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의무적 성능개량구조 도입해
혁신기업 진입촉진·선순환 유도를

K-방산은 최근 수출 호조와 함께 꾸준히 몸집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기술혁신이 산업 전반에 순환하는 구조를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다. 체계기업들은 기존 부품 공급망과 안정된 파트너십을 중시한다. 새로운 기업이나 기술의 진입은 위험 부담으로 인식된다. 이런 환경에서는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이 혁신적인 부품을 개발하더라도 실제 무기체계에 적용되기까지의 장벽이 높다. 정부가 ‘방산 혁신기업 100’ 선정, 첨단소재·부품 분야 투자 확대 등 각종 육성책을 내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첨단 부품기술 확보는 세계 4대 방산수출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며, 민군 기술협력 예산도 빠르게 늘고 있다. 이제 방위산업의 경쟁력은 무기체계가 아니라 부품 단위의 혁신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산업 구조는 여전히 경직돼 있다. 체계기업 입장에서는 이미 최적화된 조립 공정과 안정된 협력 체계를 바꿀 이유가 없다. 새로운 공급업체를 포함시키면 비용과 품질 위험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런 폐쇄적 구조에서는 혁신기업이 등장하더라도 시장 진입 기회가 제한된다. 새로운 기술이 공급망에 유입되지 않으면 산업 전반의 기술 축적이 단절되고, 성장의 이익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지 않는다. 혁신이 경쟁과 협력을 통해 누적되는 대신, 일부 기업 내부에서만 순환하는 ‘폐쇄형 생태계’가 형성된다.
이 고착된 구조를 풀 해법은 성능개량 제도의 혁신이다. 혁신기업이 개발한 부품이 실제 무기체계에 적용되려면 제도적 진입로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의 성능개량 체계는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 개량 주기가 정해져 있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임의로 진행된다. 합참은 작전 개념의 변경이 있을 때, 방위사업청은 경미한 개량을 담당한다. 방위사업법상 성능개량 사업의 집행 주체는 방위사업청장이지만, 작전요구성능(ROC)이 변하면 다시 합참의 소요결정 절차를 거쳐야 한다. 절차가 복잡하고 시기가 불규칙해 혁신 부품의 적용 가능성이 낮다.
따라서 ‘주기적이고 의무적인 진화적 성능개량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 일정 주기(2~3년)마다 핵심 무기체계의 부품과 구성품을 점검하고, 성능개량 대상을 체계적으로 발굴해야 한다. 이를 전담할 ‘부품 소요기획센터’(가칭)를 국방기술진흥연구소 내에 설치해 기술 검증, 기업 연계, 예산 편성을 통합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러면 기존 체계의 안정성을 유지하면서도 혁신기업이 정기적으로 참여할 제도적 경로가 생긴다. 정기적 개량은 혁신의 순환 구조, 즉 새로운 기업이 기술로 진입하고 경험이 산업 전체로 확산되는 선순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물론 이런 변화에는 반론도 있다. 기존 공급망의 안정성이 흔들리고 품질이 저하될 수 있다는 우려다. 그러나 방위산업은 단순한 조달 산업이 아니라 국가 안보와 미래 기술정책이 결합된 전략 분야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탐색(exploration)’과 ‘활용(exploitation)’의 균형이라 부른다. 탐색은 새로운 기술과 기회를 찾는 과정이고, 활용은 기존 역량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 단계다.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산업은 정체하거나 뒤처진다. 방산 부품 분야도 마찬가지다. 기존의 안정성을 지키되, 탐색을 위한 제도적 문을 열어야 한다. 변화의 실패보다 더 큰 위험은 변화의 부재다.
결국 진화적 성능개량 제도 도입은 방산 혁신의 실질적 동력이 될 것이다. 불규칙한 성능개량 체계로는 새로운 기술을 흡수할 수 없고, 혁신기업은 시장 진입의 기회를 얻지 못한다. 방위사업청과 합참이 협력해 정기적이고 의무적인 성능개량 구조를 마련한다면, 부품 단계에서 혁신이 제도화되고 방산 생태계는 폐쇄적 구조에서 ‘순환적 성장 구조’로 전환할 것이다.
이 방향은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에서 밝힌 “AI 시대의 주력 제조업으로 방산을 육성하겠다”는 비전, 국방부 장관의 “방산을 국가 경제 성장동력으로 만들겠다”는 정책 의지, 그리고 국정과제 44번 ‘첨단전력과 방위산업 강국 실현’이 제시한 획득체계 혁신의 목표와 정확히 맞닿아 있다. 혁신 부품이 체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을 제도적으로 여는 것, 그것이 K-방산이 진정한 기술 선도국으로 도약하는 출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