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육 현장의 신뢰가 시험대에 올랐다. 부산광역시교육청이 2026년 3월 1일자 정기인사에서 정년을 1년여 남긴 고교 교장을 일반 중학교로 전보하면서, 교직사회에서 오랜 기간 유지돼 온 '불문율'을 깼다는 비판이 거세다.
부산교육청은 이번 인사에서 유·초등 203명, 중등 88명 등 총 291명의 학교관리자(교장·교감)를 발령했다. 중등 분야에서는 교장 38명(승진·전직·중임 27명, 전보 11명), 교감 50명이 새 보직을 받았다.
숫자만 보면 통상적인 정기 인사다. 그러나 특정 교장의 전보는 규모와 무관하게 '상징적 사건'이 됐다.
교직사회에는 정년을 1년 남긴 교장은 명예로운 은퇴를 위해 통상 전보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관행처럼 자리 잡아 왔다. 새 학교에 부임하더라도 1년 뒤 다시 교장을 맞이해야 하는 구조가 돼 학교 운영의 연속성이 깨지고, 인수인계와 조직 안정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에서다.
문서화된 규정은 아니었지만, 현장에서는 오랜 기간 '상식'으로 통용돼 왔다.
논란의 중심에는 부산체육고등학교를 이끌어 온 교장이 서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제106회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 9개, 은메달 17개, 동메달 21개 등 총 47개 메달을 획득하며 개교 이래 최고 성적을 기록했다. 부산시 종합 2위 달성에 기여한 핵심 학교라는 평가도 받았다.
성과를 이끈 교장이 정년 1년을 앞두고 중학교로 전보됐다는 사실은 현장에 적잖은 충격을 안겼다. 교육계 일각에서 "성과와 헌신을 존중하지 않는 처사"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체육고 교사 A씨는 "본청 인성체육급식과장을 지냈고, 부산체고 교장으로 역대급 성적을 거둔 실적이 있는 고등학교 교장을 중학교로 전보하는 것은 좌천성 인사라는 것이 교원들의 상식"이라고 말했다.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사람 중심 교육을 말하면서 정작 사람에 대한 존중은 보이지 않는다. 굳이 이렇게 자존심을 건드리는 인사를 해야할 이유가 무엇인가"라는 자조도 흘러나온다.
문제는 관행만이 아니다. 2026년 부산광역시교육청 중등교원 인사관리기준 제20조(교장·교감의 전보유예)에는 동일 학교에서 4년 이상 근속한 자라도, 1년 이내 정년이 도래하는 자는 일정 기간 전보를 유예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규정이 없다'는 해명과 달리, 최소한 재량의 여지는 존재한다는 뜻이다.
더욱이 해당 학교장이 인사 전, 남은 1년을 명예롭게 마무리하기 위해 현 학교에서 근무를 이어가고 싶다는 의사를 교육청에 밝혔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논란은 확산됐다. 성과를 낸 교장이 개인적 영달이 아닌 '유종의 미'를 요청한 셈이다.
그 의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는 반응이 적지 않다.
여기에 인사 직후 실무자들이 해당 교장에게 '안타까운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사실까지 전해지면서, 내부적으로도 부담을 느낀 것 아니냐는 해석이 뒤따른다.
논란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전직 교육감 인사로 분류돼 사실상 불이익을 받는 것 아니냐는 의혹, 새로 임용되는 교장이 현 교육감 선거 과정에서 역할을 했던 인물이라는 점을 들어 '논공행상'의 결과라는 뒷말까지 교원 사회에 퍼지고 있다.
사실 여부와 별개로, 이런 의심이 확산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조직 신뢰에 균열이 생겼음을 방증한다.
부산교육청은 "AI 시대를 선도하는 교육, 사람 중심 교육 기조 아래 인사를 단행했다"며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관계자는 "정년 1년이 남았다고 해서 전보하지 않는다는 규정은 없다. 인사권은 인사권자의 고유 권한"이라고 설명했다. 법적 근거만 놓고 보면 틀린 말은 아니다.
'사람 중심'을 내세운 부산 교육 행정이 그 말의 무게를 지키려면, 지금이라도 원칙과 판단 기준을 구체적으로 공개하는 것이 순서다.
그러나 인사는 단순한 권한 행사가 아니다. 조직이 어떤 가치를 중시하는지 드러내는 신호다.
특히 학교는 아이들에게 책임과 배려, 연속성과 신뢰를 가르치는 공간이다. 규정에 없다는 이유로 오랜 관행을 단번에 뒤집었다면, 그에 상응하는 명확한 기준과 설명이 뒤따라야 한다.
정년을 앞둔 교장의 명예, 학교 운영의 안정성, 그리고 교직사회 전반의 신뢰. 이번 인사가 남긴 질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부산 교육 행정이 ‘사람 중심’이라는 말을 다시 설득력 있게 꺼내기 위해서는, 원칙과 기준을 분명히 밝히는 일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