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불과 며칠 전까지 시장을 지배하던 이 믿음이 순식간에 무너졌습니다. 온스당 114달러를 넘보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하던 은 가격이 하루 만에 두 자릿수 급락을 기록하며 투자자들을 패닉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무엇이 은의 폭주를 멈춰 세웠을까요. 겉으론 지정학, 속으론 통화정책, 마지막엔 구조적 레버리지가 겹쳤습니다.

은은 금보다 시장 규모가 작습니다. 같은 자금이 들어와도 가격 변동폭이 훨씬 큽니다. 최근 랠리는 전쟁 리스크와 공급 차질 우려, AI·태양광 수요 확대 기대까지 뒤섞인 '스토리 장세' 성격이 강했습니다.
하지만 미·중, 미·이란 대화 재개 신호가 전해지며 '전쟁 프리미엄'이 빠지자 가장 먼저 매물이 쏟아진 자산이 은이었습니다. 안전자산처럼 포장됐지만 실제로는 위험 자산에 가까운 레버리지 플레이였다는 점이 드러난 셈입니다.

결정타는 통화정책 기대의 급변이었습니다. 연준 수장 후보군에 매파 성향으로 알려진 케빈 워시가 거론되며 "금리는 더 높게 달러는 더 강하게"라는 시그널이 부각됐습니다.
달러와 역상관 관계가 뚜렷한 은은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미 국채 금리와 달러 인덱스가 튀자, 원자재 전반에 차익 실현이 쏟아졌고 변동성이 큰 은이 낙폭을 키웠습니다. 달러 강세 국면에선 은의 매력은 빠르게 퇴색합니다.

가격이 급등락하자 파생상품 시장의 안전장치도 작동했습니다. 선물시장을 운영하는 CME 그룹이 은 선물 증거금을 인상하면서 레버리지로 포지션을 쌓은 투자자들에게 추가 담보(마진콜)가 쏟아졌습니다.
추가 증거금을 채우지 못한 포지션이 강제 청산되며 매물이 연쇄적으로 시장에 던져졌고, 이것이 단기간 10% 넘는 급락의 기계적 트리거가 됐습니다. 급등을 키웠던 레버리지가 급락도 증폭시킨 전형적인 구조입니다.

결국 이번 은값 급락은 단순한 가격 조정이라기보다 서사 붕괴, 달러 강세, 레버리지 청산이라는 세 가지 요인이 겹쳐 나타난 현상입니다. 은은 산업 수요와 투자 수요가 뒤섞인 하이브리드 자산인 만큼 호황기에는 금보다 더 크게 오를 수 있지만 반대로 불안 요인이 해소되거나 달러가 강해질 경우 낙폭도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이번 사태는 "은은 금과 다르다"는 사실을 시장이 다시 한번 확인한 장면으로, 앞으로는 가격 그 자체보다 달러 흐름과 금리 전망, 거래소의 증거금 정책 같은 구조적 신호를 함께 살펴야 할 필요성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