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IP 전문성’으로 첫 여성 특허청장 입성...이인실 “딱 내자리, 자신 있었다”[K 퍼스트 우먼⑪]

입력 2025-12-0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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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2025-12-02 17:30)에 Channel5를 통해 소개 되었습니다.

“여성 변리사 3명 중 한 명에서 첫 여성 특허청장으로”
“40년 커리어의 철학...변곡점, 기다리지 말고 내가 만들어야”
“‘조각보 리더십’으로 조직과 생태계를 빚다...전문성과 감수성”
“세상을 한 번에 바꿀 수는 없어...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쉽게 이룬 사람처럼 보였다. 질문에 머뭇거림은 없었고, 대답은 명확했다. 마치 준비된 대본을 읊듯이. 그의 답변도 그랬다. “그리 어렵지 않았다. 그저 열심히 하면 결과물은 따라왔다.” 하지만 어찌 어렵지 않았을까. 1980년대, 변리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 시절, 그는 과감히 도전에 나섰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감히’라는 말을 들을 때였다. 시험 통과 후 수많은 지식재산권(IP) 싸움을 할 때도 독보적인 역량을 보였다. 이인실 전 특허청장은 흔들리지 않았다. 도전했고, 버텼고, 결국 ‘최초의 자리’에 올랐다.

1977년 개청 이래 처음 여성이자 민간 출신 특허청(현 지식재산처) 수장에 임명되던 날 공무원 사회는 조용히 술렁였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많은 지식과 경험을 지닌 단단한 실무형 리더였다. 그와 나눈 한 시간의 인터뷰는 창간 15주년을 맞아 본지가 준비한 ‘K 퍼스트 우먼 : 한국 경제의 최초를 연 그녀들’ 시리즈에서 만난 어떤 이들보다 담담했지만 큰 울림 그 자체였다. 조용한 목소리가 잔잔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시간이었다. ※대담 : 석유선 생활경제부장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청운국제특허법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청운국제특허법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나를 위해 준비된 사회가 아니라면 내가 준비해야 한다. 혼자 세상을 전부 바꾸지는 못한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바꿔가자. 조그만 힘부터 시작하면 된다.

“변리사 자체가 생소하던 1985년, 합격했다.”

“대학 동기들이 ‘병아리 감별사냐’ 했다.” 이 전 청장은 1985년 국내에서 여성으로는 세 번째 변리사 합격생이 됐다. 그는 “지금은 변리사가 8000명 정도 되는데 그때는 활동하는 변리사가 100명도 채 안 됐고, 여성은 거의 없었다”고 전했다. 많은 이들이 변리사라는 직업조차도 잘 몰랐을 당시 그 역시 “전문직을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험공부를 시작했다.

여성도 많지 않은 생소한 직업. 어떻게 도전을 하게 됐냐는 물음에 이 전 청장은 시험공부에 개의치 않는 집안 분위기가 컸다고 회상했다. 이 전 청장은 “집안에 고시를 준비하는 가족도 있었고 공부에 집중하는 데에는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였다”며 “과목도 고시보다는 적지 않냐”며 웃었다.

다만 40년 넘게 변리사로 살아온 이 전 청장은 “직업 결정에는 ‘비전이 있는 일인가’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십년은 우습게 하게 되는 이 직업을 이어가려면 직업 자체에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변리사를 하며 하게 됐다”며 “산업 발달은 결국 기술 전쟁이다. 변리사는 그 기술의 권리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라 산업과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업무가 중요할뿐더러 무한히 확장된다는 게 좋았다”고 덧붙였다.

기억에 남는 경험으로는 ‘물질 특허’를 떠올렸다. 이 전 청장은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때 의약품, 물질 특허에 관한 일을 했는데 당시 의약품은 보호 대상이 아니었다. 누구나 복제약을 만들 수가 있었던 것인데, 80년대 중반 물질 특허가 도입되면서 라이선스, 로열티가 생겼다. 우리의 업무도 다 바뀌게 된 것은 물론 세상이 바뀌는 그런 일을 보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청운국제특허법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청운국제특허법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를 갖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첫 임신이 오히려 변곡점으로...스스로 템포 조절해야”

이 전 청장은 “변리사가 되고 처음 10년은 막 일을 시작해서 배울 때이기도 했지만 ‘이렇게 일하다가 딱 죽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일을 너무 많이 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던 그에게 찾아온 첫 번째 변곡점은 첫 아이 임신이었다. 이 전 청장은 “그때 오히려 스스로 템포를 조절하는 계기가 됐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일반 기업이면 승진을 하거나 교수라면 안식년 같은 게 있다. 그러나 변리사는 그런 계기나 주기가 없다”며 “그래서 스스로 그런 변곡점을 만들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임신하면 몸만 생각하게 되니 머리를 단순화하면서 숨 고르기를 하는 시간으로 마음을 먹었다는 것이다. 이 전 청장은 3년 차에 첫 아이를, 6년 차에는 둘째를 임신했다. 물론 업무와 육아 병행은 그에게도 쉽지 않았다. 그는 “아이가 큰 뒤에 제가 혼잣말로 ‘너는 좋겠다. 아플 수도 있어서’라는 푸념을 한 게 기억이 난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그만의 루틴도 있었다. 이 전 청장은 “엄마에서 변리사로 스위치를 켜는 루틴”이라며 “처음 직장인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안국에 있을 때 출근길 파리바게뜨를 매일 들렀다. 일찍 그곳에서 커피와 토스트를 먹으며 신문을 읽었다. 아기를 씻기고 땀에 팍 젖은 채 출근을 하면서도 그건 꼭 지켰다. 내 마음가짐을 바꾸는 매일의 순간이었던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이 전 청장은 “지금도 저는 숨을 쉬듯 하는 게 일이고, 나에게 주어진 일을 해내려면 아프면 안된다는 정신력으로 버티는 사람”이라며 “그렇기에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해 주어진 상황을 이용도 하고, 합리화도 하게 됐던 것 같다. 사회 초년병 때 의지가 넘치고 일을 많이 해도 번아웃이 오는데, 나만의 변곡점을 만드는 것으로 소화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가 10년째인 1995년에는 프랑스로, 20년째에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것도 스스로 만든 인생의 변곡점이었다. 이 전 청장은 “물론 전문직이라서 가능했던 것도 있지만, 나름대로 주어진 환경과 일에 맞춰 필요한 순간을 만들어냈다. 여성들이 일반적으로 겪었던 상황이었더라도 아마 저는 ‘여성이니 업무를 안 한다’는 말 자체를 못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청운국제특허법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이인실 전 특허청장이 1일 서울 서초구 청운국제특허법인에서 이투데이와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신태현 기자 holjjak@)

“첫 여성 특허청장…전문성은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2022년 5월 29일 그는 특허청이 생긴 이래 45년 만에 첫 민간인 출신이자 첫 여성 특허청장으로 이름을 올렸다. 당시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이었던 이 전 청장은 30여 년 이상 지식재산권 분야에 종사해온 ‘최고 전문가’이자 여성 발명인 지원과 여성 경제 인력 발굴사업에 나선 고정관념을 깬 인물로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최고 전문가로서 특허청장에 입성한 만큼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내 옷을 입은 듯 편했다”고 말했다.

이 전 청장은 “그때 내 나이 60이 넘었으니, 공무원 정년을 넘길 정도로 오래 이 일을 했고 직원들을 바라만 봐도 무엇 때문에 고민인지 알 정도였다. 그만큼 전문성이 연결되는 일인 데다 사무실이나 조직 운영도 했기 때문에 쉽게 적응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특히 명확하게 지시를 하는 타입인데 나는 명확하게 지시를 주고 직원들은 금방금방 알아들으니 일도 잘됐다. 일이 잘 진행되니 재미도 있었다”고 말했다.

이 전 청장의 운영의 키워드는 ‘자긍심’과 ‘작아도 잦은 행복’이었다. 이 전 청장은 “우리가 하는 일이 기술 주권을 세우는 일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주려 했고, 업무 효율의 출발점이 행복에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며 “청장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직원들의 요구는 모두 들어주려고 애를 썼다”고 말했다. 모두가 행복할 방법을 고민한 그는 까먹기 쉬운 귤 같은 과일을 놓아 건강을 챙기고, 수백 명의 직원들과 매일 밥을 먹기 위해 노력했다.

IP를 둘러싼 직역 갈등, 부처 간 이견은 여전히 남은 과제라고 이 전 청장은 짚었다. 그는 “산업의 필요가 우선이라는 원칙에 따라 특허청이 IP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며 “흩어진 IP 기능을 한데 모으는 기반을 다지는 데 공을 들였지만, 그 일을 다 하지 못한 건 아쉽다”고 말했다. 취임 1년 7개월여 만인 이 전 청장은 지난해 1월 22대 총선 출마 의지를 표명하며 사임했다.

“여성 전체를 위해, 작은 거라도 할 수 있는 건 하자”

프랑스 유학을 갔을 때 프랑스가 손에 꼽는 선진국인데도 여성들의 삶은 한국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이 전 청장은 그때 우리나라 전체 여성을 위한 행동에도 뜻이 생겼다고 밝혔다. 그는 “프랑스에서도 여성들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뛰고, 출근하더라”며 “그때 우리나라 여성 모두를 생각하며 사회적으로도 시스템을 바꿀 수 있는 일을 작은 것부터라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이 전 청장은 여성 변리사가 소수이던 시절 한국여성변리사회를 만들어 조찬 모임을 이끌고, 이직 등 업계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들기 시작했다. 2013년부터는 전문직여성한국연맹, 전문직여성세계연맹 동아시아지역 의장 등도 역임하며 개인 커리어를 넘어 구조를 바꾸는 활동에도 힘을 쏟았다. 그는 “내가 배우고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고 업무 외에 이런 활동을 통해서 또 다른 저의 면모가 만들어졌다는 생각”이라고 전했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조각보를 짜는 리더’라고 표현했다. 이 전 청장은 “리더는 각자 다른 색과 모양을 가진 조각인 구성원들이 어디에 어떻게 들어가야 가장 아름다운 패턴이 되는지를 재단하는 사람”이라며 치료를 위해 일을 그만둔다고 말하는 직원에게 ‘하루 3시간만 일해보자’고 제안했던 기억 등을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 사람에게 필요한 형태로 지시를 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면 된다”고 말했다.

감수성 높은 리더가 더 많아져야 한다는 말에도 공감한다는 이 전 청장은 또한 여성 리더를 꿈꾸는 후배들을 향해 “내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은 내가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를 위해 준비된 사회가 아니라면 내가 준비를 해야 한다. 전문직을 준비했던 것에는 그런 생각도 영향을 미쳤다. 여성단체 활동을 한 것도 마찬가지”라며 “다 같이 조금씩 만들어가면 된다”고 다시금 짚었다. 이어 “혼자 어떻게 세상을 전부 바꾸나.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잘 바꿔가면 되고 한 번에 안 되면 조그만 힘부터 시작하면 된다”며 미소를 보였다.

▲이인실이 걸어온 길 (이투데이 그래픽팀=신미영 기자)
▲이인실이 걸어온 길 (이투데이 그래픽팀=신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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