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화재편안 1호 도출...“안 내면 각자도생” 압박에 시선은 여수로

석화 구조개편 1호 사례
롯데케미칼, HD현대케미칼 기업결합 사전심사 신청 접수
김정관 장관 여수 찾아 “시한 연장 없다”

▲손미경 기자 (그래픽)

국내 석유화학 산업 구조조정이 충남 대산 산단을 기점으로 본격화하면서 여수·울산 등 주요 국가산단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 대산 NCC(나프타분해설비) 통합이라는 첫 단추가 꿰어지면서, 정부는 더는 시간을 끌 수 없다며 업계를 향해 경고장을 날렸다.

26일 롯데케미칼과 HD현대케미칼은 대산 산단 내 NCC를 통합 운영하는 사업재편안을 확정하고 산업통상부와 공정거래위원회에 관련 절차를 제출했다. 롯데케미칼은 대산에서 연간 110만t(톤) 규모의 NCC를, HD현대케미칼은 연간 85만t 규모의 NCC를 가동하고 있다. 이는 정부가 추진해 온 석유화학 산업 구조개편의 ‘1호 프로젝트’로, 그동안 논의만 무성했던 설비 감축이 실제 실행 단계에 들어섰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기업결합을 위해 롯데케미칼은 대산 공장을 우선 물적 분할한다. 분할로 새로 만들어진 법인을 HD현대케미칼과 합병, HD현대케미칼이 존속하고 분할신설법인은 소멸한다. 롯데케미칼이 합병법인 주식을 추가 취득해 최종적으로 HD현대오일뱅크와 롯데케미칼이 합병법인 지분을 각각 50%씩 보유하게 한다는 계획이다. 롯데케미칼은 “이번 사업재편으로 NCC 설비의 합리화 및 일원화된 생산 운영체제가 구축될 예정”이라며 “고부가 및 친환경 사업 구조로의 전환도 병행하며 석화산업 경쟁력 제고에 기여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공정거래위원회도 이번 통합을 구조조정 시발점으로 평가했다. 공정위는 기업결합 사전심사 개시와 관련해 “석유화학 산업의 공급과잉 해소와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자발적 사업재편에 대해서는 관련 법령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신속하고 합리적으로 심사하겠다”고 밝혔다. 산업 재편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절차적 지원에 나서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정부 압박 수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은 이날 여수 국가산단을 직접 찾아 석유화학 기업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김 장관은 이 자리에서 “대산이 사업재편의 포문(gate)을 열었다면, 여수는 사업재편의 운명(fate)을 좌우할 것”이라며 속도전을 주문했다. 또 김 장관은 “올해 8월 발표한 사업재편계획서 제출 기한은 내달 말이며 이를 연장할 계획은 없다”며 “시한을 맞추지 못한 기업들은 정부 지원에서 제외될 것이며 향후 닥칠 대내외 위기에 대해서는 각자도생해야 할 것”이라고 강도 높은 메시지를 던졌다.

현재 여수 산단에서는 LG화학과 GS칼텍스 등이 NCC 통합 방안을 놓고 컨설팅을 진행 중이나, 구체적 합의점에는 도달하지 못했다. 울산 산단 역시 상황은 비슷하다. SK지오센트릭, 대한유화, 에쓰오일 등 주요 기업을 중심으로 설비 조정 논의가 수면 아래에서 진행되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통합안이나 감축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정부는 앞서 지난 8월 국내 전체 NCC 총 1470만t 가운데 18~25% 수준인 270만~370만t을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감축하는 방향을 제시했다. 중국발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이 크게 훼손되자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롯데케미칼에서 사업재편 신호탄을 쐈고 장관도 압박에 나선 만큼 이제는 여수와 울산에 이목이 집중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