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황변화로 시장 철수 안타까움만
상처받은 이웃 외면말고 함께하길

매장 곳곳에는 ‘4.15(수)부터 영업을 중단합니다’라고 적힌 포스터가 붙어 있고, 지난 한 달 내내 ‘고별 세일 90%’를 알리는 현수막이 건물 벽면에 요란스레 걸려 있었다. 이번에 천안점과 함께 문을 닫는 홈플러스 조치원점 이야기다.
15년 전 조치원으로 이사 왔을 때, 홈플러스를 상징하는 하얀색 삼각형 지붕을 발견하곤 ‘한적한 시골(?)에도 대형마트가 있구나’ 다소 생뚱맞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읍 단위에 세워진 최초의(어쩌면 유일한) 대형마트란 이야기가 들려왔다. 서울살이를 끝내고 낯선 곳에 내려와 자리 잡는 동안 홈플러스의 도움을 쏠쏠히 받았다. 가전코너에서 냉장고 세탁기 TV를 구입했고 거실, 부엌, 화장실에 필요한 생필품 대부분을 홈플러스에서 마련했다. 특별히 홈플러스 제과점의 식빵 맛에 홀딱 반했던 기억도 생생하다.
돌아보니 15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홈플러스 조치원점의 매장 풍경 또한 서서히 변해갔다. 예전엔 학기가 시작될 즈음이면 인근 고려대와 홍익대(세종캠퍼스) 학생들로 제법 북적이곤 했다. 부모님과 함께 기숙사나 원룸생활에 필요한 물품을 쇼핑하는 모습도 빈번히 눈에 띄곤 했다. 언제부터인가 풋풋한 대학생과 젊은 부부들 모습이 점차 사라져갔다. 온라인 쇼핑이 활성화되면서 직격탄을 맞은 탓이었을 게다.
젊은층이 사라진 자리에 외국인 고객이 다녀가는 모습이 종종 눈에 띄기 시작했다. 라면을 박스로 사는 유학생, 아이를 카트에 태우고 쇼핑하는 결혼 이민자가족, 술과 안줏거리를 가득 담는 이주 노동자들과 마주치는 기회가 늘어났다.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언어도 종종 들려왔고 머리에 베일 쓴 이슬람 여성들 모습에도 익숙해져 갔다.
평균 일주일에 한 번꼴로 매장을 찾는 단골이 되면서 계산대에 앉아 있는 50대 여직원분들과 서울이나 세종시 대형마트에선 경험하지 못했던 훈훈한 관계도 맺게 되었다. 어느덧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서로 안부도 묻고 건강도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다. 이제 닷새 후면 이분들과도 이별을 하게 되는 셈이다.
쉽지 않은 질문이라 망설여지긴 했지만 그래도 궁금함을 떨칠 수 없어 홈플러스가 문을 닫으면 어디로 가게 되는지 물었다. “이참에 잠시 쉬어보겠다”는 경우는 그래도 사정이 나은 편인 듯 했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라도 딸까 생각 중이에요”도 나름 여유가 느껴졌다. 하지만 대다수는 “새로운 일자리를 아직 못 구해 정말 큰일”이라 했고, 누군가는 “삶이 너무 팍팍하고 막막하다”고도 했다. 저마다의 사정은 달랐을 테지만 착잡하고 떨떠름한 표정은 닮아 있었다.
이라영의 역작 ‘쇳돌’이 던지고 있는 묵직한 화두, ‘사라지는 세계, 사라지는 노동, 사라지는 목소리를 채굴하기’는 저 멀리 낯모르는 이들의 추상적 이야기가 아니라 어제까지도 시시콜콜 수다를 떨던 이웃의 삶과 맞닿아 있음을 실감했다. ‘쇳돌’은 저자가 5년에 걸쳐 지금은 사라진 탄광의 세계 속으로 걸어 들어가, 사라져가는 광부의 노동과 그들의 목소리를 발로 뛰며 채굴한 책이다. 책 속에서 뜻밖에 가슴 뭉클한 대목을 만났다. 막장 인생, 막장 드라마에 등장하는 그 막장의 진의(眞意)가 얼마나 손쉽게 왜곡되고 생각 없이 폄하되어 왔는지를 호소한 대목에서였다. 탄광의 막장이야말로 하나뿐인 목숨을 걸고 소중한 누군가를 위해 공포를 무릅쓰고 땀 흘려 일하는 가장 숭고한 삶의 현장 아니냐는 것이다.
일자리는 사라졌어도 삶은 사라질 수 없었던 광부들의 고군분투기가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을 터. 불황의 늪에 빠졌든 방만한 경영의 결과였든 아침에 일어나 출근할 곳을 잃어버린 우리 이웃의 삶 또한 계속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가장 쉽게 상처받을 수 있는 이들의 삶을 끝까지 외면하지 않는 사회야말로, 우리가 결국 지켜내야 할 목표 아니겠는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