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제의 언어는 느리고 조심스럽다. 금융당국과 한국은행은 원화 스테이블코인을 두고 ‘안정성’과 ‘통화주권’을 앞세운다. 제도권 금융 질서에 미칠 영향을 고려하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물 경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는 위험성을 고려하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시장의 언어는 빠르고 직설적이다. 은행과 핀테크 기업들은 스테이블코인 도입이 아니라 ‘누가 먼저 판을 깔 것인가’를 두고 이미 움직이고 있다. 한 은행권 관계자는 “방향성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3~4개의 은행과 각종 기업이 컨소시엄을 꾸려 시장을 미리 선점하자는 기조가 뚜렷하다”고 했다.
눈치 싸움도 치열하다. 자본력을 갖춘 은행과 기술력을 가진 핀테크의 조합에 따라 시장 주도권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핀테크 업계 관계자는 “마치 스무 명이 운동장에서 뛰어놀다 선생님이 ‘4명, 5명’ 하고 숫자를 부르면 모여드는 것처럼, 이쪽 손을 놓고 저쪽 손을 잡는 과정이 물밑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는 제도화 논의가 조금씩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다만 발행 주체와 감독 권한을 둘러싼 이견은 여전하다. 감독 체계를 둘러싼 부처 간 역할 조정도 입법 속도를 늦추는 변수다. 지난해 전 세계 스테이블코인 거래 규모는 33조달러(약 4경8000조원)를 넘어섰는데, 국내 금융사들이 관망만 하기에는 부담이 크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재명 대통령은 후보 시절 “외화 기반 스테이블코인 의존도를 줄이고, 국부 유출을 막기 위해 원화로 뒷받침되는 스테이블코인 시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애초 민주당은 대선 공약인 스테이블코인 법제화 방안을 지난해에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통제하지 않으면 위험하지만, 늦으면 판을 잃는다. 스테이블코인은 이미 글로벌 금융 질서의 일부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찬반이 아니라 속도와 설계다. 시장의 속도를 따라갈 수 있는 명확한 가이드라인과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