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희 개보위원장 “날 키운 건 끈기ㆍ전문성...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 돼야”[K 퍼스트 우먼⑮-끝]

입력 2025-12-3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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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대한민국 정보기술(IT) 정책의 심장에서 ‘최초’라는 수식어를 달고 온 인물이 있다.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개보위) 위원장이다. 그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신인 정보통신부 시절부터 여성 사무관이 드문 ‘남초’ 집단에서 실력으로 살아남아 과기정통부 최초의 여성 1급 고위공무원, 그리고 마침내 장관급 기구인 개보위의 첫 여성 수장 자리를 꿰찼다.

그에게 최초라는 수식어는 행운이 아닌, ‘중단하지 않는 끈기’와 ‘치열한 전문성’의 산물이었다. 멈추지 않는 도전과 나 자신에 대한 확신이 ‘K 퍼스트 우먼’ 송경희 개인정보위원장을 만든 가장 강력한 보안 시스템이자 성장 엔진이었다. 광화문 정부서울청사에서 만난 송 위원장은 쿠팡의 대규모 유출 사태와 국가기간망인 통신 3사의 해킹 사태 등 산적한 현안 속에서도 담담한 표정이었다. 인터뷰 내내 특유의 평온하되 단단한 어조로 자신의 인생 궤적과 한국 보안의 미래상을 찬찬히 풀어냈다. 대한민국 데이터 안보의 핵심 키를 쥔 송 위원장이 더 든든하게 느껴지는 것은 그가 바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끝까지 완수해온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는 여성 최초라는 말이 더는 새롭지 않기를, 오로지 능력으로만 인정받는 성평등 사회가 오길 바란다고 했다. K 퍼스트 우먼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이보다 더 정확한 메시지는 없어 보였다. ※대담 :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2년반 직장생활 후 행시 준비...멈추지 않으면 어디든 닿는다
2배 일해야 男과 비슷한 평가...여성 쿼터제는 과도기적 장치
'송경희는 믿을 수 있다' 신뢰...ICT 보안조직 첫 여성 수장에
어느 한쪽 치우치지 않은 다양성 숨쉬는 조직 되길 기대해

◇“중단하지 않았기에 오늘이 있다”

송 위원장의 이력은 독특하다. 처음부터 공직의 길을 걸은 것이 아니다. 그는 포스코(POSCO) 대졸 여성 공채 1기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故 박태준 회장이 “여성 임원까지 키우겠다”고 공언하며 뽑은 49명 중 한 명이었다. 송 위원장은 “운동장에 모인 수많은 여성 지원자를 보며 세상에 일하고 싶은 여성이 이렇게 많구나 싶어 놀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러나 2년 반의 직장 생활 끝에 그는 ‘이 길이 내 꿈인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질문 끝에 그는 과감히 사표를 던지고 신림동 고시촌으로 향했다. 그때 그의 나이 스물여덟. 송 위원장은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였지만 오히려 몰입할 수 있었다”며 “나 자신에 대해 잘 아니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분명해졌고, '이때 아니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깨웠다”고 말했다. 주 6일, 하루 10시간 이상 행정고시 공부에만 매진한 끝에 그는 합격이라는 성공을 거머쥐었다. 그는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공부한 시절이었다. 그때의 성취감은 이후 공직 생활의 커다란 자산이 됐다”고 자신했다.

서른 살에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직에 발을 들인 그는 이후 30년 가까이 한 번도 멈추지 않았다. 과기정통부 최초의 여성 1급 공무원부터 최초의 여성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되기까지, 그는 무엇보다 ‘계속하는 힘’을 강조했다. 송 위원장은 “특별한 재능이나 운보다는 '중단하지 않았다'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다”며 “힘들어도 그저 뚜벅뚜벅 걸었다. 중단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곳에 닿지 못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힘들다고 중간에 포기했으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여자라서 안 된다” 편견, 실력으로 뚫다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그가 사무관이던 시절, 공직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보수적이었다. “여자 사무관과는 일해본 적 없어 불편하다”며 대놓고 기피하는 상사들도 있었다. 회의 중 눈도 마주치는 않는 이가 있는가 하면 출장지에서 같은 방을 쓸 수 없다는 이유로 업무에서 배제되기도 했다.

송 위원장은 자리에 앉아 기회가 오길 기다리지 않았다. 여성을 기피하는 조직 문화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준비된 인재’로 각인시키기 위해 적극적인 세일즈에 나섰다. 가고 싶은 과가 있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할 때면 직접 과장들을 찾아가 “저도 잘할 수 있다”며 확신을 심어주었다. 특히 남성 중심의 끈끈한 연대가 술과 담배를 매개로 이루어지던 시절 그는 그 틈에 끼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는 간접흡연을 서슴치 않고 상사들을 쫓아다니며 업무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 애썼다. “남성 사무관들보다 두 배는 일해야 비슷하게 평가받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버텼다”는 그의 말처럼, 지독하리만큼 철저했던 노력은 결국 ‘여성이 기술 정책을 할 수 있겠느냐’는 편견을 ‘송경희라면 믿을 수 있다’는 신뢰로 바꾸어 놓았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송 위원장은 특히 여성 선배로서의 책임감이 무거웠다고 회고했다. 자신이 집안일이나 육아 때문에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면 그것이 곧 ‘여성 사무관 전체’에 대한 불이익으로 이어질까 봐 극도로 조심했다. 그는 “집안일이나 육아 얘기는 사무실에서 절대 꺼내지 않았다. 아이가 아파도 티를 내지 않았다”며 “'여자라서 일을 못 한다'는 인식을 주기 싫었다. 월급을 거의 다 입주 도우미 분께 드리면서도 직장에선 오로지 일에만 집중했는데, 이런 긴장감이 오히려 스스로를 더 강하게 만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두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엄마로서 겪었던 고충도 숨기지 않았다. 그가 하버드 유학 시절 남겨놓았던 메모장에는 ‘두려움은 열망과 준비에 약하다’는 글귀가 남아있다. 마흔이 되기 전 인생의 새로운 도전을 하기 위해 서른아홉에 두 아이를 데리고 떠난 유학길에 관한 이야기다. 1년 간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 2시간씩 토플(TOFEL)과 GRE 공부를 해 하버드 케네디스쿨 석사과정에 합격한 그는 직장 때문에 한국에 있어야 하는 남편을 두고 혼자 머나 먼 타국서 두 아이 육아와 공부를 성공리에 마쳤다. 더 넓은 세상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과 이를 이루기 위해 잠을 반납하며 '준비'했던 시간들이 그의 두려움을 떨치는 원동력이었다.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송경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이 1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집무실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이란 기자 photoeran@

◇“세상에 나를 갉아먹을 만큼 중요한 일은 없다”

수많은 결정 앞에서 그는 의외로 “아니면 말지”라는 초연한 태도를 보였다. 책임을 회피하는 수단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책임감으로 무장한 그였기에 내비칠 수 있는 모습이었다. 송 위원장은 “세상에 나를 고통스럽게 하고 잠 못 자게 할 만큼 비싸고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며 “내가 최선을 다하면 결국 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설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내가 감당하면 그만이라는 자신감, 이것이 나를 지탱하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위원장은 고시 공부를 하던 시절부터 자신과 약속을 철저히 지키며 스스로를 단련해왔다. 10개월 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하루 10시간 이상 공부하고 일요일에만 휴식하는 루틴을 한 번도 어기지 않았던 원동력은 ‘자신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이었다. 남들은 독하다고 혀를 내둘렀지만 정작 그는 “나와 오래 살아보니 나는 결국 해내는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는 자기 확신이 있었기에 그 과정조차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내가 나를 닦아세우고 몰아세울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안 된다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라는 배짱은 단순히 배부른 여유가 아니라 최선을 다해본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한 내면의 보호막이다. 이처럼 자신을 믿고 매 순간에 몰입하되 결과에 집착하지 않는 태도가 바로 숱한 위기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송 위원장만의 견고한 보안 시스템이 된 셈이다.

◇기술을 읽는 ‘전문성’에서 오는 자기 확신

현재 개인정보보호위원장으로서 그가 갖는 자기 확신은 그의 정보통신기술(ICT) 전문성에서 비롯된다. 송 위원장의 전문성은 ICT 기술이 사회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끊임없는 탐구에서 시작됐다. 그는 미래창조과학부(현과기정통부) 당시에는 정통 관료들이 선호하는 보직 대신 ‘융합기술과장’을 자처하며 나노와 반도체 등 원천 기술이 가져올 미래 비전을 직접 확인했다. “단순히 정보통신 분야만 보는 것이 아니라 기술이 결합해 만들어낼 새로운 사회의 원동력을 보고 싶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이후 2019년, 인공지능(AI)이 지금처럼 화두가 되기 전부터 그는 소프트웨어의 중요성을 예견하고 방송정책국 대신 소프트웨어정책관 자리를 고집했다. “앞으로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이끌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는 남보다 앞선 통찰력은 그를 인공지능기반정책관과 4차산업혁명위원회 지원단장으로 이끌며 대한민국 AI 정책의 기틀을 닦게 했다.

현장에서 쌓은 풍부한 경험은 이제 개인정보 보호라는 국가적 과제를 해결하는 강력한 무기가 되고 있다. 송 위원장은 “AI 시대에는 데이터 수집과 활용의 사이클이 과거와 완전히 다르다”며 기술적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수장으로서의 전문성을 가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는 “글로벌 선두 주자들의 AI 발전 속도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우리도 보안이 필요한 공공·국방·교육 영역에서 우리만의 데이터를 안전하게 지키고 활용할 수 있는 독자적인 역량을 반드시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순히 규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술의 속성을 깊이 이해하고 있기에 가능한 진단이다. “기술은 멈춰 있지 않기 때문에 조직의 역할도 그 변화를 반영해 계속 재정의돼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현재 개인정보위가 추진하는 ‘친 프라이버시 AI 설계’와 ‘선제적 예방 체제’의 든든한 기술적 토대가 되고 있다.

◇'최초'라는 말, 더는 필요 없는 사회 되길

송 위원장은 '최초'라는 수식어가 더 이상 필요 없는 사회를 꿈꾼다. 그는 “앞으로의 후배들은 '최초'라는 말을 달지 않아도 되는, 능력으로만 인정받는 시대가 오길 바란다”며 “그것이 가장 바람직한 성평등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위원장의 이러한 바람은 그가 쿼터제(할당제)에 대해 가진 소신과도 맥을 같이 한다. 송 위원장은 과거 행정고시 면접 당시 여성 쿼터제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여성들의 능력이 이미 충분히 드러나고 기회가 주어지고 있기에 강제적인 할당은 오히려 그 능력을 과소평가하게 만들 수 있다”고 답했던 일화를 공유했다.

물론 과도기적으로 유능한 여성을 발굴하는 장치가 될 순 있겠지만 결국은 특정 성별에 치우치지 않고 남녀가 유사한 비율로 어우러져 각자의 역량을 발휘하는 상태가 가장 건강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과거 자신의 자녀가 그랬 듯 “초등학교에 남자 선생님이 너무 없어 아이들이 갈증을 느끼는 것처럼, 어느 한쪽으로 쏠린 구조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그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사라진 자리에 오직 실력과 다양성이 숨 쉬는 공정한 경쟁의 장이 들어서길 기대하고 있다.

▲송경희가 걸어온 길 (이투데이 그래픽팀=신미영 기자•사진=고이란 기자)
▲송경희가 걸어온 길 (이투데이 그래픽팀=신미영 기자•사진=고이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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