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시선] ‘공소권 없음’ 뒤에 남겨진 정의와 피해자 보호

입력 2025-12-08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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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법인 청률 최병일 변호사  (사진제공=법무법인 청률)
▲법무법인 청률 최병일 변호사 (사진제공=법무법인 청률)

최근 온 국민을 충격에 빠뜨린 창원 합성동 모텔 참사는 우리 사회의 가장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습니다. 20대 남성이 10대 중학생 3명을 흉기로 찌르고 투신하여 결국 가해자와 피해자 일부가 동시에 사망한 이 비극은 단순한 강력 범죄를 넘어 우리 법 시스템이 포착하지 못하고 놓친 계획된 분노의 위험성을 경고합니다.

특히 법률가로서 이 사건을 바라볼 때, 가장 고통스러운 지점은 ‘공소권 없음(公訴權 없음)’이라는 법적 현실입니다. 형사소송법상 피의자가 사망하면 검찰은 더 이상 공소(기소)를 제기할 수 없어 사건은 형식적으로 종결됩니다.

즉 가해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한 형사적 책임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겨진 유가족과 중상을 입은 피해자는 여전히 지옥 같은 현실에 머물르게 되고, 이처럼 가해자가 사라진 비극 앞에서, 법망 너머의 피해자 보호와 정의 실현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지 변호사로서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이 사건은 피의자가 특정 10대 피해자에게 호감이 생겼고, 만남을 제안했다가 시비가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사전에 범행을 계획하여 저지른 것이라는 것이 언론을 통해 확인되는 내용으로, 이는 분노의 사적 실행이자 명백한 살인 예비 및 살인 행위입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사망함으로써, 우리는 사건의 진정한 동기와 전말을 형사 재판이라는 공적 절차를 통해 명확히 밝혀낼 기회를 상실했습니다.

유가족은 왜 자신의 가족이 죽어야 했는지, 가해자는 무엇 때문에 이토록 극단적인 폭력을 계획했는지에 대한 진실 규명이라는 정의의 첫 단추조차 꿰지 못한 채 가해자 사망으로 사건을 마무리해야 합니다.

오래전 70대의 피의자가 만나고 있던 또래의 여성을 둔기로 때려 살해한 사건을 필자가 국선 변호하면서 변호인의 직분에 따라 피의자의 양형에 필요한 변론을 한 필자를 향하여 유족들이 "저런 사람도 변호하느냐"며 고성을 지르며 분노하고, 법정에 출석하여 엄벌을 탄원한 일이 떠올랐습니다.

형사재판은 피의자의 행위에 대한 법률적 제재를 통한 정의 실현이지만, 그 이면에는 범죄행위로 명을 달리한 피해자의 억울함과 울분을 풀어주는 피해자중심의 정의 실현의 측면도 가집니다.

그런데 이 사건은 가해자의 사망으로 정의의 문이 닫혀버림과 동시에 법정에서 가해자가 엄벌을 받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피해자 중심의 정의 실현에 큰 구멍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사회는 타인의 거절을 폭력으로 보상하려는 비이성적인 분노범죄에 너무도 취약합니다.

특히 2021. 4. 20. 스토킹범죄의처벌등에관한법률(스토킹 처벌법)이 제정되었지만, 스토킹 범죄의 처벌요건으로 지속성 및 반복성이 요구되기에 범죄의 초기 징후나 단발적인 강한 집착에는 제대로 작동하지 못합니다.

이번 사건처럼 피해자와 유대관계가 깊지 않은 가해자가 사전에 흉기를 준비하여 피해자를 불러낸 경우까지 대비하는 사회적, 법적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하더라도, 이 사건을 계기로 최소한 최근 빈번히 발생하고 있는 연인 간의 스토킹 범죄를 막기 위한 입법적 보완이 필요합니다.

가해자가 사망하였더라도 피해자의 고통과 법적 구제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이 사건과 같이 피의자의 사망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대상이 사라졌을 때 범죄피해자보호법에 따라 유족구조금이 지급됩니다.

다만 유족구조금액은 최장 평균임금의 48개 월분을 초과할 수 없어 사망자의 유족의 피해 회복에는 턱없이 부족하기에 지급범위와 규모를 확대할 필요성도 있습니다.

아울러 비록 피의자가 사망하여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되더라도 생존자에 대한 조사를 통하여 범행동기 등을 구체화하여 최소한 유가족에게 전달을 통하여 유가족이 사건을 심리적으로 종결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의를 실현하는 방법입니다.

창원 모텔 참사는 우리 모두에게 경고합니다. 법이 모든 분노를 막을 수는 없지만, 분노가 폭발하기 전에 사회가 개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성은 있다는 것을.

단순히 범죄 후의 처벌 뿐만 아니라, 잠재적 가해자의 분노를 관리하고 사회화 하는 시스템에 투자해야 합니다.

특히 공소권 없음이라는 차가운 법적 문구 뒤에서, 남겨진 유가족과 피해자가 인간적인 존엄을 회복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가 더 따뜻하게 작동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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