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부 '위법' 판단·처벌법 발의에도…금융위, 은행 '셀프감정' 뒷짐

입력 2026-03-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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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감평업계 이견 못 좁히는 사이 ‘벌칙’ 입법…금융위 역할론 커져

▲감정평가사협회가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정부서울청사) 앞에서 'KB국민은행 불법행위 방조 각성 촉구 대회를 진행한 모습. (감정평가사협회 제공)
▲감정평가사협회가 지난해 10월 금융위원회(정부서울청사) 앞에서 'KB국민은행 불법행위 방조 각성 촉구 대회를 진행한 모습. (감정평가사협회 제공)

금융위원회가 은행의 부동산 담보 ‘자체 감정평가(자체평가)’ 논란에 사실상 뒷짐만 지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이미 지난해 감정평가법 위반이란 해석을 내렸고 정치권에서 관련 처벌 입법까지 추진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작 해결의 열쇠를 쥔 금융위가 문제를 방치하고 있는 것이다.

4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문진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감정평가법인에 의뢰하지 않고 자체 감정평가를 한 경우 3000만원 이하 벌금을 부과하는 내용의 ‘감정평가 및 감정평가사에 관한 법률(감정평가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법 위반 지적이 수년째 반복됐지만 직접 제재 규정이 없고, 당국의 시정 약속도 지연된 만큼 강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취지다.

갈등의 핵심은 법체계의 충돌 문제가 금융당국 소관 영역에서 정리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현행 감정평가법 5조 2항은 금융회사가 대출·자산 매입·관리 등을 위해 감정평가를 할 경우 감정평가법인 또는 감정평가사에 의뢰하도록 규정한다. 국토부는 지난해 9월 유권해석을 통해 은행이 감정평가사를 직접 고용해 담보 가치를 산정하는 행위를 감정평가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하지만 은행권은 금융감독원 ‘은행업감독업무 시행세칙’ 등을 근거로 일정 요건 아래에서 내부 산정이 가능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시세 정보가 충분히 축적된 주거용 아파트 등 표준화 담보는 내부 산정 모형이나 시세 기반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이 비용·시간 측면에서 효율적이고 외부감정 의무화는 대출 실행 지연과 소비자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정 금액 이상이거나 비정형·고위험 자산은 외부 감정평가를 의무적으로 실시하고 내부평가가 허용되는 영역도 감독 규정에 근거해 제한적으로 운영한다”며 “일률적으로 위법이라고 보기보다는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내부평가와 외부평가를 병행하는 구조로 이해하는 게 적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문제는 상위법과 하위 감독규정의 충돌이 정리되지 않은 데 있다. 감정평가법은 금융회사가 대출·자산 매입·관리 등을 위해 감정평가를 할 경우 외부 의뢰를 원칙으로 두고 있지만, 은행업감독업무 시행세칙 등 하위 규정은 일부 담보에 대해 내부 산정 여지를 남겨왔다.

국토부가 위법 해석을 내렸더라도 금융당국이 감독규정·세칙 정비, 위반 시 제재 기준 확정을 하지 않으면 양측의 충돌이 해소될 수 없는 이유다. 금융위의 책임론이 커지는 배경이기도 하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자체평가 비중이 더욱 커졌다는 점도 논란을 키웠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용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의 자체평가 금액 비율은 2021년 19.9%에서 2024년 상반기 44.6%로 두 배 이상 확대됐다. 건수 비중은 같은 기간 6.7%에서 17.8%로 늘었고, 소속 감정평가사는 18명에서 26명으로 증가했다.

감정평가사협회는 합의를 위해 자체평가 중단 시한을 기존 6개월에서 최장 3년까지 늘리는 등 양보에 나섰지만, 4대 시중은행은 자체평가 중단이 아닌 2030년 이후에도 현행 물량의 50%를 유지하겠다는 취지의 안을 내놓으며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해관계자 협상이 평행선을 달리는 동안 감독 당국이 제도 정비로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는 요구는 더 커졌다.

지난해 10월 금융위는 국회에 ‘감정평가법 위반 소지 해소’ 원칙에 합의했고 관계기관 공동 개선방안을 2025년 말까지 마련하겠다는 취지의 문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구체 기준과 감독규정 정비가 지연되면서 업계에서는 금융위의 ‘감독 공백’이 장기화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금융위는 중재자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감평협과 은행 간 협의가 원만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중재하는 게 금융위 역할”이라며 “개선책을 낸다고 말하기보다는 서로 간의 이견을 계속 좁혀나가고 있는 상태”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금융위가 중재에 머물 것이 아니라 상위법 해석과 감독규정 체계를 정리하는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양길수 감정평가사협회장은 “금융권의 소극적인 태도로 합의가 난항을 겪고 있다”며 “합의가 안될 경우 향후 금융권의 자체평가를 통한 담보인정비율(LTV) 자의적 적용 등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소하고 금융권에 대한 지도·감독 권한을 가진 금융위가 4대 시중은행의 위법 행위를 방치하는 부작위에 대해 공익감사를 감사원에 청구하는 등 단계적인 대응에 나설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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