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농업혁명을 문명의 축복으로 배워왔다. 그러나 유발 하라리는 이를 역사상 최대의 사기극이라 규정한다. 수렵·채집 사회에서 인간은 하루 몇 시간만 일하며 자유를 누렸다. 그러나 농경은 인간을 시간표에 묶었고, 땅과 곡물에 예속시켰다. 인간이 밀을 길들인 것이 아니라, 밀이 인간을 길들인 것이다. 이후 생산성이라는 개념은 절대선처럼 작동하며 인간을 생산성의 함정에 가두었다. 더 많이, 더 빨리, 더 효율적으로라는 명령 속에서 인류는 풍요 속에서도 피로해졌고,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더 바빠졌다.
이러한 천년 노동의 중세시대를 끝낼 수 있을지에 대한 문명사적 질문을 CES 최고의 휴머노이드 아틀라스가 던지고 있다. 아틀라스는, CES 2026에서 만장일치로 뽑힌 세계최고의 로봇이다.
16세기가 신에 의한 노동의 중세라면, 21세기는 자본에 의한 노동의 중세시대이다. 르네상스는 단순한 예술사적 사건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을 보는 세계관의 전환이며, 문명체계의 재설계이다. 1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시작된 르네상스는 중세시대 신의 그림자 속에 가려졌던 인간을 역사와 문명의 주체로 소환한 인간 선언이었다.
16세기 르네상스가 신의 절대성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킨 선언이었다면, 500년이 흐른 지금 인류는 또 다른 중세에 갇혀 있다. 이번에는 신이 아니라 돈과 권력이 절대자가 되었다. 지금의 자본주의는 극단적으로 인간을 수단화하였고, 효율과 생산성은 인간의 존엄을 압도하고 있다. 인간은 목적이 아니라 비용이 되었고, 삶은 숫자로 환원되고 있다. 경쟁이라는 이름으로 생존이라는 이름으로 노동의 함정은 더 커져가고 있다.
꿈과 방향을 잃은 자본은 탐욕이 되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흉기가 된다. 돈에 꿈을 주고, 돈이 꿈을 위해 일하게 하는 것이 기업가정신이다. 기업가는 이윤 극대화를 계산하는 장사꾼이 아니다. 기업가는 더 좋은 세상을 향한 꿈을 꾸고,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해 사람들과 함께 상상하고 혁신하는 존재이다.
기업가의 큰 꿈을 비해그(BHAG, Big Hairy Audacious Goal: 크고 대담한 장기 목표)라 한다. 문샷과 같은 큰 꿈이다. 기업가의 큰 꿈은 듣는 순간 머리가 번쩍 들리는 담대한 꿈이다. 청년들이 이러한 큰 꿈을 꿀 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며 주저앉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도 기꺼이 꿈을 향해 도전하게 된다.
돈키호테는 이를 이룰 수 없는 꿈이라 불렀고, 기업가는 이를 비해그의 꿈이라 부른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이 읽힌 소설 가운데 하나가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이다. 약 5억 부가 판매된 이 작품은 인류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룰 수 없어 보이는 꿈’에 도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돈키호테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었기에 희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그는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잡을 수 없는 별을 잡으려 했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 돈키호테는 인류의 기억 속에 남았다. 수억 명이 읽은 세르반테스가 노래한 이룰 수 없는 꿈은 오늘날 기업가정신 속에서 큰 꿈으로 다시 살아나고 있다.
CES에서 목격한 현대차의 아틀라스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인공지능 휴머노이드는 인간의 몸을 닮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시키기 위해 선택된 문명적 도구이다. 그리스 신화 속에서 하늘을 떠받치던 아틀라스의 이름처럼, 지금까지 인간이 떠안아온 육체 노동을 대신 짊어지며 인간성의 재탄생이 시작될 수 있을지 묻게 된다.
아틀라스는 인류 최고의 자동차 생산방식으로 평가받아온 도요타의 카이젠과 장인정신의 종말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지도 모른다. 카이젠 생산방식은 인간의 실수를 줄이기 위한 시스템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인간은 점점 기계의 부속품이 되었고, 완벽을 강요받는 장인정신의 피로가 누적되었다.
품질을 높이고 원가를 낮추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온 카이젠 방식은, 연봉 1400만 원에 24시간 일할 수 있는 아틀라스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처럼 아틀라스는 농경사회 이후 수천 년간 지속되어온 인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한다. 이미 주식시장은 크게 변화하고 있다.
주식가격과 기업가치를 결정하는 기준도 달라지고 있다. 시장은 주가수익비율이 아니라 주가꿈비율에 반응한다. 기업이 현재 얼마를 벌었는가에 따라 주가가 결정되는 주가수익비율(PER: Price-to-Earnings Ratio)보다 얼마나 큰 꿈을 품고 있는가에 의해 주가가 결정되는 주가꿈비율(PDR: Price-to-Dream Ratio)을 본다.
아틀라스는 미래의 신 르네상스 시대를 향한 꿈을 키워주고 있다. 휴머노이드가 육체 노동을 담당하고, 인간은 창의·공감·상상에 집중하는 인간 회복의 시대이다. 르네상스 1.0이 신으로부터 인간을 독립시켰다면, 르네상스 2.0은 돈과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문명사적 대전환이 될 것이다.
이처럼 CES에서 마주한 아틀라스는 단순한 첨단 인공지능 신기술의 전시물이 아니다. 그것은 자본과 생산성의 논리 속에서 수단으로 전락했던 인간을 다시 문명의 중심으로 되돌려 놓으려는 인간성 회복의 가능성을 던져주고 있다.
아틀라스가 상징하는 것은 인간과 기계의 역할 전환이다. 인간이 감당해 온 노동의 형벌을 인공지능 휴머노이드가 이어받고, 인간은 다시 생각하고 상상하며 공감하는 존재로 돌아가는 문명적 재배치이다. 이는 인간을 기계에 맞추던 시대에서, 기계를 인간을 위해 배치하는 시대로의 전환이다.
16세기 르네상스 1.0이 신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켰다면, CES 아틀라스가 보여준 르네상스 2.0은 21세기 돈과 노동으로부터 인간을 해방시키는 선언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K 이니셔티브를 선언하고 있다. 이는 K 기업가정신이 엔진이 되고, K 문화가 연료가 되어 신 르네상스 문명을 향해 나아가는 전략이다. CES 아틀라스는 인간을 다시 문명의 중심으로 돌려놓으라는 요청이다.
21세기 자본의 중세시대를 끝내는 새로운 인간 선언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인간이 꿈꾸고, 그 꿈이 상상이 되며, 상상이 혁신이 되는 국가.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나라, 그 문명적 전환의 문 앞에 한국이 서 있다.
서울대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도쿄대 경제학부 객원연구원, MIT 국제자동차프로그램(IMVP) 연구위원, 조지워싱턴대학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다. 대통령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혁신경제분과 위원장, 유엔글로벌콤팩트 한국협회 이사, 신남방정책 민간자문위원을 역임하며 정부 자문 역할도 수행했다.
또한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포스코에너지 등 대기업의 자문교수 및 현대모비스·홈앤쇼핑·킨텍스 사외이사 등 산업계와 학계를 연결하는 산학연 허브형 리더로 평가받는다. 윤경ESG포럼 공동대표, 한국인도네시아경영학회 회장으로서 아세안과의 경영교육 및 교류 확대에도 힘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사람중심 기업가정신'(2018), '이토록 신나는 혁신이라니'(2019), '플랫폼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2015) 등이 있다. 다수의 국내외 수상 경력도 보유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