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기금·서학개미 해외투자 확대 등도 주요인
최근 글로벌 외환시장에서 달러화의 독주가 한풀 꺾였음에도 불구하고 원화 가치는 유독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과거에는 글로벌 달러가 약세를 보이면 원화가 강세를 띠는 것이 공식이었으나, 최근에는 정반대로 움직이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시장에서는 현재의 원화 약세가 단순한 대외 변수를 넘어선 국내 수급 불균형과 정부의 재정 정책이 맞물린 ‘복합 압력’의 결과라고 분석하고 있다.
14일 외환시장에 따르면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지난달 20일 100.251에서 12일 98.404 수준으로 하락하며 10월 중순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반면 12일 원·달러 환율의 주간거래 종가는 1473.7원으로 전 거래일보다 상승세를 보였다. 지난달 평균(1457원) 대비로는 20원 가까이 급등했다.
글로벌 달러 흐름과 원화가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통상 달러 인덱스가 하락하면, 상대적으로 원화 가치는 올라야(환율 하락) 정상이다.
그러나 현 시점의 원화은 이에 동조하지 않고 오히려 가치가 떨어지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 같은 ‘나 홀로 약세’의 본질적 요인으로 수급 구조의 변화를 꼽는다. ‘수출 호조→달러 유입→원화 강세’라는 전통적 연결고리가 끊어졌다. 반도체 외 주력 품목의 수출 경쟁력이 둔화한 데다, 기업들이 벌어들인 달러마저 해외 투자와 수입 결제 대금으로 다시 빠져나가며 국내 외환시장에 풀리지 않고 있다.
여기에 올해 6월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 정책도 원화 약세의 뇌관으로 지목된다.
정부가 내수 진작을 명분으로 추진한 대규모 소비쿠폰 지급 등 재정 지출 확대가 시중의 원화 유동성을 급격히 늘렸다는 분석이다. 통상적으로 시중에 자국 통화량이 흔해지면 화폐 가치는 떨어진다.
국민연금을 비롯한 연기금과 개인 투자자(서학개미)의 ‘탈(脫)한국’ 행렬도 원화 가격 하락 요인이다.
국민연금은 매년 수백억 달러 규모의 해외 투자를 집행하며 상시적인 달러 매수 수요를 일으키고 있고, 미국 증시 호황을 좇는 개인 투자자들의 달러 환전 수요까지 겹치며 자본 수지 적자 폭을 키우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한·미 간 통화정책의 엇박자가 원화 가치를 짓누르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견조한 경제 지표를 바탕으로 고금리 기조를 유지하거나 인하 속도를 조절하는 반면, 내수 부진에 시달리는 한국은행은 금리 인하 압박을 받는 '탈동조화' 현상이 심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화와 동조화 경향이 강한 일본 엔화가 기록적인 약세를 지속하며 원화 가치를 동반 하락시키고 있고, 집권 2년 차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의 자국 우선주의와 관세 장벽 강화 움직임이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 심리를 부추기며 환율 하단을 높이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글로벌 달러가 내려가는데도 환율이 오르는 것은 한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경고등"이라며 "국내 자본 유출과 재정 확대에 따른 유동성 증가가 맞물려 있어, 단순히 대외 여건이 개선되기를 기다리는 것만으로는 1400원대 ‘뉴노멀’을 해소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