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논단_전하진 칼럼] 벤처 30년, 미래 30년은 ‘살림셀’이다

입력 2025-12-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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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X재단 이사장

성장·경쟁 통한 양적팽창 한계맞아
소규모·분산형 자립단위 활성화해
산업모델 만들고 신시장 창출해야

올해는 대한민국 혁신의 요람인 벤처기업협회가 설립된 지 30주년이 되는 해다. 1995년, 고(故) 이민화 회장이 30대 중반의 기업가들과 함께 벤처 생태계의 밑그림을 그린 이후, 벤처는 대한민국 경제의 한 축으로 성장했다. 현재 국내 벤처기업 수는 4만 개를 넘어섰고, 이들이 창출하는 고용과 부가가치는 4대 그룹에 필적한다. 벤처는 더 이상 주변부에 머무는 게 아니라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무엇이 이러한 성장을 견인했을까?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핵심은 ‘개념의 구조화’에 있다. 1990년대 후반 도입된 ‘벤처인증제도’는 벤처를 ‘기술 기반 혁신기업’이라는 코어 유닛(Core Unit)으로 명확히 정의했다. 이 기준이 세워지자 모호함은 사라지고 자본과 인재가 몰려들었으며, 벤처는 단순한 기업군을 넘어 한국 경제의 주류 산업으로 도약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30년을 이끌 새로운 코어 유닛은 무엇일까? 지금 한국 사회는 저출생·고령화, 기후위기, 인공지능(AI)으로 인한 노동 구조의 급변이라는 복합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난 수백 년간 성장과 경쟁을 중심으로 한 ‘머니로직(Money Logic)’을 통해 양적 팽창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그 방식만으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신호가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기존의 양적 성장을 뛰어넘는 질적 성장으로의 대전환이다. 이 전환 역시 구호가 아니라 기본 단위의 재정의와 실증을 통해 산업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필자는 기후위기와 기술 환경 변화에 대응할 차세대 코어 유닛으로 ‘살림셀(Salim Cell)’을 제안한다.

기존 도시는 외부의 에너지와 식량, 자원에 의존하는 거대한 소비 구조다. 공급망이 흔들리면 도시 전체가 취약해진다. 살림셀은 이를 보완하기 위한 소규모·분산형 자립 단위다. 이는 전통적 공동체의 회귀가 아니라, 첨단 기술을 활용한 자립형 생활·생산 플랫폼이라는 점에서 기존 대안들과 다르다.

살림셀은 세 가지 요건을 갖춘다.

첫째, 에너지와 자원의 고도화된 자립이다. 태양광, 소형 풍력, 에너지 관리 시스템, 스마트팜 기술 등을 결합해 전기·물·식량의 상당 부분을 자체적으로 충당한다. 이는 단순한 자급을 넘어, 탄소 감축 성과를 정량화할 수 있는 기후테크 실증 단위로 기능한다.

둘째, ‘살림(Salim)’ 중심의 생활 경제 구조다. 살림셀은 기본 생존 비용을 구조적으로 낮추고, 잉여 에너지·식량·서비스를 교환하는 살림셀 간의 교환경제를 형성한다. 이는 외부 경기 변동에도 삶의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완충 장치가 된다. 이러한 스마트 ‘살림 그리드(Salim Grid)’가 구축되면 우리 사회는 외부 충격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 강력한 회복력을 갖게 될 것이다.

셋째, ‘일’의 정의 전환이다. AI가 반복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의 역할은 소득 창출에만 머물 수 없다. 살림셀에서는 생태 관리, 돌봄, 지역 서비스, 문화·콘텐츠 창작 등 사회적으로 필요한 활동이 새로운 가치 창출의 영역이 된다. 이 과정에서 축적되는 성과는 새로운 서비스·콘텐츠·기술 시장으로 연결될 수 있다. 이는 ‘윤리적 창조’라는 새로운 노동 형태로 확장될 수 있다.

이처럼 살림셀은 기후테크·스마트팜·헬스케어·에너지 관리 기술이 결합된 융합 산업의 코어 유닛으로 실증과 검증 그리고 평가가 이루어지는 일종의 벤처와 같은 코어유닛이 될 수 있다. 과거 벤처인증제도가 그랬듯, 일정 기준이 마련된다면 하나의 코어 유닛으로 기능할 수 있다.

살림셀의 확산은 곧 살림셀에 필요한 다양한 기술과 제품의 거대한 신시장 창출을 의미한다. 기존 기업들의 제품이 ‘살림셀 버전’으로 전환되어 공급될 때, 이는 기후위기 대응과 일자리 문제의 실질적 대안이 될 것이다. 이미 지자체·캠퍼스·농촌 지역 등에서는 에너지 자립 주거, 마이크로그리드, 스마트 농업을 결합한 실증이 시작되고 있으며, 이를 표준화하면 새로운 산업군으로 성장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30년 전 ‘벤처’라는 코어 유닛을 정의하고 제도화함으로써 정보기술(IT) 강국의 기반을 만들었듯, 이제는 살림셀을 실증하고 표준화할 시점이다. 살림셀은 단순한 주거 대안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기후위기 시대에 제안할 수 있는 새로운 산업 모델이자 수출 가능한 시스템이 될 수 있다.

살림셀이 현장에서 검증되고 세계로 확산되는 날, 대한민국은 경제 강국을 넘어 지속 가능한 문명 전환을 제안하는 국가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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