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국 압박에 증권사들 자제 분위기
이찬진 “단기 수수료 집착 우려”

고환율 국면에서 해외투자 열풍이 확산하자 금융당국이 제동에 나섰다. 증권사들도 당국 기조에 맞춰 해외주식 신규 마케팅을 사실상 중단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투자자 보호를 내세운 조치지만, 원화 약세의 한 요인으로 지목되는 ‘서학개미’를 더 이상 자극하지 말라는 당국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이날 오전 미래에셋증권, 메리츠증권, 키움증권, 토스증권 등 해외주식 거래 비중이 큰 증권사 대표들을 불러 간담회를 열었다. 당국은 이 자리에서 고환율 환경 속에서 공격적인 해외투자 마케팅이 개인투자자의 환차손과 투자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최근 증권사들은 해외주식 신규 고객을 대상으로 투자지원금 지급, 거래 수수료 면제 등 각종 이벤트를 앞다퉈 진행해왔다. 그러나 간담회 이후 증권사들은 해외투자 관련 신규 행사와 광고를 당분간 중단하고, 기존에 진행 중인 마케팅도 법률 검토를 거쳐 정리하는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이미 노출된 광고 역시 차례로 내릴 가능성이 크다.
증권사 관계자는 “진행되거나 예정된 마케팅 광고들을 취소하는 쪽으로 검토하고 있다”며 “해외투자 관련 새로운 이벤트는 당분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감원은 이날 오후에도 대형 증권사 6곳 대표를 추가로 소집해 논의를 이어갈 예정이다. 이후 금융투자협회를 통해 업계 전반에 해외투자 마케팅 자제 방침을 전달할 것으로 보인다. 특정 회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에서 전반적인 조정이 불가피한 분위기다.
당국의 시선은 환율로 향해 있다. 개인투자자의 해외투자 확대가 달러 수요를 자극해 원화 약세를 키운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지난달 27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는 “젊은 층이 해외 투자를 ‘쿨하다’고 여기며 유행처럼 번질까 걱정된다”고 밝힌 바 있다. 미국의 금리 인하 기대에도 불구하고 원·달러 환율은 18일 기준 1480원대를 위협하고 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이날 증권사 영업 행태를 질타했다. 이 원장은 금융상황 점검회의에서 “증권사들이 투자자 보호보다 단기 수수료 수익 확대에 치중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심각한 우려가 있다”며 문제 소지가 확인될 경우 즉시 현장 검사로 전환하라고 지시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증권사의 해외증권 위탁매매 수수료 수입은 2023년 7000억 원에서 2024년 1조4000억 원으로 늘었고, 올해 10월 기준으로는 2조 원까지 증가했다. 반면 올해 8월 말 기준 개인 해외주식 계좌의 49%는 손실 상태였고, 해외 파생상품 투자에서도 올해 들어 3700억 원가량의 손실이 발생했다.
금감원은 이달 초부터 한국투자증권과 NH투자증권을 시작으로 증권사 해외투자 영업 실태 점검을 진행 중이며, 현재까지 6개 증권사에 대한 점검을 마쳤다. 향후 자산운용사로 점검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과장 광고나 위험 성향에 맞지 않는 투자 권유 등 위법 행위가 적발될 경우 해외주식 영업 중단 등 강도 높은 제재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방침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