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쇼티지 ‘구조화’…공급은 여전히 부족
삼성·SK, 차세대 HBM로 실적 훈풍 기대

메모리 시장의 ‘실적 풍향계’로 불리는 미국 마이크론이 다시 한번 분기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인공지능(AI) 서버용 고대역폭메모리(HBM)를 비롯한 고부가 메모리 수요가 실적으로 확인되면서 그간 제기돼 온 ‘AI 거품론’은 설득력을 잃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에서는 이 흐름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메모리 기업에도 그대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마이크론은 17일(현지시간) 발표한 2026회계연도 1분기(2025년 9~11월) 실적에서 매출 136억4300만 달러(약 20조1643억 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56% 증가한 수치다. 영업이익은 64억1900만 달러(약 9조4872억 원)로 168% 급증했다. 매출과 이익 모두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동시에 분기 기준 역대 최대 수준이다.
AI 관련 메모리가 실적 성장을 사실상 주도했다. 마이크론은 이번 실적에서 데이터센터 매출이 두 배 이상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HBM과 고용량 DDR5, 기업용 SSD 등 AI 서버에 필수적인 제품군의 출하 확대가 전사 실적을 끌어올렸다.
전망도 낙관적이다. 마이크론이 제시한 2분기 매출 가이던스는 183억~191억 달러로, 시장 컨센서스(143억8000만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회사는 AI 서버 증설이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며, HBM 공급은 이미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마이크론은 내년 전체 HBM 공급에 대한 가격과 물량 계약을 완료한 상태다.
산자이 메흐로트라 마이크론 CEO는 실적 발표에서 “AI는 메모리 수요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며 “2026 회계연도에는 HBM을 포함한 데이터센터 메모리가 회사 역사상 가장 큰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현재 고객사와 체결한 장기 공급 계약만 봐도 고부가 메모리의 수급 타이트 현상은 단기간에 해소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에 글로벌 메모리 공급 부족, 이른바 ‘메모리 쇼티지’가 장기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 역시 최근 보고서에서 “AI 서버 증설 속도가 메모리 증설을 앞지르며 2026년까지 HBM과 고용량 DDR5의 공급 부족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가격 상승과 수익성 개선이 동시에 나타나는 구조가 이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메흐로트라 CEO는 “아이다호 팹 가동 시점을 앞당기고 기존 공장 장비 투입 속도를 최대화하고 있지만, 클린룸 건설에는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며 “업계 전체가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AI 메모리 가격 상승이 지속하면서 국내 기업들의 실적에도 훈풍이 예상된다. SK하이닉스는 이미 HBM 시장 점유율 1위를 바탕으로 실적 호황을 이루고 있고, 삼성전자 역시 차세대 HBM과 서버용 D램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다.
늘어나는 수요를 적기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량 확대에도 주력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평택 5공장(P5)에 60조 원 이상을 투입하며 공사를 2년 만에 재개했다. P5에서는 차세대 HBM을 생산할 계획이다. SK하이닉스도 청주 M15X 팹을 조기 완공해 내년 가동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 1기 팹도 당초 계획이었던 2027년 5월보다 앞당겨 준공할 예정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마이크론 실적이 보여주듯 AI 메모리 수요는 이미 실체가 됐다”며 “공급 제약이 이어지는 만큼 당분간 글로벌 메모리 업황과 국내 반도체 기업 실적 모두 우상향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