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지향 정책금융, 리스크 떠안는 고위험 마중물로 개편해야”

국내 벤처투자의 온기가 수도권에만 머무는 현상이 심화하면서 민간과 다르지 않은 ‘안전 투자 중심’의 정책금융 관행이 도마 위에 올랐다. 수익성을 우선하는 민간 자본의 속성을 고려하면 수도권 쏠림은 어느 정도 불가피한 만큼 정책금융이 단순한 자금 공급자를 넘어 지방 인프라 조성과 투자 생태계 구축에 나서는 ‘고위험 마중물’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책금융의 방향이 바뀌지 않는 한 지역 벤처 생태계는 출발선조차 마련하지 못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강성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는 3일 “민간 자본은 리스크가 적고 산업화 속도가 빠른 수도권으로 몰리는 것이 당연한 이치”라며 “정책금융기관은 리스크가 크더라도 미래 가치가 있거나 민간이 기피하는 영역에 과감하게 투자를 집행해야 하는데 지금은 수익성 지표에 매몰돼 안전한 곳만 찾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어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 투자보다는 전력망 구축이나 산업 인프라 조성 등 민간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영역에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민간 자본이 지방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올 수 있는 인센티브와 환경을 만들어 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도권과 지방의 투자 격차는 심해지고 있다. 김원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전국 벤처투자액 2조5207억 원 중 80%에 달하는 2조50억 원이 수도권에 집중됐다. 서울은 1조3526억 원으로 전국의 절반 이상차지했으나 투자금이 가장 적은 전남은 21억 원에 불과해 지역 간 불균형이 극에 달했다.
기업이 성장해 ‘스케일업’을 시도하는 단계에서도 지방 기업은 배제됐다. 올해 3분기까지 벤처캐피탈(VC)로부터 100억 원 이상 대규모 투자를 유치한 수도권 기업은 55곳에 달했지만 비수도권 기업은 13곳에 불과했다. 유망 기업들이 생존과 자금 유치를 위해 ‘판교 라인’ 위로 본사를 옮기는 ‘탈지방’ 현상이 수치로 증명된 셈이다.
정책금융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한 탓이 크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신규 벤처펀드 결성 규모는 9조7219억 원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7.3% 증가했다. 특히 3분기에는 팬데믹 이후 첫 단일 분기 실적 4조 원을 돌파하며 2022년 이후 지속하던 감소 추세에서 뚜렷한 반등에 성공했다. 그러나 1~3분기 벤처펀드 결성 출자자 중 민간 부문 비중은 전체의 83.4%(8조1084억 원)를 차지했다. 정책금융 출자 비중은 16.6%(1조6135억 원)에 그쳤다. 수익성과 회수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하는 민간 자본이 시장을 주도하면서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 투자는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한계를 키운 것이다.
전문가들은 정책금융기관 투자 방식을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민간 자금은 철저하게 ‘리스크 대비 수익률’을 보고 움직이기 때문에 수익모델이 확실한 곳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아도 돈이 몰린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책금융은 민간 자금만으로는 조달이 어렵거나 당장은 수익이 나지 않는 지방 인프라 사업 등 ‘불확실성’이 큰 영역에 투입돼야 한다”며 “민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초기 위험을 정책금융이 흡수해 줌으로써 투자의 물꼬를 트는 역할로 전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