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인재는 5년 사이 6배 증가세
도덕적 행동을 기업활동의 근본으로

“ 기술력만으로 충분치 않다. 교양과 인문학이 결합한 기술이야말로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는 결과를 만든다.”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설립자가 15년 전 설파했던 메시지가 초지능 시대에 들어서면서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 인공지능(AI)이 인간의 판단 영역까지 확장되면서 기술을 인간의 가치와 연결하는 철학의 역할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18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에 따르면 다국적 기업과 노동시장에서 AI 개발과 윤리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인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면서 철학·윤리학 전공자들이 새로운 핵심 인력으로 부상하고 있다.
닛케이가 비즈니스 소셜미디어 링크드인의 데이터 분석 도구 ‘오디언스’를 활용해 전 세계 13억 명에 달하는 이용자들의 직함과 보유 역량을 분석한 결과 철학을 전공한 인재들이 활약의 장을 넓혀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관련 역량을 보유하면서 직함 설명에 윤리 관련 키워드를 포함한 인물은 약 8만9000명에 달했다. 이 중 9.9%가 철학이나 그 하위 분야인 윤리학 등의 전문 교육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링크드인 전체에서 이러한 학력을 가진 이용자 비율이 4.3%에 불과한 점을 고려하면 두드러지게 높은 수치다.
이들이 해당 직함을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을 조사하기 위해 400명을 무작위로 추출해 분석한 결과 AI와 윤리 역량을 동시에 보유한 인재는 5년 새 6배나 증가했다. 특히 IT 대기업과 컨설팅 기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증가세가 뚜렷했다.
로리 앤 폴 예일대 심리학과 교수는 ‘왜 지금 철학인가’라는 질문에 “AI가 가져올 예측 불가능한 미래는 기존 가치관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AI 개발을 둘러싼 윤리적 딜레마를 설명할 때 흔히 언급되는 사례가 이른바 ‘트롤리 딜레마’다. 폭주하는 트롤리가 선로 위의 다섯 명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때, AI가 선로를 바꿔 한 명이 있는 쪽으로 돌릴 것인지 판단해야 하는 상황이다. 어느 선택도 명확한 정답은 없다. 중요한 것은 판단의 투명성과 설명 책임을 확보하는 ‘AI 거버넌스’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기술 발전의 속도를 늦출 수 없다는 이유로 윤리적 틀을 부차적인 문제로 보는 시각도 여전히 존재한다. 최근 초지능 개발 경쟁을 가속하는 실리콘밸리에서는 기술 혁신이 기후변화, 빈곤, 전쟁과 같은 문명적 문제를 해결한다는 ‘효과적 가속 주의’가 힘을 얻고 있다. 일부 극단적인 가속 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기술 혁신을 위해 더 권위적인 통치 체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암흑 계몽’ 사상이 고개를 들고 있기도 하다.
21세기를 대표하는 철학가 중 한 명인 독일 본 대학의 마르쿠스 가브리엘 교수는 “일부 테크 기업 내부에는 암흑 계몽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이에 맞서는 길은 더 나은 철학으로 대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윤리 자본주의’ 철학을 실현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5월 독일에서 AI 스타트업 ‘딥인AI’를 설립했다. 윤리 자본주의는 도덕적 행동을 기업 활동의 근본으로 삼는다.
구보타 마사유키 라쿠텐증권 수석전략가는 “AI에 의한 딥페이크가 대중 심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고, 정치 경제 및 지정학적 리스크에도 영향을 미치는 시대가 됐다”며 “기술 혁신만을 추구하는 위험은 너무나 크다. 범죄나 전쟁에 이용되는 것을 막는 윤리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