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법안의 중요성 공감
성과 없는 ‘주도권 싸움’

고물가·고금리와 경기 둔화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여야가 극한 대치를 이어가면서도 민생·경제 법안을 중심으로 협치의 물꼬를 트고 있다. 내년 지방선거를 약 6개월 앞두고 국회가 ‘민생 성과’를 선거의 핵심 변수로 인식하면서 쟁점 법안과 분리된 비쟁점 민생 입법부터 처리하는 흐름이 점차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31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 원내대표는 최근 공식·비공식 회동을 반복하며 민생 법안 처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다. 국조·특검 등을 둘러싼 대치가 이어지는 상황에서도 경제·생활 밀착형 법안만큼은 별도 트랙으로 다루자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흐름은 지난 27일 정기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열린 우원식 국회의장 주재 여야 원내대표 회동에서 분명히 드러났다. 이 자리에서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른바 ‘비쟁점 민생법안’으로 분류된 7개 법안을 우선 처리하기로 뜻을 모았다.
합의 대상에는 철강산업 경쟁력 강화 및 녹색철강 전환을 골자로 한 K-스틸법을 비롯해 부패재산몰수특례법, 전자금융거래법, 필수농자재지원법, 부산 해양수도 이전기관 지원 특별법 등이 포함됐다. 여야는 이들 법안을 이날 바로 본회의에 상정하고 통과시켰다.
김병기 원내대표는 당시 회동에서 “오늘 상정 안건은 여야가 공감해 온 비쟁점 민생법안”이라며 협조를 요청했고, 송언석 원내대표도 민생 법안 처리 필요성에는 동의하면서도 국회 운영 전반에 대해선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11월 중순 본회의에서도 여야는 사전 합의한 50여 개 비쟁점 민생법안을 한꺼번에 처리했다. 택배 노동자의 고용 불안과 과로 문제를 겨냥한 생활물류서비스산업발전법 개정안, 가덕도 신공항 건설 피해 주민 지원 특별법, 전기차 화재 예방을 위한 자동차관리법 개정안 등이 포함됐다. 해당 법안들은 재석 의원 대부분의 찬성으로 통과되며 사실상 여야 공동 추진 법안으로 기능했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정쟁이 극심한 상황에서도 실질 민생 과제만큼은 협치가 작동하고 있다는 신호”라는 평가가 나왔다.
여야는 정쟁 이슈를 피해 가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 ‘민생경제협의체’도 가동 중이다. 9월 중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은 정책위의장 등 실무 책임자가 참여하는 2+2 구조의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과 여야 대표 간 합의 내용을 원내 차원에서 구현하기 위한 장치로 평가된다.
협의체에서는 경제 활성화, 청년 고용, 지역 균형발전 등 양당이 대선 과정에서 공통으로 제시했던 공약 과제가 우선 논의 대상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파적 색채가 옅은 의제부터 해법을 찾겠다는 계산이다.
여야는 여전히 통일교 특검과 내란전담재판부 설치 등을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 그러나 국회의장 주재 회동이나 실무 협의체에서는 비쟁점 민생법안을 따로 묶어 처리하는 ‘충돌과 합의의 이중 트랙’을 병행하는 모습이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형 정치 현안이 정리되지 않는 한 민생 합의가 정국 전환의 동력이 되기는 어렵다”면서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여야 모두 민생 성과를 쌓아야 하는 만큼, 경제·생활 법안을 중심으로 한 협치는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결국 상반기까지 얼마나 많은 민생·경제 법안을 처리했는지가 하반기 지방선거 국면에서 여야가 내세울 수 있는 ‘책임 정치’의 명분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