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럭 위에서 꿈꿨다"…배송기사 출신 46세, 가구 불모지 오산에 '우리 집 같은 가게'를 짓다

입력 2026-04-16 14:04

기사 듣기
00:00 /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오재환·박정화 부부 15년 맨손 창업기…"싸구려와 명품 사이, 그 빈자리를 채우고 싶었다"

▲베니시모·휴앤홈 매장 외부전경. (김재학 기자)
▲베니시모·휴앤홈 매장 외부전경. (김재학 기자)
오산시 세교신도시 가장산업서로 23-18. 수원과 평택 사이, 어느 쪽에서도 주목하지 않던 이 주소에 가구 매장 하나가 불을 밝히고 있다. 간판은 두 개다. '베니시모'와 '휴앤홈'. 매장 안에는 12명의 직원이 움직이고, 매장 밖에는 가구거리 하나 없는 도시가 펼쳐져 있다.

이 매장을 세운 사람은 이 도시에 연고가 없는 부부다. 남편은 가구 배송기사 출신이고, 아내는 세 딸을 키우며 새벽에 블로그를 쓰던 전업주부였다. 15년 전 트럭 한 대 위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이투데이가 들었다.

▲오재환 베니시모 오산평택점 대표(46)가 매장 내 소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구 배송기사로 업계에 입문해 15년 만에 국내 제조 원목 가구 브랜드 공동 대표가 됐다. (김재학 기자)
▲오재환 베니시모 오산평택점 대표(46)가 매장 내 소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가구 배송기사로 업계에 입문해 15년 만에 국내 제조 원목 가구 브랜드 공동 대표가 됐다. (김재학 기자)
△ 계단 위의 소파, 그 안의 삶

오재환 베니시모 오산평택점 대표(46)에게 가구는 '물건'이 아니었다. 처음부터 그걸 알았던 건 아니다. 서른이 넘어 가구 배송기사로 이 업계에 발을 들였을 때, 그에게 가구는 등에 져야 할 무게였을 뿐이다.

엘리베이터 없는 아파트 5층까지 소파를 올리고, 신혼부부의 첫 거실에 내려놓고, 땀을 닦으며 나오는 길. 그때마다 오 대표의 눈에 들어온 건 가구가 아니라 그 가구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표정이었다.

"신혼집에 소파 하나 들이는 건 그냥 가구 사는 게 아니에요. 그 집의 첫 번째 풍경을 만드는 거예요. 아이 방에 책상 하나 놓는 것도 마찬가지고요. 배송하면서 그걸 느꼈어요. 이 가구 하나에 가족의 기대가 얼마나 큰지."

그런데 그 기대를 채워줄 선택지는 너무 좁았다.

"시장이 양극단이에요. 창고형 매장에서 파는 건 솔직히 싸구려예요. 저렴한 걸 싸게 파는 거지, 좋은 걸 싸게 파는 게 아니거든요. 그런데 백화점에 가면 곱하기 5배, 6배. 입주할 때 돈이 얼마나 드는데, 그 사이에서 방황하시는 분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싸구려와 명품 사이. 그 빈자리가 오 대표의 출발점이 됐다.

▲박정화 휴앤홈종합가구 편집샵 대표가 매장 내 소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딸을 키우며 블로그 마케팅으로 가구 일을 시작해 종합 가구 브랜드 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재학 기자)
▲박정화 휴앤홈종합가구 편집샵 대표가 매장 내 소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세 딸을 키우며 블로그 마케팅으로 가구 일을 시작해 종합 가구 브랜드 대표 자리에 올랐다. (김재학 기자)
△ 세 딸이 잠든 뒤의 시간

그 옆에는 늘 아내가 있었다. 박정화 휴앤홈 종합가구편집샵 대표의 하루는 아이들과 함께 끝나고, 아이들 없이 다시 시작됐다. 세 명의 딸들을 모두 재우면 밤 11시. 거기서부터가 박 대표의 두 번째 근무였다. 블로그에 올릴 가구 사진을 찍고, 가격표를 수정하고, 온라인 문의에 하나하나 답했다.

"잠깐 잠깐 틈을 냈다"고 박 대표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 '잠깐'의 무게를 남편은 안다. 오 대표는 "아내가 새벽까지 블로그 하나 올리려고 사진 각도를 열 번씩 바꾸는 걸 봤다"며 "그때는 미안했고, 지금은 감사하다"고 했다.

박 대표에게도 처음은 막막했다. "전업주부가 뭘 아느냐는 시선이 있었어요." 그런데 엄마여서 오히려 보이는 것들이 있었다.

"아이 방 책상 높이가 5센티미터만 맞지 않아도 자세가 무너져요. 주방 동선이 꼬이면 식탁이 애물단지가 되고요. 가구 하나 바꾸면 그 집의 하루가 바뀌는 거예요. 그걸 아는 건 카탈로그를 읽어서가 아니라, 그 안에서 살아봤기 때문이에요."

박 대표는 지금도 상담의 첫 질문이 정해져 있다. "아이가 몇 살이에요?" 가구가 아니라, 그 가구를 쓸 사람의 삶부터 듣는다.

△ 6개월의 방황, 그리고 4일 뒤의 운명

독립 매장을 열기로 한 뒤 오 대표는 6개월을 헤맸다. 천안에서 쌓은 경력을 들고 경기도 전역을 누볐다. 평택 원곡면, 수원 봉담, 용인, 화성. 가구 단지가 형성된 곳마다 수십 년 터줏대감들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단지 안에 들어가면 결국 똑같아져요. 같은 물건, 같은 가격, 같은 방식. 저는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우리 가구를 우리 방식으로 보여줄 수 있는 나홀로 매장을 고집했어요."

화성에서 평택으로 이동하던 어느 오후, 그냥 지나치는 길이었다. 오산. 가구점이 2~3곳밖에 없었다. 세교신도시에 아파트는 들어서고 있는데 가구를 살 곳이 없는 도시. 소비층은 있는데 받아줄 매장이 없는 시장.

"여기다 싶었어요." 지나가다 본 공실 건물. 부천에서 태어나 오산에는 한 번도 와본 적 없는 사람이, 아무 연고 없이, 바로 계약했다. 그리고 4일 뒤. 세교3지구 개발 발표가 났다.

"누가 알고 왔냐고 하시는 분도 있어요. 진짜 몰랐어요." 오 대표는 잠시 웃다가 진지해졌다. "운명을 믿는 편은 아닌데, 누가 저를 여기에 쑥 갖다 놓은 것 같은 느낌. 그게 아직도 있어요."

박 대표가 이어받았다. "오산이 낯설었어요. 수원에서 넘어온 것도 아니고, 천안에서 바로 왔으니까. 그런데 큰아이가 오산 소재 대학에 합격하면서 온 가족이 오산 시민이 됐어요. 가게도, 학교도, 삶도 전부 여기 뿌리를 내렸어요. 신기하죠."

▲베니시모·휴앤홈 매장 내무 쇼룸. (김재학 기자)
▲베니시모·휴앤홈 매장 내무 쇼룸. (김재학 기자)
△ "같은 값이면 원목을 드리고 싶었다"

오 대표가 15년간 품어온 답답함이 있다. "대기업 가구 브랜드를 보세요. 거의 전량이 중국 수입이에요. MDF에 필름을 바른 건데, 브랜드 이름과 광고비가 붙으면 우리 원목가구와 비슷한 가격이 돼요. 소비자는 '거기가 대기업이니까 비슷하겠지' 하시는데, 소재를 따지면 전혀 같지 않아요."

오 대표가 택한 길은 달랐다. 수백억원대 광고를 쏟아붓는 대신, 그 비용을 소재에 넣었다. 베니시모와 휴앤홈의 제품 가운데 60~70%는 국내에서 직접 제조한다. 원목을 쓰고, 국내 장인의 손을 거친다.

"같은 값이면 원목을 드리고 싶었어요. 대기업 브랜드에서 원목을 쓰면 가격이 곱하기 2배가 돼요. 우리는 과도한 광고비가 없으니까 그 차이를 소재에 투자할 수 있는 거예요. 그게 저희의 존재 이유이고, 유일한 무기예요."

맞춤 제작도 이 무기의 연장선이다. 국내 제조이기 때문에 사이즈 변경, 주문 제작이 모두 가능하다.

오 대표는 "다른 데서 안 된다고 거절당한 걸 들고 오시는 분이 많다"고 했다. 박 대표도 "요즘 평수가 줄면서 기성 사이즈 800, 900 짜리 장롱이 안 맞는 집이 많다"며 "350, 450 같은 세밀한 사이즈까지 맞춤 제작이 가능한 게 우리의 틈새"라고 했다.

오 대표가 힘없이 웃었다. "그런데 그걸 몰라주시는 게 제일 서운해요. 디자인이 비슷하다고 '거기랑 같은 거 아니야?' 하시면, 그 마음이… 이 일을 왜 하나 싶을 때가 있어요."

△ 나를 믿고 따라온 사람들

부부가 처음 매장을 열었을 때 직원은 6명이었다. 지금은 12명이 상주한다. 가구업계에서 대기업 매장을 제외하면 직원 5명 이상 상주하는 곳은 거의 없다.

12명 가운데 60%는 이전 직장에서 오 대표 부부를 따라온 사람들이다. 안정된 곳을 두고, 검증되지 않은 오산의 신생 매장에 합류한 것이다.

"부사장님도 연세가 있으신 분이에요. '같이 가겠다'고 하셨을 때 솔직히 말렸어요. 그런데 오시더라고요."

박 대표가 그 이유를 설명했다. "밑에서부터 같이 올라왔으니까 서로를 알아요. 그리고 가구 소비층은 20대 신혼부부부터 70대 어르신까지 정말 다양해요. 연세 있는 직원분은 어르신 손님을 편안하게 모시고, 젊은 직원은 젊은 부부에게 맞는 스타일을 제안하고. 각자 강점이 있어요."

오 대표는 "매출보다 중요한 게 이 사람들과 오래 가는 것"이라며 "이 직원들이 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게 대표로서 첫 번째 의무"라고 했다.

△ 오색전의 딜레마…"혜택이 끊기면 소비자가 떠난다"

이 매장이 오산에서 유일한게 하나 더 있다. 가구업종에서 오산 지역화폐 '오색전'을 받는 곳이 거의 없는데, 이곳은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소비자에게 8% 안팎의 실질 할인이 돌아간다.

그러나 이 혜택에는 시한이 있다. "신규사업자 자격으로 오색전을 쓸 수 있는데, 매출 기준을 넘으면 종료돼요. 규모가 있다 보니 매출이 안 넘을 수가 없어요. 그러면 혜택이 끊기고, 소비자가 수원이나 평택 가구거리로 떠나는 건 시간문제예요."

오 대표의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수원·평택 가구거리에서는 지역화폐도 되고 온누리상품권도 돼요. 30개 업체가 묶여 있으니까. 그런데 오산에는 가구단지 자체가 없으니 나홀로 매장은 해당이 안 돼요. 온누리상품권을 쓰려면 30곳이 묶여야 하는데, 여기는 가구점이 3~4곳밖에 없잖아요."

국민신문고에도 넣었다. 오산시청에도 전화했다. "나와보겠다"는 답은 받았지만 아직 달라진 것은 없다.

박 대표가 말을 이었다. "이건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에요. 오산시민이 가구를 사러 수원에 가면 그 매출은 수원세수가 되는 거잖아요. 오색전 혜택만 유지돼도 매출이 30~40% 올라갈 수 있어요. 소비자도 좋고, 오산시도 좋고, 우리도 좋은 건데. 왜 안 되는 건지."

오 대표가 덧붙였다. "오산시도 같은 목표 아닌가요. 시민들한테 세금을 받아서 도시를 키우는 건데, 그 소비가 다 밖으로 빠져나가면 세수에도 영향이 있는 거잖아요. 좀 이슈화가 돼서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면 정말 좋겠어요."

△ 조용히 건넨 침대

사회공헌 활동을 물었을 때 오 대표는 잠시 말을 멈췄다. "대놓고 하는 건 좋아하지 않아서요."

그래도 해온 것들이 있었다. 옥스팜, 국경없는의사회에 개인적으로 정기 후원을 하고 있고, 매장 차원에서도 홀로 사는 아이들에게 침대를 기부해왔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책상을 보낸 적도 있다. "의뢰가 오면 거절하지 않으려고 해요. 큰 금액은 아니어도 조금씩. 많이는 아니어도."

오 대표는 "앞으로 지역에 더 뿌리를 내리면 취약계층 학생들에게 책상을 정기적으로 기부하는 걸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세 딸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마지막에 이렇게 말했다. "아이 방에 제대로 된 책상 하나 없는 게 어떤 의미인지 알아요. 저도 그렇게 컸으니까."

▲오재환·박정화 부부 대표가 매장 내 식탁에 마주앉아 운영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15년 전 가구 배송기사와 전업주부로 시작한 두 사람은 오산 세교에서 부부 공동 경영 매장을 꾸리고 있다. (김재학 기자)
▲오재환·박정화 부부 대표가 매장 내 식탁에 마주앉아 운영 철학을 이야기하고 있다. 15년 전 가구 배송기사와 전업주부로 시작한 두 사람은 오산 세교에서 부부 공동 경영 매장을 꾸리고 있다. (김재학 기자)
△ "가족을 소개시켜 줄 수 있는 가게"

인터뷰 끝 무렵, 앞으로의 꿈을 물었다. 박 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오산에서 가구 하면 떠오르는 매장이요. 어머니, 아버지 세대까지 온 가족이 믿고 찾는 곳. 손님이 아니라 이웃이 되는 것. 그게 되고 싶어요."

오 대표의 꿈은 더 먼 시간을 향해 있었다. "우리 매장에서 신혼가구를 맞춘 손님이 있다고 해볼게요. 그 손님이 20년 뒤에 자녀가 결혼할 때 '거기 가봐, 거기 좋아'라고 소개시켜주는 거요. 가족을 소개시켜주는 건 가구점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에요. 그만큼 신뢰가 쌓여야 하니까. 매출이 아니라, 그 신뢰가 제 꿈이에요."

오 대표는 오늘도 매장에서 직접 소파를 옮긴다. 배송 기사 시절의 습관이다. 박 대표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매장으로 출근한다. 12명의 직원이 그 부부 곁에서 함께 움직인다. 60%는 이전 직장을 떠나 따라온 사람들이다.

세교3지구 개발이 본격화하면 이 일대의 입주 수요는 더 늘어난다. 가구 불모지였던 오산에서 배송 트럭 위의 꿈을 실현해 가는 부부의 여정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오산의 지역경제와 함께 지켜볼 만하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비행기표보다 비싼 할증료…"뉴욕 왕복에 110만원 더"
  • 노동절 일하고 '대체 휴일' 안 된다⋯근로 시 일당 최대 250% 지급
  • 미·이란, 다음 주 파키스탄서 2차 협상…백악관 “휴전 연장 요청 안 했다”
  • 단독 '영업비밀' 일부인데… 구글 법인세 판결문 전체 비공개 [닫힌 판결문①]
  • 뉴욕증시, 미국ㆍ이란 휴전 기대감 지속에 나스닥·S&P500 사상 최고치 [상보]
  • 늑구 수색 8일째…드론이 포착한 탈출 늑대 상태
  • 공급 가뭄에 "비싸도 산다"⋯서울 아파트 청약 떳다하면 1순위 마감
  • 최대 88조원 달러 공급 효과…고환율 소방수 등판[국민연금의 환헤지 파장 ①]
  • 오늘의 상승종목

  • 04.16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0,501,000
    • +1.12%
    • 이더리움
    • 3,472,000
    • +1.19%
    • 비트코인 캐시
    • 653,500
    • +2.35%
    • 리플
    • 2,080
    • +3.74%
    • 솔라나
    • 126,200
    • +2.77%
    • 에이다
    • 369
    • +4.24%
    • 트론
    • 480
    • +0%
    • 스텔라루멘
    • 238
    • +3.48%
    • 비트코인에스브이
    • 23,400
    • +3.77%
    • 체인링크
    • 13,750
    • +2.84%
    • 샌드박스
    • 118
    • +3.51%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