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삼성전자와 삼성바이오로직스를 덮친 성과급 논쟁은 더 이상 우리가 알던 전통적인 ‘노사 갈등’의 문법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기업의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을 놓고 노동조합과 주주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노ㆍ주(勞ㆍ株) 갈등’이라는 전례 없는 국면에 진입한 것이다.
그간 우리 사회에서 임금 협상은 노사 양측의 ‘밀당’으로 치부됐다. 그러나 지금의 양상은 다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사측이 글로벌 경쟁력 강화와 미래 성장을 위해 ‘3년간 무배당’이라는 고육책을 내놓은 상황에서, 노조는 영업이익의 20%에 달하는 성과급과 대폭적인 기본급 인상을 요구했다. 주주들이 단기적 배당 수익을 포기하며 설비 투자에 힘을 실어준 마당에, 내부 보상만 기하급수적으로 확대되는 구조는 투자자의 희생 위에 특정 이해관계자의 몫만 챙긴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이는 자본시장의 공정성 문제와도 직결된다.
삼성전자의 상황은 더욱 엄중하다. 노조가 요구하는 영업이익의 15% 성과급은 업황에 따라 연간 연구개발(R&D) 및 반도체 설비 투자액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규모다. 글로벌 반도체 전쟁이 ‘총성 없는 국가 대항전’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기업의 미래 생존 재원을 내부 보상으로 즉각 전환하라는 압박은 기업의 체력을 갉아먹는 행위와 다름없다. 단순히 임금 수준의 문제를 넘어, 기업의 지속 가능성 자체가 도마 위에 오른 셈이다.
이러한 요구가 산업 전반의 표준처럼 확산하는 지점에는 SK하이닉스의 성과급 체계가 자리 잡고 있다. 영업이익의 10%를 재원으로 설정하고 상한선을 폐지한 현재의 구조는 호황기에는 파격적인 보상을 보장하지만, 사이클 변동이 극심한 반도체 산업에서는 양날의 검이다. 호황기에 한껏 높아진 눈높이는 불황기에 접어들 때 극심한 내부 반발과 갈등을 유발하는 구조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 즉, 현재의 시스템은 갈등을 해결하는 제도가 아니라, 갈등을 잠시 뒤로 미루고 증폭시키는 ‘갈등 지연형’ 구조에 가깝다.
우리는 여기서 글로벌 스탠다드를 냉정하게 되짚어봐야 한다. 미국 기업들 역시 파격적인 성과 보상을 시행하지만, 우리처럼 영업이익의 일정 비율을 기계적으로 자동 분배하는 방식은 드물다. 코스트코나 아마존 등은 철저히 핵심성과지표(KPI) 기반의 보상 체계를 운용한다. 생산성 향상, 품질 개선, 안전 지표 등 구체적 성과에 따라 보상을 결정하며, 대부분 통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상한선을 둔다. 특히 테슬라나 아마존처럼 주식 기반 보상(Stock-based Compensation)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근로자의 이익을 주가 상승, 즉 주주의 이익과 동기화하는 장기적 관점을 유지한다.
지금의 논쟁에서 가장 소외된 주체는 역설적으로 기업의 주인인 주주다. 오늘날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리더로 우뚝 설 수 있었던 것은 과거 위기 때마다 수조 원대의 출자 전환과 채무 재조정을 감내하며 자본을 지탱해온 주주와 채권단의 인내 덕분이다. 주주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 배제되고 미래 투자 재원이 바닥나는 분배 구조는 결국 자본의 이탈을 부르고 기업의 가치를 하락시키는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주범이 될 것이다.
물론 성과 공유 그 자체가 악은 아니다. 건강한 분배는 근로자의 사기를 높이고 인재 유출을 막는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문제는 ‘어떻게’ 나누느냐다. 이제는 성과급 시스템의 전면적인 재설계가 필요하다. 이익을 나누되 철저히 KPI 기반으로 보상의 타당성을 확보해야 한다. 또한 현금 일변도의 지급 방식에서 벗어나 중장기 주식 보상을 결합해야 한다. 영업이익뿐만 아니라 주가와 투자 지표가 보상 체계에 유기적으로 반영될 때, 비로소 노ㆍ사ㆍ주(勞ㆍ使ㆍ株)의 이해관계는 하나로 수렴될 수 있다.
한국의 성과급 논쟁은 이제 기업 내부의 담장을 넘어 자본시장의 신뢰와 국가 산업 경쟁력이 직결된 국가적 과제가 되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단기적인 ‘더 많이’가 아니라, ‘더 오래’ 함께 성장할 수 있는 지속 가능한 분배의 틀이다.
기업은 투명한 성과 측정 기준을 정립하고, 노조는 기업의 미래를 고려한 책임 있는 요구를 하며,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제도적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이 균형을 찾지 못한다면 현재의 노사 갈등은 머지않아 한국 경제 전체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돌로 번질 수밖에 없다. 공생(共生)을 위한 대타협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