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일은 56번째 지구의 날입니다.
건물 외벽 조명이 꺼지고, "잠시라도 전기를 덜 쓰자"는 문구가 붙습니다. 그런데 같은 시각 세계 곳곳의 데이터센터는 더 많은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습니다. 검색하고, 번역하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드는 인공지능(AI) 서비스가 늘수록 서버는 멈출 수 없는 설비가 됐기 때문입니다. 지구를 생각하는 날에 AI의 전력 문제가 함께 부각되는 배경입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는 17% 늘었고, AI 중심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50% 급증했습니다. IEA의 '글로벌 에너지 리뷰 2026'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지난해 미국 전력 수요 증가분의 약 50%를 차지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전기를 많이 쓰는 시설로 여겨지던 제조업뿐 아니라, 데이터센터도 주요 전력 수요처로 부상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흐름은 앞으로 더 강해질 가능성이 큽니다. 미 에너지부의 요청으로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가 발간한 '2024년 미국 데이터센터 에너지 사용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 사용량은 2023년 176테라와트시(TWh)로 전체 전력의 4.4%를 차지했습니다. 보고서는 경제 성장 속도에 따라 2028년까지 미국 전체 전력의 12%까지 소비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속도가 이제는 경기 회복이나 제조업 증설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현장의 부담은 장비 사양에서도 드러납니다. 엔비디아가 공개한 DGX B200의 최대 전력 사용량은 약 14.3킬로와트(kW)입니다. 서버 한 대가 이미 소규모 설비 수준의 전기를 쓰는 셈입니다. 칩 성능이 높아질수록 연산 능력은 커지지만, 동시에 전력과 냉각 부담도 함께 불어납니다. AI 반도체 경쟁이 속도 경쟁을 넘어 전력당 성능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전기를 생산하는 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대형 데이터센터가 한꺼번에 들어서면 발전 설비를 더 짓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전기를 실어 나를 송전선과 변전 설비, 그리고 계통 연결 여력까지 함께 갖춰져야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I 투자 속도에 비해 이런 전력 인프라 확충은 훨씬 더디게 진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데이터센터 투자의 실제 병목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반도체를 제때 확보하더라도 전력망 연결이 늦어지면 센터를 예정대로 가동하기 어렵습니다. 서버와 칩은 준비됐는데 정작 전기를 끌어오지 못해 일정이 밀리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겁니다. 결국 AI 경쟁의 핵심 변수는 연산 성능만이 아니라, 필요한 전력을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느냐로 옮겨가고 있습니다.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도 고민이 생겼습니다. 재생에너지 100% 사용을 뜻하는 RE100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기본 과제가 됐지만, AI 데이터센터는 공장처럼 밤에 멈출 수 있는 설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야 합니다. 문제는 태양광과 풍력 같은 재생에너지는 시간대와 날씨에 따라 발전량이 달라진다는 점입니다. 재생에너지를 아무리 많이 확보해도, 전력이 꼭 필요한 순간에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않으면 데이터센터를 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기업들의 해법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재생에너지 계약을 얼마나 더 늘리느냐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이제는 그 전기를 끊기지 않게 확보하는 문제까지 함께 따지기 시작했습니다. 원전처럼 하루 종일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무탄소 전원을 함께 찾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재생에너지 확대만으로는 데이터센터의 막대한 전력 수요를 온전히 감당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인정한 셈입니다.
결국 앞으로의 경쟁은 전기를 얼마나 많이 확보하느냐에서 끝나지 않을 가능성이 큽니다. 같은 전기로 더 많은 연산을 해내고, 발열과 전력 소모를 얼마나 줄이느냐가 더 중요해지고 있습니다. AI와 반도체 산업의 승부처가 단순한 속도 경쟁을 넘어 저전력 경쟁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친환경 경쟁의 기준도 달라지고 있습니다. 전기를 어디서 조달하느냐를 넘어, 그 전기를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느냐가 새로운 경쟁력이 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