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 [요즘, 이거]

입력 2025-12-30 16:29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탈덕과 완덕 그 차이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행복했습니다

긴 시간 내 일상을 침범했던 커다란 존재에게 안녕을 고했습니다. 비록 상대는 나의 시작도 마지막도 알지 못하지만, 결심은 확고한데요. 하루하루를 꽉 채웠던 이를 떠나보내는 ‘허전함’도 두렵죠. 하지만 더는 이 일방적인 애정을 이어갈 ‘이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이돌을 사랑하고 응원하는 ‘팬질(뜻: 특정 인물이나 대상을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행위)’ 속 ‘덕후’는 전부인데요. 모든 과정 속 모든 것을 담당하죠.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덕후는 일본어 ‘오타쿠(オタク)’에서 온 말입니다. 오타쿠란 뜻은 ‘댁(お宅)’이라는 2인칭 대명사인데요. 1980년대 이후 특정 취향에 과도하게 몰입한 사람을 뜻하면서 비교적 부정적인 뉘앙스로 읽혔죠. 일본 서브컬처 맥락, 폐쇄성·집착 이미지가 그대로 담겼습니다.

그러다 ‘오타쿠’가 한국식 발음인 ‘오덕후’로 불리게 됐고 이후 ‘오’가 탈락한 ‘덕후’가 자리 잡았는데요. ‘오타쿠’, ‘오덕후’, ‘오덕’, ‘덕후’ 모두 하나에서 시작됐지만, 어감과 감정은 미묘하게 다르죠. 뭐라 확실하게 콕 집을 순 없지만, 이중 ‘덕후’가 긍정적인 이미지로 살아남았습니다. 특정 분야에 열성적으로 몰두하는 팬·마니아를 뜻하는 용어로 말이죠.

단어 ‘덕후’는 자신의 출신을 본받아(?) 끊임없는 파생어를 만들어냈는데요. 접미사로서 다양한 분야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을 한 번에 설명하는 친절함을 보여줬죠. ‘철도덕후’, ‘역사덕후’, ‘공룡덕후’, ‘조립덕후’ 등으로 쓰입니다. 하지만 가장 많이 사용되는 곳은 바로 ‘아이돌판’인데요. 이제는 세계 널리 퍼진 K팝 덕후의 일대기를 설명하는 단어가 됐습니다.

아이돌판 속 ‘덕후’는 2글자도 긴데요. ‘덕’만을 접미사로 사용하죠. 첫 시작은 ‘입덕’입니다.

“오타쿠는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문득 정신이 들어보니 되어 있다”

덕후의 조상 오타쿠(현시연, 마다라메 하루노부)의 명언인데요. 입(入)을 써서 특정 아이돌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 순간을 뜻합니다. 그야말로 덕후 세계의 무언가의 선, 문을 넘은 상태죠. 시작은 다소 힘들었을지 모르지만, 한번 빠지게 되면 이를 벗어나기가 매우 힘든데요. 작정하고 뛰어든 것이 아니기에 의식적으로 벗어나는 건 더더욱 어렵습니다.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현재는 아니라도 과거 아이돌 덕질을 해봤던 이들이라면 ‘덕후기질’이 DNA에 박혀 있는데요. 과거 아이돌에게 ‘입덕’을 했던 포인트가 파릇한 ‘신인’에게 표출된 순간 어김없이 ‘덕질’에 합류한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참 취향은 바뀌지 않죠.

과거 한 번도 ‘덕질’을 해보지 않은 이를 꾀는 것은 난이도가 상당한데요. 이 난이도를 뚫은 뉴비(초보자,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유저)들은 이제 더 강력한 올가미에 옭아 매어지죠. 경력자들보다는 다소 배움의 과정을 거치지만, ‘첫사랑’은 언제나 강력하니깐요.

이제는 무한 애정의 시간입니다. ‘신인’이라면 차근히 이들의 모든 과정을 밟아가겠지만, 이미 어느 정도의 규모가 만들어진 ‘그룹’이라면 과거 자료 복습은 필수죠. 넘치는 선배들 사이에서 마음 맞는 ‘덕메(뜻: 덕질 메이트)’를 찾았다면 그야말로 행운아인데요.

고된 하루살이 속 덕메들과의 대화는 그야말로 ‘도파민’ 잔치죠. 힘겨운 출·퇴근길, 어색한 웃음 속 사회생활,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상사의 질책, 이 모두를 잊게 합니다. 바쁜 생활 속 놓쳤던 ‘내 돌’의 글과 사진, 후기들을 바로 앞에 배달 시켜주는 서로의 택배죠. 쉽게 털어놓지 못한 사회생활의 힘듦도 툭 터놓을 수 있는데요. 고난을 상쇄 시켜주는 엄청난 치료약 ‘내 돌’이 있기 때문이죠.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무한한 지원이지만 그 가운데는 ‘의리’가 필수인데요. “나는 그를 알아도 그는 나를 모른다”는 확실한 명제 속에서도 이것은 놓칠 수 없습니다. ‘의리’에 금이 가는 일이 발생하면 ‘휴덕(뜻: 덕질을 일시적으로 멈추는 것)’ 혹은 ‘탈덕(뜻: 덕질을 그만둠)’의 길로 향하게 되는데요.

단순히 ‘배신감’으로 설명할 순 없습니다. 최근 불거진 그룹 방탄소년단(BTS) 정국(전정국)과 그룹 에스파 윈터(김민정)의 열애설 속에서도 잘 드러나죠. ‘설’이라 부르기엔 조금 부족한 이들의 열애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X(엑스)에서 ‘탈덕’ 단어가 난무하게 했는데요. 단순히 이들이 열애한다는 것이 문제가 아닙니다.

팬들의 모든 바람은 ‘티만 내지 말아달라’ 하나뿐인데요. 잘생기고 예쁘고 잘난 아이돌이 서로 부딪히는 ‘좁은 관계’ 속 만남이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팬은 없습니다. 다만 그것을 티만 내지 말아 달라는 거죠. 아이돌판에서 ‘유사 연애’ 감정을 제외하라는 건 ‘화력’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은데요. 애써 숨겼지만, 미처 숨기지 못했던 ‘틈’은 팬들 스스로도 ‘흐린 눈(애써 무시하며 모른 척하는 행위)’으로 바라봐 줍니다. 잘 숨겼지만 ‘파파라치’를 통해 보도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인데요. 그 비난은 아이돌보다는 파파라치에 향하죠.

하지만 아이돌이 넘치게 티를 내는 경우는 너무나 다릅니다. 팬들과 소통하는 라이브 방송이나 SNS에서 애칭이나 단어를 사용한다거나, 커플티나 커플링 등 애정템을 일상생활이 아닌 팬들에게 노출되는 자리에 착용하는 건 그야말로 ‘기만’인데요.

굳이 애써서 티를 내는 그 모든 상황이 애써 ‘흐린 눈’으로 살았던 팬들의 마지막 인내심을 걷어내는 셈입니다. 이번 정국과 윈터의 열애설 속 제기된 추측들이 그러했죠. 팬들과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 윈터가 착용한 바지와 신발이 정국의 것이라는 의혹, 공항 출국길에서 착용한 커플 아이템 의혹, 팬들에게 공개한 일상 영상 속 상대 추측 발언 등 그야말로 상당한데요. 거기다 K아이돌계에 전례가 없었던 ‘커플 타투’ 의혹은 양쪽 팬들에게 충격을 안겼습니다.

일각에서는 “아이돌도 연애할 수 있지”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보내는 팬들을 질타했는데요. 확실히 해둘 것은 일반 대중은 아이돌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화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돈은 덕후가 쓰고 용서는 머글(여기선 팬질을 하지 않는 일반 대중을 뜻함)이 한다” 그 자체죠. 코어 팬층의 이탈, 이들의 탈덕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 확실히 해둘 것은 ‘팬이 돌아서면 안티가 된다’는 교훈인데요. 일거수일투족을 알았던 이들이 반대편에 선다는 건 엄청난 손실입니다. 덕질의 너무 잔혹한 결말이죠.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탈덕 완덕 차이/탈덕 완덕 뜻 (김다애 디자이너 mnbgn@)


그래도 이들은 ‘미워하는 애정’이라도 남은 상태인데요. 이 모든 것을 ‘해탈’한 이들도 있죠. 새롭게 등장한 ‘완덕’입니다. 덕질을 ‘완주’하고 내려놓는 상태인데요. 부정적 감정보다 정리에 가깝습니다. 이별이 아닌 졸업이죠. “할 만큼 했다”는 감정으로 자신의 팬질 일대기에 엔딩 크레딧을 찍는 건데요. 미워하는 감정도 벗어던진 안녕을 비는 단계. 그야말로 수행자입니다.

완덕을 외친 팬들은 ‘격하게 사랑했다’며 그간의 팬질을 추억으로 덮는데요. 혹여나 아이돌들이 이를 두고 안티로 돌변하지 않았다며 안심한다면 너무나 미련하죠. 마음을 다한 팬들이 떠나간 것에 대한 심각성을 모르는 셈이니깐요.

이런 파생된 ‘덕’은 K팝 문화를 흡수한 해외팬들도 사용하는 단어인데요. ibdeok(입덕), taldeok(탈덕) 등 한국어 그대로를 차용해 사용합니다. 비록 그 단어를 쓰는 분위기는 문화별로 다를지라도 ‘팬질 과정’은 전 세계가 통용되고 있죠.

그만큼 K팝 만큼이나 K팬질, K덕후들의 영향력도 커졌는데요. 입덕은 우연이었을지라도 탈덕은 선택이었죠. 깨져버린 ‘의리’ 속 ‘선택’이란 결정을 한 건데요. 그보다는 더 나은 끝맺음을 위한 정리, 완덕을 택하는 마음도 사뭇 애틋합니다. 좋아함의 끝에도 이름을 붙이게 된 건, 어쩌면 우리가 그 시간을 그저 헛된 것으로 남기고 싶지 않은 애정이 아닐까요?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생산적 금융 판 키운 4대 금융…KB‧하나 '증권맨' 전진배치
  • 트럼프 “새 연준 의장 1월 발표...파월 해임 여전히 가능”
  • 입덕과 탈덕, 그리고 완덕 [요즘, 이거]
  • 김병기 與 원내대표 사퇴…문진석 대행 체제 ‘후폭풍’
  • 넷플릭스 '흑백요리사2', 오늘(30일) 8~10화 공개 시간은?
  • 쿠팡 연석 청문회 미진…與 국정조사 추진
  • KT, 해킹 사태 책임 공식화…위약금 면제·1조 원 보안 투자
  • '상간 의혹' 숙행, 방송 활동 중단…자필 사과문 공개
  • 오늘의 상승종목

  • 12.30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27,837,000
    • +0.66%
    • 이더리움
    • 4,303,000
    • +0.77%
    • 비트코인 캐시
    • 863,500
    • -0.58%
    • 리플
    • 2,716
    • +0.82%
    • 솔라나
    • 180,100
    • +0.5%
    • 에이다
    • 508
    • -0.78%
    • 트론
    • 417
    • +0.72%
    • 스텔라루멘
    • 306
    • -2.55%
    • 비트코인에스브이
    • 25,860
    • +1.17%
    • 체인링크
    • 17,980
    • +0.5%
    • 샌드박스
    • 164
    • -1.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