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 초기보다는 후기 단계 및 일부 기업에 집중

지난해 국내 스타트업 투자 시장에서 바이오산업은 투자 건수와 투자 금액 모두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바이오 투자는 뚜렷한 양극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금은 여전히 유입되고 있지만, 일부 기업으로 쏠리는 구조라는 것이다.
7일 스타트업 투자 데이터 플랫폼 더브이씨(THE VC)가 집계한 ‘2025년 한국 스타트업 투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비상장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대상 투자 건수는 총 1155건으로 전년 대비 33.2% 감소했다. 투자 금액 역시 6조5724억 원으로 소폭 줄었다. 하지만 더브이씨는 사후 공개되는 미공개 투자를 반영할 경우 실제 투자 규모는 전년과 유사한 수준을 유지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도 바이오·의료·헬스케어 산업은 존재감을 이어갔다. 2025년 기준 18개 산업군 가운데 투자 건수와 투자 금액 모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투자 건수는 200건으로 전체의 17.8%를 기록했고, 투자 금액은 1조4927억 원으로 전체의 22.7%에 달했다. 전년 대비 투자 건수는 다소 줄었지만, 투자 금액은 오히려 증가했다.
다만 업계에서는 대규모 투자가 일부 기업에 집중됐고 후기 단계이거나 임상 가시성이 확보된 기업 위주로 자금이 몰렸다고 지적한다. 기술 경쟁력뿐 아니라 상업화 가능성과 회수 시나리오가 비교적 명확한 기업만이 투자 대상으로 선택되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초기 단계 바이오 기업은 투자 환경이 위축되고 있다. 전체 투자 건수가 줄어든 가운데 시드와 시리즈A 단계 투자가 감소하면서 기술 개발 초기 기업들은 후속 투자 유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정부 연구과제나 공공 자금으로 기술 개발은 이뤄졌지만 이를 민간 투자로 연결하는 통로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비상장 바이오 기업 A대표는 “현재는 투자가 기업공개(IPO)에 집중되면서 상장사로 자본이 쏠리고 있다. 이 자금이 신약개발 초기 단계로 흘러가야 하는데 구조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파이프라인 구조가 피라미드가 아니라 항아리형을 거쳐 결국 역삼각형으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벤처캐피털(VC) 업계 관계자 역시 “초기 단계 투자가 줄어든 것은 건수 자체가 크게 감소했다기보다 특정 기업에 자금이 집중됐기 때문”이라며 “여러 기업에 고르게 투자되기보다는 상장 가능성이나 기술이전 실적, 개발 진척이 가시화된 일부 기업에 대규모 자금이 몰렸다. 특히 바이오 분야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졌다”고 진단했다.

초기 바이오 기업이 외면받는 가장 큰 이유는 높은 리스크다. 기술 검증에 오랜 시간이 필요한 데다 임상 진입 여부와 속도를 예측하기 어렵고 투자 회수 시점도 불투명하다. 장기 투자가 불가피한 초기 바이오 기업보다 상대적으로 회수 가시성이 높은 후기 단계 기업에 자금이 몰리는 배경이다.
문제는 이러한 흐름이 장기화될 경우다. 초기 단계에서 자금 공급이 끊기면 향후 후기 단계로 성장할 후보군 자체가 줄어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초기 바이오에 대한 공공 자금 보완과 전략적 투자, 빅파마 협업 모델이 촘촘히 설계되지 않으면 국내 바이오 생태계의 허리층이 약화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에 대해 바이오 기업 A대표는 “임상 단계로 올라갈 수 있는 파이프라인은 반드시 초기 단계에서 공급돼야 비임상과 임상을 거쳐 허가로 이어질 수 있다”며 “비상장 기업에 대한 투자가 줄면 초기 파이프라인을 만들어낼 주체 자체가 감소해 신약 개발 생태계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책적으로 일정 비율의 자금이 초기 단계에 유입되도록 유도하고 초기 투자에서 성과가 날 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또 다른 VC 업계 관계자는 “바이오 생태계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소규모 펀드를 여러 개 조성해 초기 단계에 집중 투자하는 구조가 필요하다”며 “단순히 초기 투자에 가산점을 주는 방식보다는 초기 단계 투자를 주목적으로 설계한 펀드를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피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