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연금 나이, 다른 건강 나이⋯돈이 노후의 '컨디션'까지 가른다 [이슈크래커]

입력 2026-04-20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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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을 찾은 시민이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종합상담실을 찾은 시민이 직원과 상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예순다섯은 제도 안에서는 누구에게나 같은 숫자입니다. 하지만 몸이 맞는 예순다섯은 사람마다 전혀 다릅니다. 누구는 퇴직 뒤 여행 계획을 세우며 그 나이를 맞고, 누구는 무릎과 혈압, 당뇨 약부터 챙긴 채 그 문턱에 섭니다. 연금은 같은 나이에 시작되는데, 몸은 전혀 다른 출발선에 서 있는 셈입니다. 오래 사는 시대라고 하지만, 노후의 격차를 더 또렷하게 가르는 기준은 결국 "몇 살까지 사느냐"보다 "몇 살까지 큰 병 없이 버티느냐"에 더 가까워 보입니다.

더 큰 격차는 '수명'이 아니라 '건강한 수명'

▲잉글랜드의 지역 빈곤도에 따른 건강기대수명 (2022~2024). (제미나이 AI 기반 편집 이미지)
▲잉글랜드의 지역 빈곤도에 따른 건강기대수명 (2022~2024). (제미나이 AI 기반 편집 이미지)

영국 통계청(ONS)이 15일 공개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지역 빈곤도에 따른 건강기대수명(Healthy Life Expectancy·HLE)' 보고서는 그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2022~2024년 잉글랜드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의 출생 시 기대수명(Life Expectancy·LE)은 남성 73.2세, 여성 78.3세였습니다. 가장 빈곤하지 않은 지역은 남성 83.6세, 여성 86.4세였습니다. 기대수명만 놓고 봐도 격차가 적지 않았습니다.

더 눈에 띄는 것은 건강기대수명이었습니다. 가장 빈곤한 지역의 건강기대수명은 남성 49.8세, 여성 48.2세였지만 가장 빈곤하지 않은 지역은 남성 69.2세, 여성 68.5세였습니다. 잉글랜드에서 가장 빈곤한 지역과 가장 빈곤하지 않은 지역의 출생 시 기대수명 격차를 불평등 지표(Slope Index of Inequality·SII)로 추정한 결과, 남성은 10.4년, 여성은 8.0년이었습니다. 건강기대수명 격차는 남성 19.3년, 여성 20.1년으로 더 컸습니다. 웨일스도 흐름은 같았습니다. 같은 방식으로 추정한 결과, 기대수명 격차는 남성 9.6년, 여성 8.0년이었고, 건강기대수명 격차는 남성 20.6년, 여성 23.1년으로 더 벌어졌습니다.

숫자가 보여주는 메시지는 단순합니다. 돈과 생활 여건이 좋은 쪽일수록 더 오래 살 뿐 아니라 더 오래 건강하게 삽니다. 같은 나이에 연금을 받더라도 누구에게는 그 시점이 여가의 출발선이 되고, 누구에게는 이미 몸이 먼저 닳아버린 뒤가 됩니다. 격차는 노후 자산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후를 맞는 몸 상태에서 먼저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평균보다 더 뚜렷한 건 소득 격차

▲경기 고양시 CHA의과학대학교 일산차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뉴시스)
▲경기 고양시 CHA의과학대학교 일산차병원 신생아실에서 간호사가 신생아들을 돌보고 있다. (뉴시스)

한국이라고 예외는 아닙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가 지난해 12월 3일 발표한 '2024년 생명표 작성 결과'를 보면 2024년 출생아의 기대수명은 83.7년입니다. 하지만 유병기간을 제외한 기대수명은 65.5년,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끼는 주관적 건강수명은 73.8년이었습니다. 오래 사는 시간과 건강하게 사는 시간 사이에 꽤 긴 간격이 놓여 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평균이 모두에게 똑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보건복지부와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이 2월 공개한 통계를 보면 소득 수준에 따른 수명 양극화는 과거의 우려를 훌쩍 뛰어넘어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고착화했습니다. 소득 상위 20%의 건강수명은 72.7세인 반면, 하위 20%는 64.3세에 그쳤습니다. 두 계층 간의 건강수명 격차는 무려 8.4년에 달하며, 이는 2012년 6.7년이었던 격차가 지속해서 벌어진 결과입니다. 전체 평균 건강수명이 69.89세로 떨어진 상황에서 빈곤층은 평균치에도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결국 소득이 오래 살 가능성을 가르고, 건강한 노후의 길이까지 갈라놓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연금 나이가 아니라, 그 나이까지 가는 몸의 격차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환자가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노령연금 지급개시연령은 1953년생부터 순차적으로 올라가 1969년 이후 출생자부터는 65세입니다. 서류 위에서는 모두 같은 나이입니다. 하지만 현실의 65세는 전혀 같지 않습니다. 누구는 아직 일할 힘이 남아 있는 채 연금을 맞고, 누구는 이미 병원과 약봉지가 일상이 된 상태로 그 나이를 넘깁니다. 같은 65세라도 누군가는 노후의 시작점에 서고, 누군가는 버티기의 한복판에서 그 시점을 맞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연금 논의에서 정말 먼저 봐야 할 것은 숫자 하나를 언제 적용하느냐만은 아닙니다. 모두에게 같은 나이를 적용하더라도, 그 나이까지 가는 몸의 조건이 너무 다르면 체감 공정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사람마다 연금 나이를 다르게 정하는 일이 아니라, 가난할수록 건강부터 잃는 구조를 줄이는 일입니다. 저소득층의 만성질환 관리, 지역 간 의료 접근성 같은 조건이 그래서 중요하다는 분석입니다. 노후 불평등은 통장 안에서만 벌어지지 않습니다. 몸에서 먼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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