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드웨어' 강점에 안전 갖춘 로봇 현장 투입
엔비디아와 협업⋯가상 공간 자동화 작업 박차
정부 규제에 더디지만 "더 안전한 제품 생산"

세계는 지금, 미국과 중국이 벌이는 ‘인공지능(AI) 패권 전쟁’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제조업 강국 일본의 공장 현장에서는 이 거대 담론과는 동떨어진, ‘조용하고 실용적인’ 또 다른 AI 혁명이 꿈틀거리고 있다. 거대한 알고리즘·데이터 경쟁 대신, 실제 산업 현장과 일상에서 ‘과연 이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고 성과를 내느냐’라는 지극히 실용적인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조업을 대표하는 산업용 로봇 기업 중 하나인 ‘야스카와전기’는 AI를 그 자체의 기술이 아닌, 생산성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도구’로 정의한다. AI가 현장을 혁신하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정의, 실용주의 AI 접근법의 선봉에 서고 있다.
야스카와전기가 내세우는 AI 전략의 핵심은 하드웨어를 기반으로 한 적용력이다. 공정과 설비, 실제 작업 환경을 알고 있는 로봇이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일 수 있어야 AI의 의미가 생긴다는 판단이다.
이러한 전략은 최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 국제로봇전(iREX 2025) 야스카와전기 전시관에서도 드러났다. 전시관에서는 설비를 바꾸지 않고도 프로그램과 시뮬레이션을 통해 제품 규격을 조정하는 산업용 로봇, 안전 대책을 갖춰 실제 현장 투입을 앞둔 로봇 등이 소개됐다. 야스카와전기는 AI 기술을 현장에서 곧바로 쓰이는 기술로 접근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정적인 장면이었다.
쿠보타 유미에 야스카와전기 기술개발본부 AI 로보틱스 총괄 부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AI에서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보다 현장에서 만들 수 있는 실전의 능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과 중국은 AI 기술이 굉장히 빠르게 전개되고 있지만, 일본은 그 기술이 산업과 일상에서 어떻게 실현되는지에 포커싱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본이 AI에서 뒤처졌다는 평가에 대해서도 그는 선을 그었다. 쿠보타 총괄 부장은 “기술력도 물론 중요하지만, 결국 현장에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며 “하드웨어를 포함해 이를 구현할 수 있는 기반이 일본 제조업의 강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이 해당 분야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할 ‘결정적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긍정적인 전망을 내놓았다.
반면, 중국에 대한 시각은 상이했다. 그는 기술력과 시장 잠재력을 동시에 갖춘 중국에 대해 보다 ‘복합적인 평가’를 내놓았다. 쿠보타 총괄 부장은 “이번 중국의 전시는 화려하고 그 진화는 대단했다”면서 “야스카와의 전시는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필요한 솔루션을 만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다만 그는 “중국 로봇이 학습하는 방대한 양의 데이터는 분명 상당히 영향력이 크다”며 데이터 축적과 활용 측면에서는 주의 깊은 접근이 필요하다고 했다.

AI 확산 과정에서 반도체와의 협업도 필수 요소로 꼽았다. 쿠보타 총괄 부장은 “소프트웨어도 중요하지만, 야스카와의 강점은 하드웨어”라며 “우리가 하지 못하는 소프트웨어 영역은 다른 회사와 협력해 실현해가고 있다”고 말했다. 엔비디아와 협업해 AI 칩과 가상공간 시뮬레이션을 활용한 자동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제품에 사용되는 메모리 역시 한국산을 사용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사용할 계획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의 경우, 세계적인 수준의 ‘제조 기반’을 이미 갖추고 있다는 점을 가장 큰 강점으로 지목했다. 쿠보타 총괄 부장은 “한국은 대기업이 있고, 제조 현장을 갖고 있는 나라”라며 “AI 투자 규모가 적다고 해서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고 딘언했다. AI는 결국 현장에서 구현되는 기술인 만큼,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국가가 유리하다는 인식이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가로막는 ‘정부 규제’ 탓에 더디다는 외부 평가를 받는 일본. 이는 규제 완화 속에 막대한 자본력으로 속도를 내는 중국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지점이다. 쿠보타 총괄 부장은 정부 규제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그는 “안전성과 관련된 규제가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안전한 제품을 만들 수 있고, 일반적인 환경에서 더 널리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런 규제는 나쁜 것이 아니라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정부의 지원과 관련해서는 산업용 로봇보다는 휴머노이드와 AI 기술 전반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려는 흐름을 타고 있다고 설명했다. 쿠보타 총괄 부장은 “AI 경쟁의 관건은 누가 더 화려한 기술을 선보이느냐가 아니다”며 “현장 작동성과 산업 적용이야말로 승패를 가르는 열쇠”라고 역설했다. 이어 “이 점에서 제조업 기반을 갖춘 일본은 물론, 한국 역시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