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8학년도 ‘문·이과 완전 통합 수능’은 단순한 입시 변화가 아니다. 대학의 학과 구조와 학문 체계 자체를 흔드는 구조적 변곡점이다. 최근 주요 대학에서 어문계열 통합선발이 확산되는 흐름은 그 전조다. 학과 단위 대신 계열 단위로 묶어 선발하고 일부는 통폐합하거나 정원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움직임이 이미 시작됐다.
최근 취재한 '문과의 위기'에서는 겉으로는 전형 방식 변화지만 본질은 '문과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에 대한 대학들의 생존 전략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어문계열이 있다.
문제는 이 변화가 ‘진화’라기보다 ‘밀려나는 재편’에 가깝다는 점이다. 입시 데이터는 냉정하다. 서울권 인문계열 합격선은 3등급대까지 내려왔고, 정시에서는 자연계열 수학 점수가 평균 7점 이상 높았다. 상위권 학생들이 자연계열로 이동하면서 문과는 ‘선택’이 아니라 ‘남는 선택지’가 되고 있다.
이 구조가 통합 수능 체제와 결합하면 결과는 뻔하다. 점수 순으로 학과가 채워지는 구조에서 자연계열이 먼저 채워지고, 이후 문과가 뒤따르는 흐름이다. 일부 어문계열은 정원을 채우지 못해 추가모집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하다.
왜 하필 어문계열부터 흔들리는가. 답은 분명하다. 인공지능(AI)이다. 번역과 통역은 어문계열의 대표 직무였다. 그러나 생성형 AI는 이 영역부터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AI 등장 이후 번역 분야 프리랜서 수입이 감소했다는 연구도 나온다. 전공과 직업의 연결고리가 약해지는 순간, 대학이 학과를 유지할 이유도 함께 흔들린다.
즉, 지금의 변화는 입시가 아니라 노동시장의 변화가 먼저 만든 구조조정이다. 하지만 이를 ‘어문계열의 종말’로 보는 건 단순한 해석이다. 지금 벌어지는 일은 소멸이 아니라 재편이다.
대학 현장은 이미 방향을 틀고 있다. AI 번역을 비평하는 수업과 언어 데이터를 분석하는 교육, 자연어처리(NLP) 기반 커리큘럼이 등장하고 있다. 일부 대학은 ‘Language & AI’ 같은 융합 단위를 신설하며 어문학을 기술 기반 학문으로 재구성하고 있다.
과거에는 외국어 능력 자체가 경쟁력이었다. 이제는 언어를 데이터로 다루고 콘텐츠로 확장하며 AI와 결합하는 능력이 경쟁력이 된다. AI가 발전할수록 인간의 언어 이해 능력은 더 중요해진다. 번역의 정확도는 기계가 앞설 수 있다. 하지만 의미 해석, 맥락 이해, 문화 번역은 여전히 인간의 영역이다. 글로벌 콘텐츠, 외교, 정책, 산업 협력 등 고차원 영역에서는 ‘언어를 통한 세계 이해’가 필수다.그렇다면 어문계열은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답은 명확하다.
언어 + AI + 데이터 + 콘텐츠. 이 조합을 만들지 못하는 어문계열은 빠르게 도태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이를 구현하면 새로운 핵심 분야로 재부상할 수도 있다. 글로벌 플랫폼이 원하는 인재는 번역가가 아니라 다국어 데이터를 분석하고 콘텐츠 전략을 설계하며 AI 언어 성능을 개선할 수 있는 사람이다.
결국 답은 ‘융합’이다. 대학은 교과목 몇 개를 더하는 수준이 아니라, 학과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한다. 동시에 정책도 고민해야 한다. 통합 수능이 자연계열 쏠림을 강화한다면 문과는 구조적으로 더 불리해질 수 있다. 이는 학문 문제가 아니라 국가 인재 구조의 문제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다. 대학은 움직였고 시장은 더 빠르다. 어문계열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지금의 모습으로는 살아남지 못한다. 2028년은 시작이 아니라 가속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