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EU 고율 관세 겹치며 수출 환경 악화
“K-스틸법 이후 실질적 후속 대책 필요”

‘K-스틸법’이 철강산업 구조개편과 불공정 무역 대응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지만, 업계는 실효성 있는 후속 대책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전기료 급등과 통상 리스크 등으로 적게는 수천억 원, 많게는 조 단위의 비용 부담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이 때문에 특별법만으로는 산업 전반의 경쟁력 회복을 이끌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국회 본회의 통과를 앞둔 K-스틸법에는 산업용 전기요금 감면 등 에너지 비용 완화 대책이 담기지 않았다. 예산 부담과 형평성 논란을 우려한 재정당국의 반대가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철강업계는 지금의 전기료 수준을 더는 버티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제조원가에서 전기요금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20% 수준인데, 최근 3년 사이 산업용 전기요금이 70% 넘게 급등했기 때문이다.
일부 기업은 한 해 벌어들인 영업이익을 몽땅 전기료로 납부하기도 한다. 전기로 비중이 100%인 동국제강은 지난해 1025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전기요금으로 2998억 원을 지출했다. 포스코는 지난해 5000억 원, 현대제철은 약 1조 원의 전기요금을 납부했다. 자체 발전 비중을 늘려가고는 있지만, 전력비 부담을 상쇄하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기업들은 전기요금이 낮은 심야 시간대에만 설비를 돌리거나 조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현대제철은 4월 인천 철근공장 가동을 중단한 바 있고, 동국제강은 전력 수요가 정점에 이르는 7~8월 한 달간 인천공장 셧다운에 들어갔다.
전기요금 문제는 철강업계의 탈탄소 전환과도 정면으로 충돌한다. 전기로는 고로보다 탄소 배출은 적지만, 최대 고로의 2배 가까운 전력이 필요하다. 전기요금 부담이 지속된다면 전기로 전환 속도는 늦춰질 수밖에 없다는 게 업계 우려다. 정부가 추진하는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는 2018년 대비 53~61% 감축으로 예상보다 높게 설정됐고, 발전 부문의 탄소배출권 유상할당 비율 확대도 전기료 상승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꼽힌다. 업황 부진으로 투자 여력이 줄어든 상황에서 탄소 감축 투자와 전기요금 부담이 동시에 작용하는 셈이다.
문제는 통상 리스크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란 점이다. 미국은 3월 철강 제품에 25%의 품목별 관세를 부과한 데 이어 6월 관세율을 50%로 높였다. 최근 한미 관세 협상이 타결됐지만 철강 관세는 논의 대상에 포함되지 못했다. 고율 관세 영향은 수출 실적에 곧바로 나타났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올해 1~9월 대미 철강 수출액은 27억8958만 달러로 지난해보다 16%나 감소했다. 기업들의 직접 부담도 만만치 않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이 올해 미국에 납부해야 할 관세 부담은 4000억 원 안팎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유럽연합(EU) 역시 무관세 쿼터를 전년 대비 47% 축소하고 이를 초과한 물량에는 50%의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글로벌 공급 과잉이 지속되는 가운데 주요 시장의 관세 장벽까지 높아지며 국내 철강사가 설 자리가 더 좁아지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의 관심은 ‘K-스틸법 이후’에 쏠린다. 법안 통과 이후 전기요금 체계 합리화, 해외 관세 대응 등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철강업계는 고로를 가진 철강사와 제강사 간 이해관계가 달라 지원 패키지를 단일하게 설계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그럼에도 전기요금이나 관세 등의 부담은 동일한 만큼 조속하게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