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성과 경쟁 경고…생산적 금융·BDC 통해 벤처 생태계 지원 강조
업계는 세제·제도 개선 건의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에게 투자자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삼는 경영 전환을 주문했다. 단기 성과에 매몰된 운용 관행에서 벗어나 생산적 금융과 장기 투자 중심의 시장 질서를 구축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이 원장은 17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협회에서 서유석 금융투자협회장, 20개 자산운용사 CEO와 간담회를 열고 “대내외 경제 불확실성과 AI·디지털 전환 가속화로 산업과 금융의 사업모델이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며 “한국 경제의 백년지대계를 정립해야 하는 변혁의 시기에 자산운용업계의 역할을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이 원장은 투자자 최우선 원칙의 내재화를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그는 “금융감독원이 지향하는 투자자 보호는 상품 설계·제조·판매 전 과정에서 투자자와 운용사, 감독당국의 시선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라며 “최종 수요자인 투자자 관점에서 투자 위험을 분명하고 구체적으로 전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비 새는 집의 들보는 결국 썩는다”며 “CEO부터 의지와 책임감을 갖고 투자자 최우선 원칙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하도록 앞장서야 한다”고 말했다.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도 핵심 메시지로 제시했다. 이 원장은 “저성장과 투자 위축의 흐름을 되돌리기 위해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시대적 과제”라며 “자산운용사가 전문적인 평가 인프라를 구축해 자립성과 복원력을 갖춘 K-벤처·중소기업 생태계 조성에 적극 기여해야 한다”고 밝혔다. 금감원 역시 금융시장과 혁신 기업을 잇는 연결 플랫폼 구축과 상품·인가 심사체계 정비, 자본건전성 규제 개선 등을 통해 이를 뒷받침하겠다고 했다.
펀드산업 경쟁력에 대한 우려도 내놨다. 단기 성과에 매몰된 상품 쏠림과 유사 상품 반복 출시, 일부 타깃데이트펀드(TDF)의 분산투자 원칙 미준수, 일반 공모펀드에 대한 투자자 이탈 현상을 지적하며, 자산운용 패러다임을 고객 중심으로 전환해 성숙한 경쟁 문화와 건전한 시장 질서를 확립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혁신 상품과 장기 투자 문화 조성은 적극 지원하되,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에 대해서는 감독을 강화하겠다는 방침도 분명히 했다.
이날 간담회에 참석한 자산운용사 CEO들은 상품 설계부터 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투자자 보호 절차와 내부통제를 한층 강화해 투자자 신뢰를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CEO들은 자본시장 중심의 생산적 금융 전환 필요성에 공감했다. 모험자본 공급 확대에 업계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뜻도 밝혔다. 벤처·혁신기업 전용 공모펀드인 기업성장집합투자기구(BDC)와 국민성장펀드가 중소·벤처기업의 안정적인 자금 조달 창구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간 축적해 온 운용 경험과 심사 역량을 적극 활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생애주기별 자산관리 서비스와 상품 고도화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과정에서 시장 수요에 부응하는 가상자산 관련 상품 등이 제도권 내에서 출시될 수 있도록 정책적·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점을 금융당국에 건의했다.
또 자본시장 수요 기반을 넓히고 장기 자금 유입을 유도하기 위해 장기 투자 인센티브 대상에 펀드도 포함해 줄 것을 요청했다. 펀드 투자자에 대해서도 배당 분리과세 등 세제 혜택이 보완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제기됐다.
이 원장은 “자산운용업계는 단순히 돈을 굴려 수익만 내는 금융이 아니라, 돈을 굴려 가계 자산과 경제를 함께 키우는 금융의 사회적 책임을 지고 있다”며 “투자자의 시선에서 상품을 설계·제조하는 고민을 새해 핵심 화두로 삼아 달라”고 당부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