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 가사ㆍ돌봄 외 추가 부담 우려

스위스에서 30일(현지시간) 초부유층 상속ㆍ증여세, 여성 징병 등을 도입하는 안건이 국민투표에서 압도적 표 차이로 부결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스위스 사회당 청년조직(JUSO)이 기후 대응 자금 조달을 위해 5000만 스위스 프랑(약 914억 원) 이상의 재산에 50% 상속ㆍ증여세를 부과하자고 제출한 내용의 법안이 이날 국민투표에서 78.3%의 반대로 기각됐다. 투표율은 43%였으며, 26개 어떤 주(칸톤)에서도 과반을 얻지 못했다.
JUSO 측은 “초부유층은 수십억 프랑을 상속받지만, 우리는 위기만을 물려받는다”며 도입을 주장했다. 스위스에서 5000만 스위스프랑 이상의 재산을 보유한 자산가는 인구 상위 약 0.03%인 2500명 정도로 추산된다. UBS 연구에 따르면 스위스는 서유럽 평균의 5배가 넘는, 인구 100만 명당 9명 이상의 억만장자가 있다.
그러나 스위스 주민들은 부자 과세안이 통과될 경우 부유층의 자금 이탈은 물론 ‘세계 부자들의 안식처’로 불리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스위스의 위상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에 부결을 결정했다는 분석이다. 카린 켈러-수터 스위스 대통령은 “유권자들이 위험한 재정 실험을 명확히 거부했다”며 “이러한 세금은 우리 세제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스위스의 매력을 훼손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안건은 정부와 좌파를 제외한 모든 정당의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반대 측은 부유층의 탈국가로 세수 증가 효과가 상쇄될 뿐 아니라 재정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위스 정부 역시 유권자들에게 이 제안을 거부할 것을 권고했다.
이번 부결로 스위스가 세계 최고 수준의 부유층 선호 국가라는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일부 완화됐다. 스위스는 유럽에서 가장 낮은 상속세율과 안정적 금융 환경으로 오랫동안 ‘세계 부자들의 안식처’로 불려왔으나, 최근 초부유층을 대상으로 한 50% 상속세 도입 국민투표가 추진되며 변화가 우려됐다. 특히 싱가포르ㆍ홍콩ㆍ두바이ㆍ아부다비 등 아시아, 중동 등에서 그 지위를 위협받았다.
스위스 국민들은 직접 민주주의 제도에 따라 연간 최대 네 차례 국민투표를 실시하면서 그동안 기업 친화적 선택을 반복해 왔다. 과거에도 더 엄격한 탄소 배출 규제, 의무 휴가일 확대, 국가 차원의 최저임금 제안 등이 연이어 부결됐었다.
아울러 스위스 유권자 84%는 남성에만 적용되는 병역 의무를 여성에까지 확대하는 ‘시민 복무 이니셔티브’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안건은 중도좌파 연합이 추진했으며, 성평등 차원에서 여성에게도 복무 의무를 확대하고, 노인 돌봄이나 환경 보호 활동 등 민간 대체복무도 허용하자는 내용이 담겼다.
스위스는 징병 대상 연령 남성들의 병역이나 민방위대 참여가 의무화돼 있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는 병원이나 노인 시설 등에서 대체 복무가 가능하다. 매년 약 3만5000명의 남성이 의무 복무에 참여하고 있다.
정부는 군대와 민방위에 이미 충분한 인력이 있으며 필요한 인원 이상을 추가로 모집할 경우 노동 인력이 줄고 막대한 비용도 초래된다며 이 안에 반대해 왔다. 또 이미 자녀와 가족 돌봄, 가사 노동이라는 무급 노동의 상당 부분을 떠안고 있는 많은 여성에게 추가 부담을 지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뿐만 아니라 직장과 사회에서의 평등이 아직 현실화하지 않은 상황에서 여성에게 추가로 요구하는 것이 평등 측면에서도 적합하지 않다고 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