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영화사에 큰 발자국을 남긴 배우 안성기 씨가 9일 영면에 들었다. 이날 유족과 동료 배우들은 발인과 장례 미사, 영화인 영결식을 차례로 치르며 고인을 떠나보냈다.
영결식에서는 공동 장례위원장인 배창호 감독과 배우 정우성이 조사를 낭독했다. 정우성은 “선배님께선 한국영화를 온 마음으로 품고, 이어주려고 무던히 노력했다. 배우 안성기를 넘어 영화인 안성기로 자신에게 책임감을 부여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늘 무색무취로 자신을 지키려던 선배님은 찬란한 색으로 빛나셨다”라며 “부디 평안히 가시길 바란다. 선배님께선 제게 살아 있는 성인이셨다”라며 눈물을 훔쳤다.
운구에는 설경구·박철민·유지태·박해일·조우진·주지훈 씨 등 후배 배우들이 나섰다. 정우성 씨와 이정재 씨는 각각 영정과 금관문화훈장을 들고 고인을 배웅했다. 이날 영결식에는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도 참석했다.
고인은 1957년 김기영 감독의 영화 ‘황혼열차’로 데뷔한 이후 60여 년 동안 170여 편의 작품에 출연하며 한국 영화사의 중심에 서 왔다. 아역 시절부터 성인 연기까지 세대를 관통하는 필모그래피를 쌓았고, 1980~1990년대에는 한국 영화 르네상스를 이끈 얼굴로 자리매김했다.
대표작으로는 △‘바람 불어 좋은 날’ △‘만다라’ △‘고래사냥’ △‘하얀 전쟁’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실미도’ △‘라디오스타’ △‘부러진 화살’ 등이 꼽힌다. 장르와 역할의 경계를 넘나드는 연기로 평단과 관객의 신뢰를 동시에 얻었다.
각종 영화제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대종상영화제와 청룡영화제를 비롯해 국내외 시상식에서 수차례 트로피를 들어 올리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무엇보다 사생활과 현장에서의 품행으로 존경을 받아 ‘국민 배우’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뒤따랐다.
영화계 제도 개선과 사회 공헌에도 적극적이었다. 한국영화배우협회 이사장과 스크린쿼터 비상대책위원회 공동위원장을 지내며 영화인 권익 보호에 힘썼다.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국영화 발전에 이바지한 고인의 공로를 기려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다.
이날 모든 영결식 일정이 끝난 뒤 고인은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 절차를 거쳐 경기 양평 별그리다에 안장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