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물 급등·선물 하락 ‘가격 괴리’
브렌트유 현물 가격 사상 최고치

이란 전쟁 여파로 글로벌 원유 시장에서 즉시 인도 가능한 물량을 둘러싼 ‘쟁탈전’이 벌어지고 있다.
11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시장의 시선은 이란전 휴전과 협상 진전에 쏠려 있지만, 실제 원유가 오가는 현물시장에서는 공급 부족이 빠르게 현실화하며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중동산 원유 공급 차질이 이어지면서 정유사와 트레이더들이 전 세계를 돌며 물량 확보에 나서는 등 시장 불안이 확산하는 모습이다.
북해 등 주요 현물 원유시장에서는 수급 불균형이 극단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 지역에서는 지난주 40건의 구매 입찰이 제시됐지만 실제 매도 물량은 4건에 그쳤다.
향후 몇 주 안에 인도될 원유 가격의 글로벌 벤치마크로 브렌트유 현물 가격을 반영하는 ‘데이티드 브렌트(Dated Brent)’는 7일 배럴당 144.42달러로 1987년 통계 집계가 시작된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6월물 브렌트유 가격은 휴전 기대를 반영해 지난주 약 13% 하락한 것과 대조된다. 이는 실제 물리적 공급과 금융시장 기대 사이에 큰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이 같은 현상은 단순한 가격 상승이 아니라 실물 공급 부족을 반영한다는 점에서 시장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스파르타커머디티스의 닐 크로스비 리서치 책임자는 “원유가 단순히 부족한 상황”이라며 “브렌트유 현물 가격이 과도하게 상승했고 이대로라면 이르면 다음 달 유럽 정유사들도 가동률을 낮춰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상황도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주말 동안 유조선 세 척이 통과하면서 활동이 다소 증가했다는 초기 징후가 나타났지만 여전히 전쟁 이전 수준에는 크게 못 미치는 상황이다.
아부다비국영석유회사(ADNOC)의 술탄 알 자베르 최고경영자(CEO)는 “전쟁 이전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 마지막 물량이 이제 막 목적지에 도착하고 있다”며 “서류상으로만 거래되던 시장이 실제 현실과 맞닥뜨리는 순간이다. 약 40일간의 글로벌 에너지 공급 공백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설령 해협이 정상화되더라도 걸프 지역 원유가 아시아와 유럽 정유소에 도착하기까지 수주가 소요되는 만큼 단기간 내 공급난 해소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공급 불안은 글로벌 원유 조달 구조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일본은 미국산 원유 확보에 나섰고 중국은 캐나다 물량을 확대하고 있으며 인도는 베네수엘라산 수입을 늘리고 있다. 일부 아시아 정유사들은 가격보다 물량 확보를 우선시하며 “지금은 가격이 아니라 확보가 문제”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경쟁은 시장 부담을 키우고 있다. 미드허스트다운스트림의 로베르토 울리비에리 컨설턴트는 “장부상 마진은 좋아 보이지만 실제 현금 흐름은 전혀 다를 수 있어 가격 리스크 관리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중소 정유사들은 비용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생산을 줄이거나 시장에서 물러날 가능성이 제기된다.
이미 석유제품 시장에서는 영향이 나타나고 있다. 항공유와 디젤(경유) 가격은 배럴당 200달러를 넘나들며 급등했고, 미국 휘발유 재고는 약 1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 에너지애스펙츠의 아므리타 센 공동창업자는 “현물시장은 금융시장 신호와 달리 공급 차질을 반영해 지속적으로 강세를 보이고 있다”며 “이 격차가 해소되지 않으면 미국 정유시설에 필요한 원유 공급까지 부족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