받았다는 내용이 실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1990년 10월 31일 조선일보 19면. 학생 체벌로 선생이 유죄를 받았다는 내용이 실렸다.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체벌 문화가 얼마나 깊게 뿌리내려 있었는지는 실제 법원 판결과 언론 보도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난다.

1971년 경남 함안의 한 중학교에서는 교장이 통행금지를 어긴 학생 7명을 사흘간 심하게 구타했는데, 법원은 이 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974년에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체육교사가 민방위 훈련에 불참한 학생의 뺨을 때려 뇌진탕으로 숨지게 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학생이 사망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교사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결은 당시 사회가 교사의 체벌권을 얼마나 넓게 인정하고 있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1980년대까지 견고하게 유지되던 이 무죄 판결 기조에 균열을 낸 것은 1988년 대구 북비산국민학교 사건이다. 교사 김 씨는 자연 과목 시험에서 틀린 문항의 수만큼 학생의 엉덩이를 때리는 체벌을 가했고, 학생은 전치 6주의 부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형사 기소로 이어졌고,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는 교권옹호기금까지 동원해 교사의 소송을 지원하며 대법관에게 선처를 요청하는 서한을 보냈다.

그러나 1990년 대법원은 교사의 유죄를 확정하고 벌금 30만원을 선고했다. 체벌 교사에게 유죄를 확정한 최초의 대법원 판결이었으며, 사회에 충격을 준 판결이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각종 언론이 "교사폭력", "교육폭력"이라는 단어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체벌 문제가 처음으로 사회적 의제로 부상했다. 그러나 여론의 관심은 오래가지 않았고, 이후에도 체벌 사건은 끊이지 않았다.

체벌 금지까지의 험난한 길

▲(사진=AI 생성)
▲(사진=AI 생성)

체벌 규제의 시도는 실제로 여러 차례 있었다. 1966년 서울 시내 교장단이 "일체의 체벌 금지"를 행동강령에 포함했고, 1979년 문교부는 생활지도지침을 통해 체벌 금지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법적 강제력이 없는 단순 지침에 불과했다. 교육부 안에서 보수적 성향의 관료와 교장들의 입김이 강했고, 현장에서 체벌 금지는 번번이 유야무야되었다.

실질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2009년 이후다.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김상곤 후보는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고, 당선 후 학생인권조례제정위원회를 구성하여 조례안을 만들었다. 2010년 9월 경기도의회를 통과한 경기도 학생인권조례는 체벌 금지를 명시한 전국 최초의 자치 법규였다.

이후 2011년 1월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도구나 신체를 이용한 "직접체벌"은 금지하되, 교실 뒤에 서 있게 하기 같은 "간접체벌"은 허용하는 절충안을 발표했다. 같은 해 3월 개정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31조 제8항은 "도구, 신체 등을 이용하여 학생의 신체에 고통을 가하는 방법을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여 직접체벌을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회초리, 골프채, 슬리퍼로 학생을 때리던 수십 년의 관행이 법적으로 종결된 순간이었다.

과거의 트라우마가 현재의 교권 침해로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인 2023년 9월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내 고인이 근무한 교실에 꽃이 놓여져 있다. (뉴시스)
▲서이초등학교 사망 교사 49재인 2023년 9월4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 내 고인이 근무한 교실에 꽃이 놓여져 있다. (뉴시스)

체벌이 법적으로 금지된 후, 한국 교육 현장은 정반대의 문제에 직면했다. 교사의 정당한 생활 지도마저 "아동학대"로 신고되는 사태가 잇따른 것이다.

2023년 7월 18일, 서울 서초구 서이초등학교에서 임용 2년 차의 젊은 교사가 학교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학부모의 악성 민원과 업무 스트레스에 시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며, 이 사건은 한국 교육계에 거대한 충격을 안겼다. 서이초 학부모 민원 내역에는 담임 교사의 생활지도와 교과지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하는 민원 뿐만 아니라, 안전을 위한 통제에 대한 불만 등 허용 범위를 넘어서는 요구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경찰은 조사 끝에 직접적인 가해 정황은 확인하지 못했다며 내사를 종결했다.

이에 분노한 교사들은 거리로 나왔다. 2023년 9월 4일 서이초 교사 49재 추모 집회에는 약 10만 명이 참여했다. 결국 국회는 같은 달 21일 교권보호 4법 개정안을 본회의 1호 법안으로 통과시켰다.

개정된 법의 핵심은 다음과 같다. 교원의 정당한 생활 지도는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것, 학부모는 교원과 학교의 교육 지도 활동을 존중하고 협조할 의무가 있다는 것, 교원이 아동학대로 신고되더라도 정당한 사유 없이 직위해제 처분을 할 수 없다는 것, 그리고 학교장이 민원 처리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법이 바뀌었다고 현실이 즉시 달라지지는 않았다. 2024년 한국리서치가 실시한 전국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78%는 현재 교권 침해가 ‘심각’하다고 답했으며, 그 원인으로 가장 많이 꼽힌 것은 "학부모의 내 자녀 중심주의"(50%)였다. 교권을 침해하는 주체가 누구냐는 질문에는 71%가 학부모를 지목했다.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실태조사에서도 교권보호위원회 개최 건수는 4234건으로 최근 5년간 증가세를 보였고, 특히 초등학교는 2020년 94건에서 2024년 704건으로 약 7.5배, 중학교는 20년 524건에서 24년 2503건으로 약 4.8배 늘었다.

전문가들은 교사에 대한 학부모들의 인식 변화가 이같은 결과를 만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교사를 △내 아이를 위해 일해주는 사람 △존경의 대상이 아닌 민원의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학생의 미래를 함께 논의할 상대로 인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앞으로의 과제

▲2024학년도 망포중학교 스승의 날 기념 행사. (이투데이 DB)
▲2024학년도 망포중학교 스승의 날 기념 행사. (이투데이 DB)

"스승의 은혜"라는 노래는 감사와 존경을 담은 노래지만, 누군가에게는 은혜는커녕 평생 지워지지 않는 폭력의 기억이다.

과거에 매를 들었던 교사들의 잘못을 현재의 젊은 교사들이 대신 짊어져야 할 이유는 없다. 동시에, 과거에 상처받았던 학생들의 아픔이 "그때는 다 그랬다"는 말 한마디로 지워져서도 안 된다.

이제 필요한 것은 학생 인권이냐 교권이냐를 놓고 한쪽에 무게를 두는 일이 아니다. 학생 인권과 교권은 서로를 위협하는 힘이 아니라, 건강한 교실을 떠받치는 두 개의 기둥이다. 한쪽이 무너지면 다른 쪽도 서 있을 수 없다. 두 가치가 서로 잡아먹는 관계가 아니라 함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핵심이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국민주 삼성전자의 눈물, '시즌2' 맞은 코리아 디스카운트 [삼성전자 파업 초읽기]
  • 광주 여고생 살해범 신상공개…23세 장윤기 머그샷
  • 뉴욕증시, 4월 PPI 대폭 상승에 혼조...S&P500지수 최고치 [상보]
  • 고공행진 이제 시작?...물가 3%대 재진입 초읽기 [물가 퍼펙트스톰이 온다]
  • 탈모도 ‘혁신신약’ 개발 열풍…주인공 누가 될까[자라나라 머리머리]
  • 멋진 '신세계' 어닝 서프라이즈에…증권가, 목표주가 66만원까지 줄상향
  • 은행권, 경기 둔화에도 생산적금융 속도…커지는 건전성 딜레마
  • “전쟁 때문에 가뜩이나 힘든데”…공사비 올리는 입법 줄줄이
  • 오늘의 상승종목

  • 05.14 09:07 실시간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7,923,000
    • -1.17%
    • 이더리움
    • 3,360,000
    • -0.5%
    • 비트코인 캐시
    • 646,000
    • -0.92%
    • 리플
    • 2,121
    • -0.52%
    • 솔라나
    • 135,600
    • -3%
    • 에이다
    • 394
    • -1.99%
    • 트론
    • 520
    • +0.39%
    • 스텔라루멘
    • 236
    • -2.07%
    • 비트코인에스브이
    • 24,510
    • -1.96%
    • 체인링크
    • 15,210
    • -0.33%
    • 샌드박스
    • 115
    • -1.7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