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1위 부동산 전문 자산운용사인 이지스자산운용이 중국계 사모펀드(PEF) 운용사 힐하우스인베스트먼트에 매각 절차를 밟으면서 부동산 운용·자문 시장의 판도 변화가 예고되고 있다. 외국계 PE가 새 주인이 될 가능성이 커진 가운데, 이지스발 인력 이동과 신생 운용·자문사의 재편 경쟁이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11일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이지스자산운용은 매각 작업이 진행 중이던 한 달 전부터 일부 내부 인력의 이탈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힐하우스로의 매각이 마무리될 경우 중국·싱가포르 출신 경영진이 주요 보직에 포진하고, 투자 의사결정 체계와 보상·리스크 기준 조정 등에 따른 추가 인력 재편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외부와의 접촉을 시작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지스운용 내부 사정을 잘 아는 부동산 IB 업계 관계자는 “이미 자발적으로 회사를 떠난 인력은 상당수 정리됐고, 남아 있는 인력들 사이에서도 ‘기회가 되면 나가고 싶다’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며 “다만 인수 이후 인력 조정과 보상 문제를 감안해, 인사 방향이 나올 때까지 일단 상황을 지켜보려는 직원들이 많아 당장 움직이기는 쉽지 않은 분위기”라고 전했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 거래 시장은 운용사, 매각주간사·브로커리지, 회계법인 부동산팀 인력이 사실상 한 풀에서 움직인다는 평가가 많다. 특정 운용사에서 인력 이탈이 발생하면 상당수 인력이 다른 운용사로 이동하는 데 그치지 않고, 부동산 자문사·회계법인으로 옮겨가거나 신생 법인을 세우는 방식으로 시장 전반의 구조 변화로 이어지는 패턴이 반복돼 왔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인력 이동 사례는 이 같은 구조를 뒷받침한다. 부동산운용사와 투자자문사, 회계법인 내 부동산 금융·자문 조직 신설이 맞물리면서 시장 참여자 수는 꾸준히 늘고 있다. 최인준 대표는 에비슨영코리아에서 NAI코리아로 자리를 옮겨 새 조직을 꾸리고 있고, 박성진 전 CBRE코리아 부사장은 지난 9월 삼일PwC로 이동해 부동산 금융·자문 조직을 정비하며 인력 충원을 진행 중이다.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출신 인사들은 호주계 부동산 전문 운용사인 인마크자산운용으로 대거 이동했다. 인마크자산운용은 호주계 부동산 회사 인마크그룹과 자산운용사 밀레니움 캐피탈 매니저스가 합작해 설립한 인마크글로벌(Inmark Global)이 지분 91.7%를 보유한 회사다.
젠스타메이트는 에비슨영(Avison Young)과 브랜드 라이선스 계약을 종료하고 단독 브랜드 체제로 전환했다. 젠스타메이트는 2019년부터 글로벌 상업용 부동산 서비스 회사 에비슨영과의 라이선스 계약을 통해 ‘에비슨영코리아’라는 법인명으로 사업을 운영해왔다. 부동산 통합관리 플랫폼 이도(YIDO)는 젠스타메이트와 계약이 끝난 에비슨영을 품으면서 PF 중심에서 한발 더 나아가 본격적으로 투자·자문 영역으로 사업을 넓히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존 운용사에서 인력이 빠져나오면 신생 운용사 설립으로 이어지는 패턴도 반복되고 있다. 이번 제7대 금융투자협회장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이현승 전 KB자산운용 대표는 2024년 KB자산운용에서 물러난 뒤 대체투자 전문 운용사 LHS자산운용을 설립하며 시장에 깜짝 복귀했다. 이 전 대표는 2015년 부동산 전문운용사 코람코자산운용 대표를 지낸 바 있다.
이지스발 인력 이동도 같은 흐름 위에 놓인다. 이직을 선택하는 인력은 기존 대형 운용사·자문사로 흡수되기도 하겠지만, 일정 수 이상은 결국 신생 부동산운용사나 투자자문사 설립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운용사 숫자는 꾸준히 늘고 있는 데다 회계법인·컨설팅사들이 부동산 금융·자문 인력을 대거 영입해 조직을 키우면서, 운용사·자문사·회계법인이 모두 같은 인력 풀을 놓고 경쟁하는 구도가 강화됐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 시장은 거래 숫자만 놓고 보면 회복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올해 국내 상업용 부동산 거래 규모는 3분기 기준으로 약 15조 원을 소폭 웃도는 수준까지 늘었고, 4분기까지 합산하면 연간 20조 원 안팎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대형 오피스·물류센터 등 일부 자산군에서는 매각·인수 거래가 재개되면서 딜 자체는 과거보다 활발해진 모습이다.
하지만 딜 구조를 뜯어보면 척박한 환경이 드러난다. 과거에는 매각자문사가 단독으로 주간사 역할을 맡는 경우가 많았다면, 현재는 상위권 부동산 자문사들끼리 컨소시엄을 구성하거나 듀얼(dual) 자문 체제로 참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히 신생 자문사·운용사들은 트랙레코드 확보를 위해 수수료나 조건 측면에서 공격적인 제안을 내놓는 경우가 많아, 건당 자문 수수료가 분산되는 구조가 일반화되고 있다는 평가다.
운용·자금조달 환경도 부담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상업용 부동산 거래 상당수는 여전히 우선주·에쿼티 구조 비중이 높은데,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연 6% 후반~7%대 배당수익률이 제시돼야 검토가 가능한 상황이다. 동시에 미국 국채 등 안전자산 금리가 상승하면서 일부 기관은 대체투자보다 국공채 중심의 포트폴리오 재조정을 선호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 경우 기관들의 공백을 증권사 총액인수로 메우는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또 다른 부동산 IB 업계 관계자는 “달러 베이스 국채·채권만 들고 있어도 4%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시대에, 환헤지 비용·유동성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국내 상업용 부동산 우선주에 7%를 받으러 들어올 유인이 과거만큼 강하지 않다”며 “거래 규모가 커져도 자문료 총액 증가 폭은 체감만큼 크지 않다”고 말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시아 지역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이지스운용의 매각은 추가적인 부동산 IB 시장 인력 변동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회계법인 출신 부동산 IB 관계자는 “이미 숫자는 포화 상태에 가까운데 수익성은 떨어지는 부동산 운용·자문 시장에서 이지스자산운용의 변동은 소수 상위권 운용사 간 경쟁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전날 투자위원회를 열어 이지스운용에 위탁한 투자금을 회수하는 방안을 논의했다. 이지스운용이 경영권 매각 과정에서 국민연금 출자 내역을 원매자들에게 유출한 정황이 포착된 데 따른 조치다. 3월 말 기준 이지스자산운용의 전체 부동산 운용자산(AUM)은 약 65조 원, 이 가운데 국민연금 위탁자산은 2조 원 규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